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 브라질 전에서 북한의 정대세가 굵고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우리는 왜 정대세의 눈물 앞에 가슴이 울컥해지는 것일까? 우리는 브라질에 아무 원한도 없고, 북한은 어쨌든 공식적으로 외국 혹은 적국(?)일 뿐인데 말이다.

그리고 또 북한은 계속된 대 포르투갈 전에서도 비참한 패배를 맛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억울하고 분한가. 포르투갈 역시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을리도 만무한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이리라. 당신도 나처럼 정대세의 눈물을 보고 가슴이 울컥했다면, 당신도 나처럼 7:0의 참패를 보고 한참동안 비참한 심정에 맥이 탁 풀렸다면, 우리는 함께 이 작은 사건 앞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정대세의 눈물은 과연 정대세만의 눈물인가? 그리고 그저 정대세만의 눈물로 끝나도 되는가?

2010년 남아공에서의 정대세의 눈물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1960년대 일본으로 공간을 옮기자. 이제 영화 <박치기>가 시작할 참이다. 그 전에 먼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꼭 살펴보아야 한다. 수십 년간 우리가 몰랐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었던 실로 절절한 진실의 역사를 들추어 보아야 한다.

정대세의 눈물을 보며 영화 <박치기>를 말하기 전에

정대세의 눈물 북한 축구대표팀의 공격수 정대세(26)가 16일 새벽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엘리스 파크 경기장에서 열린 첫 경기 브라질전 식전행사에서 북한국가가 울려퍼지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정대세의 눈물 북한 축구대표팀의 공격수 정대세(26)가 16일 새벽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엘리스 파크 경기장에서 열린 첫 경기 브라질전 식전행사에서 북한국가가 울려퍼지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로이터=뉴시스


영화 <박치기>의 배경인 1960년대 교토, 자이니치(在日, 재일한국인) 1, 2세대가 살고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주로 강제납치 등 우여곡절 끝에 일본땅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존을 위하여 일본에서 생활 터전을 구축해야 했다. 그리고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살게 되었다.

이렇게 일본땅에 남은 조선인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일상적 폭행, 살인협박, 모욕, 수치, 조롱, 멸시 등 차별이라는 단어가 포함할 수 있는 모든 불이익과 천대를 받아야만 했다. 민족적 차별은 사회적 차별로 연결되어 이들은 교육, 의료, 주거, 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남한보다 북한의 경제력이 우월했다. 북한은, 체제경쟁의 일환이든 어쨌든간에, 같은 동포라는 역사의 진실, 한 핏줄이라는 혈연의 진실 하에 자이니치에게 거액의 지원을 하기 시작한다. 강도 일본의 땅에서 개처럼 차별받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주춧돌을 놓는다. 

남한은 어땠을까? 체제경쟁을 하면서도 자이니치만은 철저히 외면한다. 경제력이 북한을 앞지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치욕스런 한일협정 이후, 남한은 일본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재일동포에 대한 모든 민족적, 사회적 차별에 대하여 철저히 외면한다. 자국민이 일본인에게 어떤 짐승같은 취급을 받든지 말든지 모르쇠로 일관한다. 국가의 자국민 보호의무를 철저히 내팽개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자이니치 지원은 수십년간 단 한 해도 중단되지 않았다. 북한이 대기근으로 허덕일 때도 변함이 없었다. 이는 북한의 자이니치 지원이 단순한 체제경쟁으로 볼 수 없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애시당초 권력담당자들의 역사인식과 국가도덕성 자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북한의 체제경쟁이 역사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인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구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체제우위를 확보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남한의 체제경쟁은 역사를 도외시하고, 외형적으로 국가 그 자체의 덩치를 키우는 것에 중점이 있었던 것이다.

자이니치 보호한 북한, 외면한 남한

북한은 특히 교육에 집중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일본사회의 거대한 차별 앞에 짓밟히는 것에 대하여 단호히 팔을 걷어붙이고 울타리를 치고 나선 것이다. 그것이 조선학교, 재일동포들이 스스로 '우리학교'라고 부르는 희망의 보금자리였다. 이로써 일본정부의 철저한 차별과 배제정책 속에서도 자이니치들은 완전히 체계화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질식 직전의 차별에 시달리던 자이니치가 북한의 원조를 통하여 일대전환기를 맞이한 것이다. 일본에서 차별받고, 남한에서 버림받은 이들에게 북한의 원조는 단순한 금전의 차원을 넘어 생명과도 같은 빛이었고, 또한 눈물겹도록 고마운 빚이기도 했다.

그들은 일본땅에서 불가촉천민과도 같은 처지에 있던 이들은 자신들을 먹여주고, 키워주고, 가르쳐준 북한을 '조국', 즉 어머니와 같은 나라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재일조선인의 대다수가 사실상 남쪽에 고향을 두고 있음에도 남한은 단순한 국적이 있는 나라에 불과했고, 진정한 조국은 북한일 수밖에 없었다. 자이니치의 구조적 모순은 이런 배경 하에서 생긴 것이다. 정대세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북한과 남한의 결정적 차이였다. 내 자식이 돌팔매질 당하고 머리가 깨어질 때 팔 걷어붙이고 보호해주는 부모와 나 몰라라 버리는 부모의 차이였다. 역사의식의 부재, 자국민을 쉽게 버리는 패륜적 국가. 어느 쪽이 정당한지는 삼척동자만 되어도 알 것이다. 국가의 성장이란 자국민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은 자명하다. 자국민의 희생을 수단으로 하는 국가의 성장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어설프게 북한을 편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는 영원한 진리 앞에서, 우리 민족, 우리 공동체, 나와 당신의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최소한 역사적 진실 앞에 정직해야 한다는 진리만은 정직하게 직시하고 싶을 뿐이다.

일본인 감독도, 배우도 다 아는 자이니치의 삶

 조선고 학생들이 복수를 하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다

조선고 학생들이 복수를 하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다 ⓒ 시네콰논


영화는 그 조선학교의 고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전개된다.

60년대는 세계의 격동기였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68혁명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사회변혁운동이 일어났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베트남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았으며, 미국에서는 루터 킹 목사 등을 중심으로 한 시민의 권리투쟁과 반전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남미에서는 혁명의 들불이 타올랐으며, 아프리카에서는 제국주의로부터의 잇따른 독립과 연이은 내전으로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전세계적으로 냉전은 갈수록 심화되고 고착화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안보투쟁과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 등 진보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였다. 박치기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서, 자이니치 1세대가 무기력하게 받아왔던 처절한 차별을 조금은 넘어서서, 어느 정도 조직적 역량을 가진 2세대로 접어들 무렵의 이야기이다.

위에서 간략히 배경설명을 하였지만, 적어도 이 정도 지식만 있어도 <박치기>를 제대로 보는데 부족함이 전혀 없을 듯하다. 차별, 민족, 이념, 조국이라는 역사적 대의명분과 시대의 격동 속에서 자이니치 열혈청춘들은 그들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 열정, 순수함을 간직한 채 끝없이 차별받으면서도, 열렬히 싸우고, 철없이 사랑하고, 처절하게 고민한다.

죽은 친구의 시신을 둘러메고 피울음을 흘리면서, 끝끝내 그 모든 차별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존환경을 만들어 나간다. 결국 마지막에 영화는 이 모든 모순, 대립, 반목, 갈등, 투쟁을 융화하여 조화와 공생의 길을 모색한다.

실제로 북한의 재일동포에 대한 지원은 튼튼히 뿌리를 내려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자이니치 중에는 차별의 벽을 뚫고 실력있고 유명한 운동선수, 문인, 예술인 등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스스로 자이니치임을 밝히지 않은 인물들의 수까지 합하면 그 역량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일본의 현대 문화예술사에서 이들의 이름을 빼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상당히 무색해질 정도이다. 하지만 정치계만은 예외였다. 일본 중의원이었던 아라이 쇼케이(박경재)가 유일했다. 보수적인 일본정계의 핵심부에 들어갔지만, 결국 차별의 벽을 뚫지 못하고, 사실상 암묵적인 정치타살을 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비운의 삶을 거두었다. 

일본인 감독은 이토록 무겁고도 처절한 이야기를 만화적 상상력과 과장법을 동원하여 유쾌하게 풀어간다. 그러나 결코 리얼리즘을 놓지는 않는다. 자이니치들의 어설픈 우리말 연기까지 훌륭하게 표현하였으며, 조선고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들의 일상적인 충돌과 패싸움, 버스를 뒤집는 사건, 장례식에서 관이 들어가지 않아 도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장면 등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실제의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

배우들도 대부분 일본인들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배우 오다기리 조부터, 일본의 문근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와지리 에리카, 청춘스타 타카오카 소스케까지 쟁쟁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타카오카 소스케는 2006년 방한하여 "개인적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에 대해 일본은 비열했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해주기 바란다"라고 발언하여 우익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이 영화의 주제곡은 '임진강'이다. 민족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북한노래이다. 60년대 일본의 유명한 밴드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가 불러서 유행하였으나 곧 금지곡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전공투 시기에 최대 애창가로서 투쟁가로 불리워졌다고도 한다(사실 나도 이 글을 쓰는 내내 이 노래를 들으며 쓰고 있다. 애잔하고도 비통한 선율이 가슴을 울린다. 개인적으로 양희은씨가 부른 노래가 참 좋다고 생각한다. 꼭 들어보시길 권한다).

노랫말처럼, 민족이 무엇이든, 국가가 무엇이든, 이념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일시적으로 우리의 삶을 가를지라도, 그것이 임진강 흐름을 가를 수는 없으리라. 그것이 역사의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미안하다, 정대세 선수...할 수 있는 게 없어 더 미안하다

대 포루투갈 전 직후, 정대세는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 자체가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 자이니치는 우리가 받았어야 했을 그 고통을 역사의 격랑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대신 짊어졌다. 해방은 되었다지만 온전한 해방이 되지 못한 탓에 그 부작용은 자이니치에게 그대로 전가되어 버린 것이다.

자이니치는 일본에서는 민족이라는 이름 하에 '조센징'으로, 한국에서는 이념이라는 이름 하에 '빨갱이'로, 북한에서도 종종 '반쪽바리'로, 같은 자이니치 내에서도 소속에 따라 배신자로, 삼중 사중의 차별과 고통을 받았다. 자이니치의 삶이란, 일제강점기부터 군부독재를 거치며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일상의 생활영역에서 알게 모르게 조금 조금씩 받았던 차별, 사회적 모순, 부조리, 부패, 불의 등 우리의 모든 아픈 역사의 응축이었다. 

영화 중, 북한의 축구 국가대표가 되기 위하여 북한으로 가는 리안성의 작별잔치에서 1세대 자이니치가 억울함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었다.

"일본은 나가라고 하지, 한국은 돌아오지 말라 하지. 적십자도 묵묵히 있지. 민단 놈들은 북쪽은 지옥이라면서 지껄이고 있어!"

또 일본애들에게 폭행 당하고 도망가다 죽은 '재덕'의 장례식 날, 장례식에 참석한 극중 '경자'를 사모하는 일본인 청년 쿄스케에게 피맺힌 울음을 토해내는 장면도 있었다.

"돌아가. 넌 이제 돌아가. 너한테 말해줄까. 일본어로 말해주지. 나가! 쪽바리. 너 '요도가와 강'의 바지락 먹어본적 있어? 제방에 피는 야생초 먹어본 적은 있어? 우리나라에서 모내기를 할 때였지. 종이 쪼가리 들이대더니 트럭에 실어버리더군. 할머닌 우셨어. 질질 끌려가며, 밭을 뒤집으며 우셨다구. 부산에서 배로. 바다에 빠져 죽어버릴까 생각했다. 고향이 텅 빌 정도로 끌려왔다고!!! 너희 일본애들은 알고 있나? 몰랐으면 앞으로도 쭉 알 수 없겠지. 멍청한 놈들. 우리들은 너희들과 다르단 말이다.

'이쿠마터널' 누가 팠는지 알고 있어? 국회의사당의 대리석 어디서 가져와서 누가 쌓아올렸는지 알고있니? 너희들이 뭘 알고 있어. 단 하나도 모르지 않는가. 나가 주게.

일본인이 남긴 돼지먹이 훔쳐먹고 야쿠자한테… 망보는 야쿠자한테 두들겨맞고 다리가 구부러졌다고. 내 형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 돌아가!! 넌 없었으면 좋겠다. (정중하게) 돌아가…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그대들에게 미안하다. 그대들이 끝없는 차별과 고통 속에 신음할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서 미안하다. 일 개인으로서 나 하나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대들에게 미안하다.

우리가 가진 말로는, 아무리 찾아도 '그대들' 이상의 단어를 쓸 수 없어서 더더욱 미안하다. 자이니치라고 하든, 재일한국인이라고 하든, 재일조선인이라고 하든, 재일동포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간에 그대들을 타자(他者)로 칭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미안한 것이 있다. 북한 선수들은 전용 훈련장이 없어서, 먼 이국땅 남아공의 동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했다고 한다. 북한에 유니폼이 부족한지, 정대세 선수가 안영학 선수가 입던 유니폼의 등쪽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프린팅한 옷을 입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포르투갈 전에서는 상대선수들은 비올 때 특별히 신는 우천용 축구화를 신었는데 북한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경기가 끝난 직후 김병지 해설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비가 올 땐 접지력 좋은 플라스틱 축구화(밑바닥이 쇠로 된 것)를 신는데 이것을 신은 포르투갈 선수들과는 달리 북한선수들은 신지 않았더라. 혹 축구화가 없어서는 아닌지? 비가 오면 미끌어져서…"라고 글을 남겼다고도 한다. 이런 점도 나를 안쓰럽게 한다. 아마 김병지 해설위원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에 그런 글을 남겼을 것이다.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왜 우리는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인데, 열악한 환경에서 비를 맞으며 처절하게 싸우는 저들에게 축구화 하나도 못 사준다는 말인가. 반세기 전에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댔어도 그건 주변 열강들의 이해타산에 놀아난 것이니 우리 모두는 결국 같은 피해자가 아닌가. 그걸 우리 모두가 다 아는데, 역사의 진실은 숨길 수가 없는데 왜 우리는 이토록 오래 서로를 미워해야만 하는가.

북한보다 수십배 수백배 잘 살게 되었으면 도와주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닌가. 왜 우리는 많이 가지고도 이렇게 옹졸한 잡배가 되어야만 하는가. 가진 자가 베풀지 않고, 강한 자가 너그럽지 않고 갈등을 푸는 길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미 과거의 우민이 아닌데, 왜 아직도 주변 열강의 꼭두각시 놀음과 정치인들의 술책에 바보처럼 놀아나야만 하는가. 

이제 우리의 축구를 하자, 하나의 우리

이처럼, 정대세의 눈물은 사실 우리의 눈물이었다. 이제 한 자이니치 청년의 고뇌에 찬 눈물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자. 승리의 눈물이든 패배의 눈물이든 간에 우리 모두 함께, 그리고 당당하게 부둥켜 안고 웃고 울자.

어제는 정말 진다는 것이 억울했다. 한국이 졌을 때도 억울했지만, 북한의 패배는 그와는 또 다른 씁쓸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에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7:0으로 대패하는 북한 선수를 보는 마음이 눈물이 날 정도로 애처로웠다.

한골 한골 들어갈 때마다 움찔 움찔 오금이 저리고 아…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와 같이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면 우리 내면에 무언가 뜨거운 공감대적 고리가 있다는 것이다. 냉전적 이념 따위 녹여버릴 수 있는 뜨거운 인간애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1세기 이상, 주변 열강의 꼭두각시 놀음에 휘둘려왔다. 지난 1세기 이상 서구에 대한 근거없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잘 살아봤자. 그것이 반쪽짜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상상력도 경쟁력도 곧 밑천을 드러내보일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돈을 쏟아붓고, 좋은 감독을 영입하고, 애국심을 복돋우고, 할 수 있다고 외쳐봤자, 그건 어차피 반쪽짜리 축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한국의 한계이다. 우리는 아무리 죽어라고 해봤자 위쪽이 막힌 상황에서는, 대륙으로 달려나갈 수 있고, 이길 수 있고, 서로 교류할 수 있고, 서로 도우며 잘 살 수 있다는 상상력을 가질 수가 없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옹졸해 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인식은 공간의 지배를 절대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대륙적 기상과 진취적인 상상력, 당당한 패기를 가질 수 없다.

대북관계에 있어서 일부 부도덕한 정치인들이 뭐라고 현혹하든, 우리는 우리만의 지혜를 가지자. 옳고 그름을 분별하자. 이념 따위 우리는 모른다. 누가 나쁜 놈인지 좋은 놈인지 잘 보고 잘 판단해서, 남북한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키워주고 밀어주고 응원해주자. 그래서 남북한 단일팀을 구성해서 한번 원껏 뛰어보자. 지난 10년간의 평화적인 분위기가 연속되었다면 이번에는 단일팀이 나갈 수 있었는데 과연 누가 분위기를 엉망으로 망쳐버렸는가.

<박치기> 수상경력
2005년 아사히 선정 베스트영화 1위
마이니찌 영화상 일본영화 대상
마이니찌 영화콩쿨 음악상
닛간스포츠 영화대상 작품상
일본아카데미 영화상 신인상
일본아카데미 영화상 우수작품상
일본아카데미 영화상 우수감독상
일본아카데미 영화상 우수각본상
다카사키영화제 최우수 신인남우상

등 2005년 일본의 13개 영화상 가운데 30여 개 부문을 석권하여 일본 열도를 뒤흔들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일본의 국민 여동생 사와지리 에리카는 이 영화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국내에서는 2006년 CQN명동에서 단관개봉했다.


승패는 중요치 않다. 지구상 어느 나라든, 그 나라가 남북 분단이 되어서 남북 양팀 모두 깨진다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가소롭겠는가. 두배로 깨어지는 것 아닌가.

또 한쪽이 이겨봤자 반쪽짜리 승리 밖에 되지 않으니 그것 또한 찝찝한 승리 이상이 될 수 없지 않은가. 나아가, 양쪽 다 이긴다고 해도 그것 또한 우스운 것 아닌가. 둘다 잘하면서 따로 따로 팀 보내서 두배로 먹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얄미운 짓인가.

져도 좋다! 이기면 더 좋다! 제발 하나가 되어서 제대로 뛰어보자. 쪼가리 쪼가리 찢겨진 남쪽나라, 북쪽나라 아둥바둥거리는 거 보면서 음흉하게 웃고 있는 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 제발 반쪽짜리 축구, 비효율적인 축구 더 이상 하지말자. 하나의 축구, 우리의 축구를 하자. 그래서 정말 제대로 한번 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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