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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형체만 남은 옛날 자전거가 프랑소와의 안뜰에서 쉬고 있다.
 앙상한 형체만 남은 옛날 자전거가 프랑소와의 안뜰에서 쉬고 있다.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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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억을 돌이켜보면 오래된 세탁기나 재봉틀, 선풍기 같은 물건들이 하나씩은 집안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십여 년이 지나 유행이 바뀌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도 그들은 고장 한번 안 나고 충실하게도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또 동네를 돌던 수리공들이 망가진 기계를 공터나 길가에서 고치던 것을 구경하던 추억도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날마다 새로운 무언가가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하지만 우리가 진정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기계가 가져야 할 견고함이 아닐까 싶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래된 오토바이와 자전거. 두 바퀴에 인생을 걸고 오래된 기계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두 명의 프랑스인을 소개한다.

진정한 재활용의 붐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프랑소와의 작업실에 집을 지은 제비 한쌍.
 프랑소와의 작업실에 집을 지은 제비 한쌍.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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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사람들은 고장 난 물건이나 구식의 물건들에 대한 미련은 갖지 않는다. 그러나 어디서 불었는지 복고풍의 열기로 구식 디자인의 자전거나 라디오, 전화기 같은 것들이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문제는 오랜 세월을 머금은 기계들의 진가를 평가하여 새로 고쳐 재활용한다기보다는 겉모습만 옛 디자인처럼 본뜬 새로운 신상품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앤틱은 특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또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특별함에 대한 값어치가 매겨진다. 겉모습만 그럴싸한 가짜 앤틱보다는 오래된 물건을 소중히 여기며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다시 사용하는 것에 진정한 기쁨이 더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만들고 또 만들어낸다. 한번 탄생된 물건이나 기계들은 지구 위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구를 갉아 먹어가며, 환경을 오염시켜가며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기 위해 열을 올린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신기술로 탄생된 현대의 세탁기 수명은 평균 10년, 30년의 세월이 흘러도 문제없이 작동되는 구식 세탁기. 사회가 그리고 대기업들이 기계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새로운 소비 풍조를 지금껏 자아내 왔다. 오래된 물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진정한 재활용의 붐이 사회와 기업,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서 새롭게 일어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르노 르 수아베] 오래된 오토바이를 새것으로 살려내는 마술사

르노 르 수아베.
 르노 르 수아베.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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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가난하던 젊은 시절, 르노 르 수아베(Renaud Le Suavet)는 무척이나 오토바이가 갖고 싶었다. 돈이 없어 헌 오토바이를 구해 새것으로 수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옛날 오토바이를 전문적으로 재탄생시키는 메카니션이 되었다. (르노: latelierdu2roues@yahoo.fr)

르노의 작업실.
 르노의 작업실.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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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닉을 좋아하며 작동하지 않는 것을 만져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일, 그래서 다시 이 세상을 활보할 수 있게 한다는 기술이 매력적이죠, 또한 항상 집에서 일할 수 있고 늘 새롭게 펼쳐야 할 연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일에 흥미를 강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낡은 고물 덩어리가 아틀리에로 들어오고, 저는 그것을 해체하죠, 그리고 다시 조립한 후 엔진을 켭니다. 엔진이 부릉부릉 소리를 낼 때 느껴지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못 쓰는 오토바이를 가져오거나 직접 고물 시장에서 해체 직전에 놓인 낡은 오토바이들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수작업을 통해 해체, 재조립의 과정을 거치면 근사한 앤틱 오토바이가 완성된다.

어떤 경우는 옛날 부품을 구하지 못해 1년 이상의 수리 기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헌 가구를 손질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요즘의 유행처럼 오토바이 수리 또한 노스탈지에 의해 움직이는 열정이며 장인정신이 깃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녹슬고 볼품없이 망가진 오토바이라 할지라도 르노의 마법의 손을 거치면 새것과 헌 것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멋지게 탈바꿈한다.

르노의 작업실에 오면 버려지거나 헌오토바이들이 새롭게 탄생한다.
 르노의 작업실에 오면 버려지거나 헌오토바이들이 새롭게 탄생한다.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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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에 의해, 소문에 의해 알려진 르노의 이름과 '두 바퀴 아틀리에',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브르타뉴 지방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는다. 주 고객층은 옛날의 추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중년층과 앤틱 모터사이클 수집가들, 그리고 오토바이를 사랑하는 아마추어들이 대부분이다.

[프랑소와 갈리에] 헌 자전거를 버리지 마세요!

프랑소와 작업실에는 무수히 많은 자전거가 새 생명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프랑소와 작업실에는 무수히 많은 자전거가 새 생명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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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은 이러했다. 헌것이면 무엇이든 새롭게 고치며 기능을 잃은 물건들이 새로운 기능을 발휘하도록 대체의 대안을 찾는 모임, 20명 남짓한 친구들이 모여 2006년부터 사비를 털어 운영을 해왔다. 그러다 고물 중 많이 발견되는 자전거를 수리하기 시작, 자전거에 새 삶을 부여하는 일로 모임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자전거가 필요하지만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학생들,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으로 선행의 시작을 열었다. 현재는 옛날 자전거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관계로 모임이 그럭저럭 꾸려져 가는 편이지만 초기 몇 년 동안은 가난한 젊은이들이 사비를 털어 부품을 사고 무상으로 작업을 했다.

오를레앙 시에서 벌이는 행사에 참여, 자전거 무료로 고쳐주기 캠페인도 벌여 많은 사람들이 녹슬고 고장나 구석에 버려두었던 자전거들을 하나둘 가지고 나왔다. 그들이 멋진 모습으로 재탄생하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다.

프랑소와 갈리에.
 프랑소와 갈리에.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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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입니다. 공해도 없고 운동을 즐길 수 있으며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왔던 소박하지만 세련된 교통수단입니다. 좋은 자전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값어치를 더합니다. 예전에 만들어진 자전거들은 웬만해선 망가지는 일이 없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값싼 중국산 자전거가 유통되면서 자전거의 일회용화라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공해를 줄이기 위한 요인으로 자전거가 만들어지지만 그만큼 버려지는 자전거들로 인해 오히려 환경에는 더욱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돈 많은 젊은이들은 기능성은 무시한 채 예쁜 디자인의 자전거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전거의 본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자전거는 많은 가능성을 가진 친구입니다. 몸에 익숙한 자전거로 저는 아프리카를 횡단하는 긴 여행을 마쳤으니까요."

프랑소와의 작업실.
 프랑소와의 작업실.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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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와 갈리에(Francois Gallier : http://1terreactions.free.fr/)는 작년에 모로코에 100여 대의 자전거를 보냈으며 지진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티에 자전거들을 보내기 위해 현재 수리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카보나이트 자전거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비싼 가격의 슈퍼 자전거를 사지만 삶을 위해서는 꼼꼼한 수리를 마친,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자전거가 훨씬 쓸모 있으며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

망가진 것, 헌 것을 여러 번 고쳐 쓰는 유럽인의 사고방식을 배우자

오래된 헬멧.
 오래된 헬멧.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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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동네마다 볼 수 있었던 자전거와 오토바이 수리점, 고장 난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고쳐주던 전파사, 그곳에서는 고장 난 가전제품을 감쪽같이 수리해주기도 했고 싼 가격에 재활용 상품들을 구입할 수도 있었다. 헌옷을 수선해주던 가게와 구둣방들도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다.

싼 가격에 꿈에 그리던 자전거를 사거나 갖고 싶던 제품들을 손에 넣는 기쁨, 헌것이 새것처럼 탈바꿈되던 재미가 나름 솔솔 묻어나던 정겨운 장소, 우리의 동네 귀퉁이에서 다시 그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망가진 것, 헌것을 여러 번 고쳐서 쓰는 유럽인들의 사고방식, 소비 이상주의로만 치닫는 대도시의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르노의 작업실에도 버려진 오토바이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르노의 작업실에도 버려진 오토바이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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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지은경 기자는 지난 2000~2005년 프랑스 파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최근 경상남도 외도 전시 기획을 마치고 유럽을 여행 중입니다. 현재 스페인에 머물고 있으며, 미술, 건축, 여행 등 유럽 문화와 관련된 기사를 쓸 계획입니다.



태그:#유럽, #오토바이, #르노 르 수아베, #프랑소와 갈리에, #자전거, #재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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