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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또는 그에 버금가는 천재지변으로 현재의 문명이 종말을 맞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새롭게 삶을 꾸려간다. 이런 설정은 기존의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다루었던 것이다.

 

그렇게 맞이하는 미래의 모습도 여러가지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사람들은 서로 치고받고 싸울 수도 있고, 아니면 함께 화합해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어느쪽이건 종말 그 자체보다는 '종말 뒤의 세상'이 더욱 흥미롭다.

 

필립 리브의 <견인도시 연대기>도 이런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60분 전쟁' 이후로 세계는 종말을 맞이했고 그 후로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60분 전쟁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60분 만에 모든 것을 끝장낼 정도였다면 지구상에 있는 핵탄두 전체가 한꺼번에 폭발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전쟁으로 지구는 황량하게 변했고, 살아 남기 위해서 미래의 사람들은 '견인도시'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캐터필러 바퀴가 달린 두껍고 넓은 철판 위에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 도시 하층부에는 엔진실과 기관실이 있어서 자체동력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렇게 이동하며 다른 작은 도시를 공격해서 잡아먹는다. 정착생활이 어려울 만큼 환경이 열악하니 이렇게 끊임없이 다른 도시의 재물과 사람을 뺏어야만 도시가 유지되는 것이다. 반면에 정착생활을 하는 도시들도 있다. 견인도시와 정착도시는 오래전부터 서로를 야만인이라고 부르며 경계를 해왔다.

 

종말 이후에 새롭게 탄생한 도시들

 

견인도시 연대기 1편인 <모털 엔진>은 거대 견인도시 런던이 정착도시를 공격하려다가 스스로 파괴되면서 끝난다. 런던의 화려한 건물과 박물관은 잿더미가 되었고 갑판 전체가 열에 녹으면서 황무지에 버려지게 된다.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인 톰과 헤스터는 런던이 파괴되기 직전에 비행선 제니 하니버를 타고 아수라장에서 빠져나온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 2편 <사냥꾼의 현상금>이 시작된다. 톰과 헤스터는 17살로 성장했고 그동안 사냥터와 고물수집타운을 전전하며 생활해왔다. 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기도 하고 공중에서 비행해적들을 따돌리며 스릴을 만끽하기도 했다.

 

이런 떠돌이 생활 끝에 톰과 헤스터는 크지 않은 견인도시 앵커리지에 도착한다. 런던이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견인도시였다면, 앵커리지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설원을 달려간다. 공중에서 그 모습을 본다면 하얀 접시 위를 까만 딱정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 문제는 그 딱정벌레가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다.

 

앵커리지를 다스리는 여왕은 죽은 자들의 땅인 북아메리카로 향하기로 정한다. 아무도 가본적이 없고 가는 길조차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북아메리카로 가는 길도 험난하지만 앵커리지에게는 또다른 문제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냥꾼 도시인 아크에인절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아크에인절은 사냥한 도시를 무자비하게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앵커리지가 아크에인절에 잡히게 되면 앵커리지의 주민들은 아크에인절의 하층갑판에서 죽을 때까지 강제노역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톰과 헤스터는 앵커리지에 머물게 된다. 앵커리지에서의 생활을 즐기는 톰과 달리 헤스터는 견인도시에 적응하지 못한다. 떠나고 싶어하는 헤스터와 남길 원하는 톰, 평화로운 도시에서 둘 사이의 갈등은 점점 커져간다.

 

약육강식의 세계인 견인도시

 

전편과 마찬가지로 이번 편에서도 견인도시와 정착도시 사이에 마찰이 일어난다. 전편에서 정착도시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입장이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좀더 적극적인 공세를 준비한다. 정착도시들은 '반 견인도시 연맹'이라는 무장 조직을 만들어서 전쟁에 대비한다. 이 싸움이 제대로 터지면 60분 전쟁이 다시 재현될 것이다.

 

견인도시와 정착도시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정착도시의 사람들은 땅에 발을 딛고 살려고 하지만 견인도시의 주민들 대부분은 한번도 땅을 밟아본 적이 없다. 견인도시의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 자체가 생명이야'라고 믿고 있다. 이 두 도시가 공존할 방법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견인도시 연대기 시리즈가 계속 될수록 이 두 도시 사이의 갈등도 깊어질 것이다. 앞으로의 시리즈에서는 어떤 도시가 어떻게 사라져갈지 궁금해진다. 또한 견인도시와 정착도시가 조화를 이룰지 파멸로 향할지도 관심거리다. 견인도시 연대기에서는 도시 그 자체도 주인공이다.

덧붙이는 글 | <사냥꾼의 현상금> 필립 리브 지음 /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사냥꾼의 현상금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2010)


태그:#견인도시, #사냥꾼의 현상금, #모털엔진, #필립 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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