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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학생들은 새 학년을 기대반 두려움반으로 기다리고 있고 지금쯤이면 대부분의 교사들도 새 학년 배정을 받았다. 그래서 올해 어떤 아이들을 만나고 일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많은 고민과 계획을 하고 있는 시기이다.

 

올해 진단평가 대구교육청에서 문제 내

 

이런 가운데 교과부와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은 3월 9일 진단평가를 일제고사로 본다고 한다. 2008년에 이어 벌써 세 번째이다. 학기초에 이전 학년에서 배운 내용을 잘 이해하는지 교과별로 부진한 영역이 무엇인지 알아서 지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올해 가장 달라진 것은 초등학교 3학년도 시험을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국어(읽기, 쓰기), 수학(셈하기)를 본다고 하더니 2학년 내용을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시험을 왜 보는지, 누가 보는지는 제대로 밝히지도 않더니 진도도 제 멋대로 바꾸었다.(관련기사: 3월초 일제고사,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평가?)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은 7월에 학업성취도 평가를 보기 때문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안 본다더니 결국 학교에서 출제해서 보란다.

 

시험지를 보니 과목마다 1개 -5개 있던 서답형이 다 없어지고 30문제 다 사지선다이다. 선택형이란 말도 없어지고 깔끔하게 사지선다로 이름붙였다. 즉 이번 진단평가도구는 사지선다 시험지밖에 없다.

 

교과부가 시험 배후라고 왜 못 밝히나?

 

또 달라진 것은 공문에 시험 근거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중학교 1, 2학년 전국연합평가를 볼 때만 해도 신경써서 각종 시행근거를 제시하였다. (관련기사:충북교육청 일제고사 실시 근거를 말하다)그러더니 최근 서울과 강원에서 해직교사들이 잇달아 승소하고, 특히 강원도의 경우 시도교육감의 시험 권한에 대한 정당성이 문제시되었다.

 

장학사들 사이에서도 시험 근거가 없어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이 때문인지 올해 공문들은 자세한 안내없이 일정만 알려주고 학생수를 보고하라고 하였다. 법치를 강조하는 정권에서 불법을 자행하는 셈이다.

 

교과부는 진단평가에 대해서는 보도자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7월에 본다는 학업성취도평가에 대해서만 자세한 안내가 나와 있다. 그래서 3월의 진단평가는 없어진 줄 알았다. 그러더니 대구교육청에 시험출제를 의뢰했다고 한다. 작년까지는 공문 내리고 학부모들에게 문자 보내라는 것까지 공문으로 내려보내더니 올해는 떳떳하지 못하게 조용히 해결하고 있다.

 

그동안 진단은 제대로 했을까?

 

그럼 진단평가가 제대로의 기능은 하고 있을까? 사실 모든 교사들은 학기초에 학생들을 여러 가지로 파악한다. 이전 학년에서 특수아나 한부모가정, 무료급식대상, 정서적 장애가 있는 아이들,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자료를 준다. 학기초부터 갑자기 학급에서 00에 해당하는 학생을 조사하는 교육청 공문이 많기 때문이다. 무료급식자 대상을 정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학습 부진이 심각한 아동은 한 학급에 몰리지 않도록 골고루 나눠서 편성한다. 그러므로 부진아를 골라내기 위해 전국에 똑같은 문제로 일제고사를 굳이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진단평가로 제대로 학생들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을까? 그간 교사들이 진단평가가 굳이 필요없다고 많이 비판하였는데, 실제 진단평가가 학습부진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는 연구결과가 정부 기관에서 나왔다.

 

진단 제대로 못하는 진단 평가

 

이 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학습 부진 학생을 위한 정책 마련 보고서에 나온 표이다. 왼쪽은 일제고사로 파악한 학습 부진 학생 비율이고 오른쪽은 교사가 인지하고 있는 비율이다. 학교분류에서 교복투학교(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학교)나 자원학교는 가정 환경이 어려운 학생이 많아 특별 지원을 받는 학교이다. 일반 학교들에 비해 학습부진학생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학교들이 대부분 일제고사 점수가 나빠 학력향상부진학교로 지정되었을 것이다.

 

또 시험결과보다 교사가 파악한 부진아 학생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초학습부진학생(2008년까지 초3이 본 평가)이나 교과학습부진학생 비율이나 다 마찬가지다. 대체 왜 그럴까? 진단평가 시험지가 너무 쉬워서일까? 교사들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일까?

 

사지선다 일제고사로는 결코 진단 못 해

 

일단 사지선다 시험지로는 학생들의 능력을 제대로 진단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가장 크다. 시험에 통과해도 기초 능력이 아주 떨어지는 아이들이 있고, 시험 결과에는 미달이지만 현재 학년 수업에 무리가 없는 아이들도 많다는 것이 현장 교사들의 중론이다. 그래서 대체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많았다.

 

일제고사라는 것도 문제이다. 학기초에 시험을 보든 안 보든 교사들은 새로운 단원이 시작되기 전에 학생들을 계속 관찰하여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어떤 영역은 쪽지 시험으로 파악해야 할 때도 있고 어떤 것은 굳이 사전 파악 없이도 실제 해 보면서 충분히 지도가 가능한 것이 많다. 학기초에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1년내내 진단과 교육이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교과별로 모두 30문항에 사지선다 일색이다. 그러다보니 4지선다로 평가할 수 있는 것만 진단하는 셈이다. 교과의 특성이나 교과교육과정과도 관계가 없다. 국어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이해력 전반적인 것을 진단해야 한다. 지금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정도의 평가밖에 없어 국어 수업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어 시간에 발표하기, 글쓰기, 글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 정도를 통해 충분히 진단할 수 있다. 또 정서, 친교 단원 비중이 60% 정도인데 평가는 읽기 이해 능력, 그것도 암기력 위주로 평가한다. 이 때문에 오히려 국어 수업이 단답식 문제 풀이로 획일화되고 있다.

 

영어를 보자. 초등 영어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4영역 중에서 듣고 말하면서 의사소통하는 것이 중심인데, 시험 문제는 절반 넘게 듣는 문제만 나온다. 시험 문제를 봐도 시험 유형에 익숙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이런 시험지로 100점 만점에 도달/미도달을 나타내는 게 결국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결국 사지선다 일제고사로 학생 진단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일제고사보다 다양한 진단 도구와 자료 보급이 시급

 

그럼 현장에서 교사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부진단계에 맞는 교재와 자료보급이다. 교과부는 2008년부터 진단평가 결과에 따라 보정교육을 한다고 했는데, 한국교육과정 평가원에서 보낸 자료는 아직 배우지도 않은 2007개정교육과정에 따른 부진아 지도자료이다.(학습부진아 지도하라며 배우지도 않은 내용을?

 

이런 자료집을 스스로 풀 수 있으면 우수한 아이라는 비판도 있다. 시도교육청에서 여러 자료를 만들고 있지만 실제 지도하려고 보면 요약 정리이거나 천편일률적인 자료로 여전히 문제풀이학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아이들의 능력은 아직 분화가 덜 되어 있어서 국어, 수학이나 주지교과만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발육이 늦어서 아직 섣부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아이가 있고, 수업 시간에 열심히 활동하고 잘 하는 것 같은데 개념 획득을 어려워 하는 아이들도 있다. 반대로 시험은 잘 보는데 신체활동이나 자료를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이후 학습능력 향상에 걱정이 되는 아이들이 있다.

 

현재 교사들은 이런 모든 것을 다인수 학급에서 일일이 수업을 해가면서 발견해야 하고, 어떤 건 1년이 지나서야 알 때도 있다. 그래서 학습당 학생수 감축 뿐 아니라 이를 조금 더 손쉽고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진단도구를 바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규 수업이 끝난 뒤 남기는 '나머지 수업'은 효과나 학생들 자존감 측면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취약 계층 지원 등 교육 양극화를 줄일 방안 뿐만 아니라 국가 수준의 장단기 계획이 필요하다고도 하였다.

 

교과부는 자기 자신부터 먼저 진단하고 학부모 선택권도 줘야

 

이제 새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상을 보면 지금처럼 일제고사 형식의 진단평가는 제대로 된 진단도 불가능하고 학습부진학생 지도에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과부는 여전히 이번 3월 일제고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식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지금 진단이 가장 필요한 곳이 교과부가 아닐까?

 

올해 초등 3, 4학년과 중학교 1학년에 2007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는데 현장 준비는 별로 되어있지 않다. 4학년 학생은 교육과정 개정 때문에 뜻하지 않게 결손내용이 많은데 다음주에 수업이 시작되는데도 불구하고 교과부는 사전 진단과 해결책 마련에 별로 절박성을 못느끼고 있다. 

 

영어의 경우 알파벳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단어 공부를 시켜야 할 상황인데 진단평가를 봐서 어디에 써먹겠다는 것일까? 지금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인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라는 것일까? 4학년 공부를 해야 할 학생들의 기초 실력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결과도 못 내놓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교과부는 자율과 선택을 강조하면서 왜 이런 시험에 학부모 선택권을 주지 않고 있을까? 경기도교육청은 학교와 학부모에게 모두 선택권을 준다고 한다. 충북 교육청은 24일에 학생이나 교사, 학부모 의사는 묻지도 않고 9만 7500명의 학생들이 응시한다고 발표했다. 일제고사 선택권 때문에 경기도로 이사를 갈 수도 없고 참 어려운 상황이다. 교과부는 정 이런 진단평가를 보고 싶다면 일제고사 대신 수업을 하고 싶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바람도 실현시켜주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학기초 학생들과 교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꿈을 꿔야 할 아이들에게 "너는 부진아"란 낙인부터 찍은 일제고사는 하루빨리 없어졌야 합니다. 일제고사로는 아무리 좋은 문제를 만들려고 해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우선되어야 할텐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연구한 내용이라도 제대로 실현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진단평가,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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