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프리 스틸컷

▲ 그랑프리 스틸컷 ⓒ 네버엔딩스토리


<그랑프리>는 정말 당황스러운 영화에요. 처음 이 작품 보기 전에 주연 김태희의 연기에 대한 편견 같은 것이 있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에서 김태희는 열연을 보여주었어요.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중에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단 것이죠. 그런데 작품에 대해 쓴 소리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그녀가 아닌 전혀 다른 부분에서 시작되고 있어요. 연기력이라면 이미 충분히 검증 받은 양동근이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배가 산으로 가게 만드는 시나리오와 감독의 연출력, 마지막으로 도저히 종잡을 수 없게 만들어 놓은 편집 등을 거론할 수밖에 없는 영화에요.

김태희가 <그랑프리>에서 보여준 연기가 워낙 이 영화의 다른 부분들이 엉망이라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을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아도 그녀는 이 작품에서 연기 열연을 펼쳤어요. 문제는 안타깝게도 그녀가 영화 속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작품이, 그녀가 출연한 영화중에 제일 엉망이란 것이죠. 얼핏 잘못 보면 <그랑프리>는 김태희의 화보집 같단 생각이 들게 만들어요. 만약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사랑 받게 된다면 그 공은 모두 그녀 때문이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그랑프리>는 <각설탕>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영화죠. 둘 다 기수를 다루고 있으며 말이 주요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이죠. 영화의 주인공 주희(김태희)는 경기 도중 사고로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말이 죽고 말아요. 자신과 함께 해오던 말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후 그녀는 엄청난 상실감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죠. 이렇게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제주도 목장에서 우석(양동근)을 만나게 되죠. 그는 실의에 빠져 있는 주희에게 많은 용기를 불어 넣어주어요. 우석이 아니었다면 주희는 결코 재기에 성공할 수 없었겠죠.

이 작품은 멜로라인과 경마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어요. 이런 요소들이 적절하게 섞이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랑프리>에서 두 요소는 마치 물과 기름 같아요. 어느 것도 다른 요소를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주변 요리 역할을 못한단 것이죠. 분명 멜로 라인 비중이 상당히 크긴 한데 그러한 부분들이 관객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여기에다 영화 본 관객들이라면 한때 한국 최고의 톱스타이자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고 있는 박근형씨와 고두심씨의 스토리 라인에 대해 한마디씩 던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엉성한 각본, 미숙한 연출력, 이해하지 못할 편집

그랑프리 스틸컷

▲ 그랑프리 스틸컷 ⓒ 네버엔딩스토리


<그랑프리>는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배우들이 망친 영화가 아니라 감독이 망친 영화라고 이야기해야할 것 같아요. 우선 각본 자체가 결함이 너무 많아요. 영화에서 보여준 이야기가 어느 하나 제대로 유연하게 물 흐르듯 흘러가지 않는단 것이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희와 우석의 멜로라인 같은 경우에는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영화에서 풀어내려다 배가 산으로 간 경우가 돼 버린 것 때문이에요.

이 영화는 정말 좋은 기수가 되고 싶어 하는 주희의 꿈, 여기에 그랑프리 경주에 대한 이야기, 박근형씨와 고두심씨의 서브 에피소드, 명마에 얽힌 이야기, 주요 테마인 두 주인공의 멜로라인, 주희가 기수로 재기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한정된 시간 안에 풀어내려고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한 편의 영화에 풀어내기엔 너무 많은 내용이죠. 물론 감독 능력이 뛰어나면 한정된 시간에 충분히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랑프리>는 전혀 그러지 못했기에 문제죠.

영화는 곳곳에서 연출력 부재를 심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에요.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단 하나도 제대로 그 맥을 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죠.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배우들의 연기와 캐릭터를 적절하게 설정해주고, 영화가 가야할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 길을 잡아주기 때문이죠. 여기에다 영화 후반작업인 편집을 통해 영화를 죽이기도 혹은 살리기도 하기에 더 그래요. 영화 만큼 감독의 역할과 능력이 중요한 곳은 없죠.

이뿐만이 아니에요. <그랑프리>는 편집이 얼마나 미숙한지 관객들이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주죠. 주인공들의 감정이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웃음이 나오게 만들기 때문이죠. 편집이란 것은 영화가 전체적으로 유연하면서 이야기가 제대로 이어가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하지만 <그랑프리>에서 보여준 편집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그냥 잘라서 붙여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어요.

마치 촬영 순서대로 각 편집 점을 연결시켜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죠. 여러 에피소드들이 유연하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따로 놀고 있어요. 결국 최종 편집된 영화는 아무런 내용 없이 이어지는 김태희 화보집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죠.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녀의 연기가 나쁘지 않았기에 이 작품에서 감독의 문제가 더 커 보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어요.

이 작품에 대해 너무 쓴 소리만 한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 영화에서 보여준 경주 장면은 만족할 가능성이 있단 것이죠. 여러 카메라 앵글을 사용하여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다만 이런 경주 장면이 영화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관객들의 만족감을 좌지우지 할 만큼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흘러가기에 문제죠.

결론적으로 <그랑프리>는 감독이 만들고 감독이 망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작품이에요.

덧붙이는 글 국내개봉 2010년 9월16일. 이기사는 영화리뷰전문사이트 무비조이(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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