지난 8월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소선 여사. 고령과 지병으로 인해 병원 입원이 잦을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
ⓒ 영화 '어머니' 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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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는 그 아들의 생일이었던 지난 8월 어느 날, 병원에 누워 있었다. 지병 탓이었다. 청계천 다리에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붙이는 행사가 있는 날이건만 어머니는 마음과는 달리 갈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드니 건강이 많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당뇨로 생긴 백내장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병실에서 자신을 카메라로 찍고 있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 먹고 오라며 5만원을 내밀었다. 한사코 사양하는 그들에게 기어이 받으라 하시면서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전태일 평전> 출판으로 나온 돈이다. 내가 주는 게 아니라 태일이가 주는 거니까 받아둬라. 태일이가 나누라고 그렇게 갔는데 내가 가지고 있음 뭐 하냐….'

그들은 받지 않으려 했지만 어머니는 화를 내셨다. 아들이 시킨 대로 하는 것뿐이니 얼른 받으라  하시는데 차마 거절하기가 힘들었단다. 부끄러웠지만 받을 수밖에 없었다. 뿌리칠 수 있는 돈이 아니라 싶었기에.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었고, 자식 같은 이들에게 아들의 이름으로 나누고 싶은 모정이 담겨 있었다. 그 아들은 자신의 차비를 털어 여공들의 풀빵을 사주고 먼 거리를 걸어 다녔다던데 어머니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올 때마다 빵이든 귤이든 뭐든 손에 쥐어 주시는 어머니는 늘 그렇게 해야만 속이 편하신 듯했다. 차마 다 쓰기 힘들어 나머지는 후원금 통장에 넣어두었다지만 좋은 영상을 만드는 일이 어머니의 마음에 대한 보답일 것이었다.

아들이 주는 돈 내미는 어머니와 그를 기록하는 사람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다룬 다큐 영화 <어머니>. 내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중이다.
ⓒ 영화 '어머니' 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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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머니는 영화를 찍고 있다. 그래서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이 따라붙는다.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에 담는 이들은 어머니에 대한 다큐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이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의 일상이 이들에 의해 오롯이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다큐 영화의 제목은 그렇게 정해졌다. 

어머니를 영상에 담자는 의견이 모아진 것은 나온 것은 올해 초였다. 태준식 감독이 먼저 나섰고 '인디스토리'와 '시네마달' 등 독립영화 배급사들과 전태일 재단 등이 의기투합했다.

아들의 유지에 따라 40년을 노동자, 서민들의 어머니였던 이소선 어머니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다들 공감했다. (가칭)<어머니> 제작위원회는 전태일 열사 40주기에 맞춰 그렇게 구성됐다.

영화 <어머니>를 찍고 있는 태준식 감독은 <필승 ver2.0 연영석>, <샘터분식>(2008), <당신과 나의 전쟁>(2010) 등의 작품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노동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전문적으로 제작해 왔다. 

그가 어머니를 찍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2003년이었다. '노동자 뉴스 제작단'에서 활동하던 시절 노동운동이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 이소선 어머니의 삶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위로를,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생각뿐이었고 실행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 2008년에 들어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나이가 팔순에 접어 드셨다. 어머니가 자칫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전에 기록을 남겨놔야 했다. 그래서 촬영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공식적 촬영은 지난 8월 말이었지만 실질적인 첫 촬영은 작년 겨울이었다. 어머니 옆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어머니의 모습을 하나둘씩 담았다. 그런데 지난 5월에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많이 약해지셨기 때문이다. 감기 몸살을 너무 심하게 앓아 돌아가시는 것 아닌가 싶었을 정도였다. 총명하고 똑똑하신 분인데, 촬영하러 왔던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셨다. 올해 병원에 입원한 기간만 해도 3개월. 어머니의 건강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병원에 있기를 싫어하셨다. 계속 입원해 계셔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나오셨다. 그리고는 힘들어 하는 노동자들을 찾아 다니셨다. 자신의 몸도 가누기 힘드시건만 더 많은 곳을 찾아가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신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어머니를 항상 따라다니는 아들 전태일

 청계천에 세워져 있는 전태일 동상
ⓒ 영화 '어머니' 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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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아들이 불꽃으로 산화해간 그 시기가 되면 어머니는 가장 힘들어 하신다. 아무래도 아들 생각이 많이 나시기 때문일 거다. 어머니는 그 아들 때문에 인생의 절반을 많은 노동자들을 위해 험난한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아들의 부탁을 꿋꿋이 실천해 오신 것이다.

사실 처음 다큐를 구상하면서는 전태일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에게만 초점을 맞출 생각이었는데, 이소선이라는 인물에 전태일은 항상 따라다니고 있었다. 제작을 위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들은 어머니를 끊임없이 쫓아오고 있었다. 결국 작품의 방향이 과거로 향하게 됐지만, <전태일 평전>을 되풀이 읽으면서 어머니 절반의 인생을 어림잡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때마다 참 고귀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몸이 안 움직이니 많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안타깝게만 보인다.

11월에는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집중된다. 그렇지만 딱 이때까지다. 11월 13일이 지나면 어머니는 다시 서울 변두리에 사는 평범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이후 어머니의 생활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아는 분들만 알 것이다. 유머가 풍부한 어머님과 함께 있다 보면 한참을 웃게 되고 웬만한 개그 프로가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다.

이소선이라는 인물을 알리고 기억시키기 위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 영화 '어머니' 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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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어머니>는 내년 봄이면 모든 촬영이 마쳐진다. 이후로 후반 작업에 돌입한다.  내년 가을쯤 최종적으로 완성해 2011년 11월 전태일 41주기에 맞춰 개봉을 목표로하고 있다. 지난 1년여의 기간 동안 어머니의 일상과 활동을 계속 담아 왔고,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빚진 마음과 미안함, 삶에 대한 조명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어머니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인지 제작진은 부담스러운 측면도 없지 않다. 한편으론 작품에 대한 주변의 기대가 많은 것도 감독에게 조심스러움으로 다가 온다.

촬영은 70% 이상 됐지만 촬영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후반 작업에 들어갈 비용도 마련하는 것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인디스토리가 도움을 주고 DMZ 영화제를 통해 지원금을 받았지만 예상하고 있는 제작비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작품이 완성도 있게 나오려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촬영 스태프들에게도 그저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만 지원해 줄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사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문제다. 영화를 책임진 감독의 인건비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독립영화의 현실이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태준식 감독 다큐영화 <어머니>를 찍고 있는 중이다.
ⓒ 영화 '어머니' 제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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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화진흥위윈회의 지원 기금을 신청하기도 했었다. 감독은 망설였지만 주변의 권유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접수시켜 본 것인데, 결과는 역시나 였다. 독립영화를 싫어하던 조희문 영진위원장 체제에서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 앞장서는 사람에게 굳이 지원금을 대 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다른 좋은 기획들도 내년에는 기금 지원이 아예 없어지면서 허덕거리는 판이지 않는가.
이런 현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는 "천만 노동자의 힘으로 만들어져야 의미 있는 작품"이라 말하기도 한다. 한사람의 열 걸음 보다는 열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요즘 제작 후원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한푼 두푼 모여진다면 이소선 어머니나 모두에게 더 큰 의미가 있는 <어머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머니를 알리고 기억시키길 원해서 영화를 시작한  감독의 소박한 마음처럼.

"이소선이 아들 전태일을 보낸 지 40년이 되었고 나도 그만큼 나이가 먹어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 나는 나의 진짜 어머니에게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애틋한 감성을 품고, 이소선을 향해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에 이소선이라는 인물을 알리고, 기억시키기 위해 그와 함께 1년을 보내고 있다. 서울 창신동의 따스한 공기와 이소선을 둘러싼 사람냄새 나는 이웃들과 함께…."

덧붙이는 글 영화 '어머니' 후원 문의 http://sosun.tistory.com
이소선 어머니 전태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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