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벤(오른쪽)과 올리치의 포옹 장면을 내걸며 경기 결과를 알리고 있는 유럽축구연맹 누리집(uefa.com) 첫 화면

로벤(오른쪽)과 올리치의 포옹 장면을 내걸며 경기 결과를 알리고 있는 유럽축구연맹 누리집(uefa.com) 첫 화면 ⓒ 유럽축구연맹

축구장에서 뛰는 90분 동안, 선수들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경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고민하며 뛰어야 한다. 그만큼 좋은 선수의 요건 중에서 두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축구다. 맨유는 3-1로 앞서고 있는 후반전 초반에 막내 하파엘이 경고 누적으로 쫓겨났다. 머리를 감싸쥐며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경기 종료 직전 추가 시간이 1분 이상 남아 있었지만 안방 팀의 퍼거슨 감독은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벤치에 있는 의자 깊숙히 몸을 맡겼다. 준결승행 기차는 이미 50분에 맨체스터 역을 떠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 반 할 감독이 이끌고 있는 FC 바이에른 뮌헨(독일)은 우리 시각으로 8일 새벽 맨체스터에 있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2009-2010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 토너먼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와의 방문 경기에서 오른쪽 날개공격수 로벤이 터뜨린 아름다운 발리슛(74분)에 힘입어 2-3으로 지고도 준결승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지난달 31일 벌어진 안방 경기 2-1 역전 드라마가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니의 공중제비까지는 좋았는데...

 

축구장에서 자주 느끼는 교훈 중 하나가 '잘 나갈 때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정말이었다.

 

안방 팀 맨유는 발목 상태가 좋지 않은 웨인 루니가 돌아와 큰 힘을 보탰다. 그가 뛰는 올드 트래포드는 역시 박진감이 느껴졌다. 거짓말처럼 그의 발끝에서 이어진 공이 경기 시작 후 딱 3분만에 선취골로 이어졌다. 그렇게 깁슨의 벼락 같은 중거리슛이 그물을 흔든 것. 그리고 채 4분이 지나지 않아 나니의 경쾌한 발뒤꿈치 슛이 추가골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만 해도 두 경기 합산 점수에서 맨유는 3-2로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기쁨도 모자라 41분에는 두 골 차로 달아나는 축포까지 터졌다. 이번에도 그 주역은 루이스 나니였다. 발렌시아가 오른쪽에서 내준 공을 반대편에서 달려들며 오른발로 강하게 때려 넣은 나니는 그 기쁨을 안방 팬들과 나누고자 멋진 공중제비를 보여주었다.

 

'3-0'이라는 점수가 말해주듯 맨유는 정말로 잘 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2분도 지나지 않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설마하는 순간에 뮌헨 골잡이 올리치에게 왼발 돌려차기 만회골을 내준 것이었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맨유로서는 안방 관중들 앞에서 '3-1'로 앞서고 있는 경기였고 수비면에서도 비교적 뜻대로 일이 풀렸다. 상대의 골치 아픈 날개공격수 로벤이 아예 공을 몰고다니지 못하도록 에브라가 잘 따라다녔고 중원은 마이클 캐릭과 대런 플레처가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가운데 수비수 둘(비디치, 퍼디낸드)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들어온 올리치를 캐릭이 몸싸움에서 이겨내지 못하는 바람에 내준 골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후반전은 크게 흔들리는 일 없이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내 하파엘, 쫓겨나다

 

아무리 조직력이 잘 짜여져 있는 맨유라 하더라도 믿을 만한 골잡이가 뛰는 상태에서의 조직력과 그렇지 않은 상황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후반전이었다. 가뜩이나 지난달 31일 열린 뮌헨 방문 경기에서 발목을 다친 루니가 무리하게 뛰고 있는 상황이라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깁슨의 선취골을 도운 루니는 21분쯤 상대 수비수 판 부이텐과의 공 다툼 과정에서 다시 오른쪽 발목에 충격을 받고 한동안 절룩거렸다. 순간, 맨유 벤치에서는 비상이 걸렸지만 몇 분 후 루니는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계속 뛸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곳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왔다. 후반전 시작 후 5분만에 오른쪽 측면 수비수 하파엘 다 실바가 두번째 노란딱지를 받으며 아예 쫓겨난 것. 리베리의 드리블을 막다가 저지른 어쩔 수 없는 반칙이라고 하지만 전반전에 이미 받았던 한 장의 딱지를 떠올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소를 다 잃어버린 뒤 외양간을 아무리 멋지게 고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렇게 쫓겨나는 막내 하파엘과 그를 바라보는 팬들의 표정은 묘하게 겹쳐졌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또 한 명의 골치 아픈 리베리를 묶기 위해서도 하파엘이 뛰던 자리에 존 오셰이를 들여보내야 했다. 그 대신 골잡이 웨인 루니를 불러들였다. '3-1(합산 점수 4-3)'이라는 점수판은 그대로였기에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중원 싸움은 그럭저럭 버텨냈지만 뜻밖의 세트 피스에서 나오는 결정적 장면은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74분에 나온 그림 같은 발리슛이 준결승 진출팀을 가리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리베리가 차 올린 왼쪽 코너킥이 완만하게 넘어왔지만 이를 기다리고 있던 아르연 로벤의 왼발 발리슛은 골문 왼쪽 구석에 정확하게 꽂혔다. 본인으로서도 믿기 힘든 골이었는지 로벤의 표정은 0.1초마다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경기 합산 점수가 같을 경우 방문 팀의 골 기록을 우대하고 있는 챔피언스리그의 규정상 뮌헨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진 것이었다. 그러자 퍼거슨 감독은 서둘러 베르바토프와 긱스를 1분 간격으로 들여보냈지만 남아 있는 13분 동안 한 명이 더 많은 상대를 당해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대진표에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클럽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맨유로서는 첼시 FC-아스널 FC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며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노리는 일만 남았다. 11일에 벌어지는 이우드 파크 방문 경기(vs 블랙번 로버스)와 17일에 이어지는 맨체스터 더비 매치(vs 맨체스터 시티 FC)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 2009-2010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결과, 8일 올드 트래포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2 바이에른 뮌헨 [득점 : 깁슨(3분,도움-루니), 나니(7분,도움-발렌시아), 나니(41분,도움-발렌시아) / 올리치(43분,도움-뮐러), 로벤(74분,도움-리베리)]
→ 두 경기 합산 점수 4-4, 방문 경기 득점 기록 1점이 앞선 뮌헨이 준결승 진출!

◎ 맨유 선수들
FW : 나니, 루니(55분↔존 오셰이), 발렌시아
MF : 깁슨(80분↔긱스), 캐릭(79분↔베르바토프), 플레처
DF : 에브라, 비디치, 퍼디낸드, 하파엘(50분-경고 누적 퇴장)
GK : 판 데 사르

◎ 뮌헨 선수들
FW : 올리치(84분↔프라니치), 뮐러(46분↔고메스)
MF : 리베리, 슈바인슈타이거, 판 봄멜, 아르연 로벤(76분↔알틴탑)
DF : 바드스투버, 데미첼리스, 판 부이텐, 필립 람
GK : 부트

★ 보르도 1-0 올림피크 리옹 [득점 : 차마크(45분)]
→ 두 경기 합산 점수 2-3으로 리옹 준결승 진출!

2010.04.08 09:27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2009-2010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결과, 8일 올드 트래포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2 바이에른 뮌헨 [득점 : 깁슨(3분,도움-루니), 나니(7분,도움-발렌시아), 나니(41분,도움-발렌시아) / 올리치(43분,도움-뮐러), 로벤(74분,도움-리베리)]
→ 두 경기 합산 점수 4-4, 방문 경기 득점 기록 1점이 앞선 뮌헨이 준결승 진출!

◎ 맨유 선수들
FW : 나니, 루니(55분↔존 오셰이), 발렌시아
MF : 깁슨(80분↔긱스), 캐릭(79분↔베르바토프), 플레처
DF : 에브라, 비디치, 퍼디낸드, 하파엘(50분-경고 누적 퇴장)
GK : 판 데 사르

◎ 뮌헨 선수들
FW : 올리치(84분↔프라니치), 뮐러(46분↔고메스)
MF : 리베리, 슈바인슈타이거, 판 봄멜, 아르연 로벤(76분↔알틴탑)
DF : 바드스투버, 데미첼리스, 판 부이텐, 필립 람
GK : 부트

★ 보르도 1-0 올림피크 리옹 [득점 : 차마크(45분)]
→ 두 경기 합산 점수 2-3으로 리옹 준결승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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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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