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라야마 부시코>  포스터

▲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 포스터 ⓒ 나라야마 부시코

지금으로부터 몇 백 년 전, 눈이 많이 내리는 일본의 북쪽 산간 마을. 감자와 옥수수가 주식이고 쌀밥은 어쩌다 먹는 귀한 음식이다. 뼈 빠지게 농사를 짓지만 근근이 끼니를 이을 정도다. 딸을 낳으면 내다 팔 수 있지만 아들은 그렇지 못하다. 먹는 입 하나가 큰 일이니 결혼도 맘대로 할 수 없다.

물론 마을 원로도 있고 서로가 지키기로 약속한 규칙도 있지만 그들의 삶은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뱀이나 개구리, 메뚜기, 새들처럼 본능에 충실하다. 먹고, 자고, 짝을 짓고, 죽고…. 눈 앞에서 펼쳐지는 그 모든 행위가 어찌나 적나라한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몸부림에 동물과 인간의 차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기로(棄老) 풍습이 있다. 누구나 칠십이 되면 '나라야마'로 가야한다. 병들어 마을 묘지에 묻히는 건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나이가 되어 나라야마로 가야만 신을 만나게 된다는 것. 

'오린' 할머니는 농사와 집안일을 거뜬히 해낼 만큼 아직 근력이 좋지만 새 식구가 들어와 먹을 입이 늘어나고, 식량이 떨어져 가는 것을 보고는 나라야마로 갈 준비를 서두른다. 산으로 갈 만큼 노쇠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앞니를 일부러 돌에 부딪쳐 부러지게 만들고, 새로 얻은 며느리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

마을을 떠나기 전날 밤, 떠날 주인공인 오린 할머니, 즉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업어 산으로 모시고 갈 아들을 중심으로 마을 노인들이 둘러앉는다. 돌아가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일종의 주의사항이다.

'산에 들어서면 말을 하지 말 것,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떠날 것, 뒤를 돌아보지 말 것.'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의 한 장면  나라야마로 떠나기 전날 밤의 어머니와 아들

▲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의 한 장면 나라야마로 떠나기 전날 밤의 어머니와 아들 ⓒ 나라야마 부시코


도시락 싸들고 아들의 지게에 올라 앉아 어머니는 나라야마로 간다.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늙은 어머니지만 오래도록 산길을 오르는 아들의 얼굴에는 땀이 흐른다. 그 땀은 그냥 땀일 수 없다. 어머니를 버리러 가는 길인 것을.

어머니를 나라야마에 모셔다 두지 못하면 그것은 집안의 수치여서 더 이상 마을에서 살아갈 수 없다. 산 넘어 산을 넘고 계곡을 지나 다다른 나라야마의 정상.

수없이 많은 부모들이 오래 전부터 그곳에 와 마지막을 맞았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눈앞에 펼쳐진다. 처절하고 처참하다. 자신이 앉을 자리를 정하고 지게에서 내려달라는 어머니. 차마 뒤돌아서지 못하는 아들에게 가라고 손짓하는 어머니, 자기 먹을 도시락을 아들에게 건네주고야 마는 어머니.

25년 후에는 다시 또 아들의 아들이 아들을 업고 와 내려놓을 자리에서 어머니는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며 말 없이 두 손 모으고 앉아있다. 어머니 위로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려 차곡차곡 쌓인다.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의 한 장면  어머니를 업고 나라야마로 가는 아들

▲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의 한 장면 어머니를 업고 나라야마로 가는 아들 ⓒ 나라야마 부시코


먹을 것이 없어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던 시절, 나이 들어 힘이 빠져 일을 못하고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하는 노인들을 저 멀리 내쳐야 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그렇지만 이제는 다 지나가버린 옛날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노인이 너무 많다고, 세금을 쓰기만 한다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고 지금 이 시대에도 노인들을 저리로 밀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영화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인들에게 주의를 준다.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떠나달라고,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라고. 어쩜 이리도 똑같을까.

이름난 영화인 만큼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다 의미가 있고 상징하는 것이 많겠지만, 나는 늙었다는 이유로, 힘이 없어지고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노인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자식이 늙은 부모를 산에 갖다 버리지는 않는다고, 마을 사람들 전체가 노인이 늙어 산으로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노인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들 마음 속에서 노인을 저만치 밀어낸지 오래인 데도 말이다. 아니라고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오늘 이 땅의 노인들도 영화 속 오린 할머니가, 병들어 묘지에 묻히는 건 싫다고 나라야마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옆집 친구에게 하던 말과 똑같이 말하는 지도 모르겠다.

"너무 오래 살아서 면목이 없어…."

덧붙이는 글 <영화 속의 노년> 기사입니다.
나라야마 부시코 노년 노인 기로(棄老)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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