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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블랙 에코> 겉표지
ⓒ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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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넬리의 92년 작품 <블랙 에코>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이자 작가의 데뷔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LA 경찰국 강력반 형사인 '해리 보슈'를 창조한다.

해리 보슈라는 이름은 환상적인 작품으로 유명했던 15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히에로니머스 보슈'에서 따온 것이다. 히에로니머스 보슈의 기괴한 그림 만큼 해리 보슈의 인생도 어두움의 연속이었다.

보슈의 어머니는 할리우드의 매춘부였고 보슈가 11살 때 거리에서 살해당했다. 보슈에게는 형제도 없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11살 이후로 보슈는 청소년 보호소와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생활하다가 16살때 군에 입대해서 베트남으로 떠난다.

베트남에서 보슈는 베트콩의 주 이동로인 땅굴에 침투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땅굴을 폭탄으로 파괴하는 병사들을 '땅굴쥐'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보슈도 그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10대 시절에 겪었던 끔찍한 전쟁은 보슈의 내면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군인에서 형사로 변신한 해리 보슈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에 보슈는 LA로 돌아와서 경찰이 된다. 군대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보슈는 고속으로 승진한다. 순찰경관에서 형사로, 거기서 다시 본청 강력계의 엘리트 형사로 올라가는데 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8년 동안 뛰어난 수사능력과 특유의 집요함으로 수많은 살인사건을 해결했다. 보슈의 활약이 책으로 출간되고 TV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속승진을 거듭할 수는 없는 법. 보슈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무장하지 않은 범인을 총으로 쏴서 죽이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는 몰락이었다. 그동안 보슈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던 상관들은 그를 본청 강력계에서 쫓아내고 할리우드 경찰서 살인전담반으로 보내버린다. 보슈로서는 모욕적인 좌천을 당한 것이다.

범죄소설의 주인공이 그렇듯이 보슈도 주위와 타협을 할 줄 모른다. 형사로서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경찰청의 가족이라기보다는 아웃사이더라는 인상이 강하다. 체제안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진실을 위해서는 경찰청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경찰청의 입장에서 보슈는 눈엣가시였던 셈이다.

<블랙 에코>의 시간적 배경은 보슈가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20년이 지난 후다. 베트남의 땅굴을 누비고 다녔던 청년은 어느새 흰머리가 드문드문 생겨나는 마흔살의 아저씨가 되었다. 결혼도 안했기 때문에 처자식도 없다. 한때 LA의 스타 형사였지만 이제는 작은 경찰서로 쫓겨나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신세다. 가끔씩 떠오르는 베트남의 악몽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릴 때도 있다.

작은 경찰서에서도 어김없이 사건은 발생한다.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에 보슈는 호출을 받고 출동한다. 댐 근처의 굴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현장으로 나간 보슈는 피해자가 베트남에서 자기와 함께 근무했던 전우 메도우스라는 것을 알아낸다. 전쟁의 후유증인지 메도우스는 약물중독자로 변해있고 사망원인도 마약인 것 같다. 하지만 보슈는 직감적으로 이 사건이 살인사건이고 배후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살인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작품의 제목을 번역하면 '검은 메아리'가 된다. 그것은 베트남의 땅굴을 가리키는 말이다. 땅굴 속으로 들어갈 때, 군인들은 파란 세상에서 암흑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하곤 했다. 땅굴의 시커먼 입구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아가리처럼 보인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다. 그런데도 보슈와 동료들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땅굴 속은 증기탕만큼 덥고 개미굴처럼 복잡하다. 축축한 화장실 냄새가 진동한다. 그 안을 걷다보면 잔인하게 살해되서 벽에 걸려있는 동료의 시체를 발견할 수도 있고 죽창 함정에 빠져서 죽은 시체를 찾기도 한다. 젊은 보슈는 그때마다 그 옆에서 소리죽여 흐느낀다. 얼굴에는 땀 대신 눈물이 흐르고 흐느끼는 소리는 어둠 속에서 사방으로 메아리친다.

시체가 널려있는 땅굴 속의 풍경은 히에로니머스 보슈가 그린 지옥도를 현실로 옮겨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많은 죽음을 경험한 보슈가 전쟁이 끝난 후에 죽음과 맞서는 형사가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거기에는 어린시절 살해당한 어머니의 기억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한직으로 밀려난 한물간 형사 취급을 받지만, 보슈는 살인사건을 접하면 순수한 분노를 느낀다. 그 분노가 만들어내는 힘이 살인범을 찾아다니게 만드는 것이다. 보슈에게 있어서 악에 맞서 싸우는 것은 베트남의 악몽을 씻어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블랙 에코> 마이클 코넬리 지음 / 김승욱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블랙 에코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알에이치코리아(RHK)(2015)


태그:#블랙 에코, #해리 보슈, #마이클 코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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