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김주희(거인체육관, 24세) 선수가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주제스 나가와(필리핀,23세)와의 세계복싱연맹(WBF) 챔피언 결정전에서 승리했다.

김주희 선수가 1년 만에 링에 오른 경기였다. 초반부터 나가와와 난타전으로 전개됐는데 경기를 진행할수록 김주희의 눈두덩이는 혹처럼 부어 오르고 코피마저 흘렀다. 하지만 경기는 그대로 속행된 채 10라운드를 마쳤다.

경기 결과, 주심 한 명의 무승부 판정을 제외한 나머지 부심의 판정으로 김주희 선수가 2-0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김주희 선수의 얼굴 상태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멋진 투혼을 끝내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김주희 선수

멋진 투혼을 끝내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은 김주희 선수 ⓒ 김영민


지난 7월 배기석의 경기 후 사망사고로 인해 한국권투위원회(KBC)의 경기 승인 및 감독에 대한 책임 공방이 이어지며 사실상 KBC 기능이 마비된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권투협의회(KBA)가 이번 대회를 주최했지만, 선수 안전에 대한 불감증은 여전했다.

코피가 계속 흐른 상태에서 시합을 하는 것만으로도 호흡곤란을 겪는데, 눈이 감길 정도로 심하게 부은 상태에서는 경기를 이어나가기는 더 힘들다. 거리 감각이 떨어져 큰 펀치를 허용할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인데도 주심은 이번 경기를 강행했다. 김주희 선수의 얼굴은 최근 국내경기에서 안면 뼈 골절이 일어난 선수보다도 훨씬 더 심하게 부은 상태였다.

 한국타이틀 경기 후 눈밑 뼈가 깨졌던 남자 선수와 김주희의 상태를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큰 부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타이틀 경기 후 눈밑 뼈가 깨졌던 남자 선수와 김주희의 상태를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큰 부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충섭


얼굴이 그 지경이 되도록 경기를 진행하다니...

'4대 기구 통합 타이틀 방어전 및 세계복싱연맹(WBF)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 이라는 거창한 월드타이틀이 걸려있다지만, 사실상 세계여자복싱 타이틀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열리는 게 사실이다. 또한, 여자경기가 남자경기보다 더 많이 메인 이벤트로 등장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 결과 한국에서 여자복싱 챔피언은 3명인데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오른 한국 여자 선수는 7명이나 된다. 기형적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좋다. 타이틀이 몇 개가 걸려있던 간에 선수 상태가 그 지경에 이르고서도 경기 후에 병원에 가는 대신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다. 또한, 홈링에서 경기가 벌어졌던 만큼 경기를 중단하고 그간의 채점상황으로 판정을 가렸서도 절차상 문제가 없었을 텐데 선수의 얼굴이 그 지경이 되도록 경기를 이끌어간 것은 무리였다는 생각이다.

평소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한 것으로 잘 알려진 김주희 선수였기에 경기 후에도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향후 이런 방식으로 경기를 속행하는 것이 되풀이 된다면 최요삼, 배기석 선수 등과 같은 사고가 재발할 확률이 높다. 또한, 당장의 링 사고만이 아닌 은퇴 후의 선수 건강을 생각한다면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이번 경기를 끝까지 진행시킨 주심의 역할에 대해 기자는 전·현직 국제심판, 국가대표팀 닥터와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복싱 관계자 (본인들의 요청으로 이름은 밝히지 않음)에게 자문했다.

그 결과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은 것은 현장 책임자인 주심의 권한이고 결과적으로는 사고 없이 경기가 끝난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을 받았다. 하지만, 본인들이 이번 경기의 주심이었다면 경기를 중단시키고 부상 판정으로 승패를 가렸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복싱 경기룰에 따르면 주심이 경기 중 선수의 부상이 심각하다고 판단될 경우, 경기를 중단시키고 팀 탁터는 링 위로 올라가 선수의 상황을 체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김주희 선수의 부상에도 팀 닥터가 링 위로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최근 복싱이 침체된 까닭에 뉴스거리도 되지 못했지만, 신인왕 출신으로 미국에 진출했던 K 선수는 미국 데뷔전을 위해 1주일 전 CT촬영을 했다가 뇌출혈의 흔적이 나타나 경기를 뛰어보지도 못하고 퇴출당했다. 최홍만이 라스베이거스 경기를 앞두고 경기 승인을 받지 못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K선수의 불운을 위로할 것이 아니라 자칫하면 K선수가 국내 시합에서 뇌출혈로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는데서 위안을 삼아야한다.

침체된 한국복싱은 흥행을 위해 스타선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수층이 얇은 탓에 어렵게 발굴한 선수를 지키려고 편파판정을 하거나 아예 수준 낮은 선수와 싸우는 것도 모자라, 가짜 선수를 내세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관중은 더더욱 등을 돌리고 그래서 더더욱 무리한 시합이 진행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뇌수술로 선수생활을 마쳐야 했던 김태식(가운데)이 고 최요삼의 장례식장에서 후유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뇌수술로 선수생활을 마쳐야 했던 김태식(가운데)이 고 최요삼의 장례식장에서 후유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충섭


하지만 그 어떤 명분이나 상황에서도 선수들의 안전이 최우선시 돼야 한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투혼을 불사르며 극한의 훈련을 감내하는 복싱 선수들의 사연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안전을 지키는 일에 소홀하다면 관중을 잃는 것에 앞서 선수마저 잃는 공멸의 길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선수 보호 없는 복싱은 존재의 가치가 없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가?

김주희 한국복싱 선수보호 김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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