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주인공 손지현(이나영)은 남자에서 여자로 성(性)을 바꾼 후 행복하게 여자의 삶을 살고 있는 포토그래퍼다. 그런 그의 집에 어느날 친아빠를 찾기 위해 가출한 9살짜리 유빈(김희수)이 찾아온다. 그가 말한 아빠의 이름은 바로 손지현. 알고 보니 이 아이는 지현이 남자였을 때 대학 동기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들이었던 것이다.

한국 코미디 영화에서 트랜스젠더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는 흔치 않다. 일전에 <색즉시공 시즌2>에서 트랜스젠더가 나오기는 했지만 거의 놀림감 수준으로 등장했다.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게다가 그가 '과속'을 했다는 설정은 분명 재미있는 소재가 될 수 있다.

 여자로서 행복한 삶을 살던 손지현(이나영)

여자로서 행복한 삶을 살던 손지현(이나영) ⓒ 쇼박스


그래서 영화는 졸지에 아빠 행세를 해야하는 손지현의 해프닝에 중점을 둔다. 남장을 하고 아빠라고 나타나는 지현. 말투도, 행동도 완전히 여자처럼 행동하는 지현을 보고 유빈은 어리둥절해하지만 어느 순간 지현을 진짜 아빠처럼 생각하게 된다.

기발한 소재, 그리고 이나영. 그럼에도...

이 영화는 내용 못지않게 배우 이나영의 남장 변신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이나영은 여배우들이 조금은 꺼려할 수 있는 독특한 배역을 아름답게 소화하는 배우다. 혹자는 CF 전문 배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는 여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비몽>의 이나영을 생각하면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기발한 소재, 그리고 이나영이라는 배우의 출연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여자를 좋아해>는 그저 그런 범작에 머물렀다. 트랜스젠더가 남자 역할을 해야 하는 소동 외에는 웃음을 유발할 소재가 없고 그나마 소동마저도 웃음을 주기엔 뭔가 부족했다.

 이나영은 독특한 캐릭터를 매력있게 소화하는 배우다.

이나영은 독특한 캐릭터를 매력있게 소화하는 배우다. ⓒ 쇼박스


너무나 익숙한 소동이 반복되다 보니 웃음이 나오기보다는 '또 그렇게 되겠구나'라는 짐작만 나온다. 이렇게 되면 의외의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기대할 수가 없다. 지현의 친구로 나오는 자동차 영업사원 영광(김흥수)의 '원맨쇼'가 그나마 웃음을 줄 뿐이다. 일단 코미디 영화에서 웃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유빈 부모의 실종 신고를 받고 유빈을 찾아나서며 지현을 유괴범으로 의심하는 형사가 등장하지만 이 형사가 영화 속에서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는 것도 영화의 단점이다. 코믹함과 긴장감을 주겠다는 의도는 나오지만 등장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진부해 웃음도, 긴장감도 주지 못한 채 어쩡쩡한 인물로 남은 것 또한 아쉽다.

트랜스젠더와 과속, 그 사이에서 길을 잃다

뭐니뭐니해도 <아빠는 여자를 좋아해>의 가장 큰 아쉬움은 '트랜스젠더의 삶'과 '과속'. 이 두 민감한 소재를 둘 다 다루려다 오히려 둘 다 손만 댄 채 끝이 났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는 전자를 더 강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으로서 살겠다' 그 이야기만 나올 뿐 그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민감할 것 같은 문제는 아예 손을 대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남장을 하고 아빠로 나타난 지현. 그의 해프닝으로 영화는 웃음을 유발한다

남장을 하고 아빠로 나타난 지현. 그의 해프닝으로 영화는 웃음을 유발한다 ⓒ 쇼박스


결국 영화는 민감한 부분은 그냥 넘어간 채 해프닝 위주로 진행하려다 웃음은 웃음대로 유발하지 못하고 메시지 전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지현이 여자의 삶을 다시 찾고 유빈이 친엄마와 새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

성을 바꾸고 새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 속에 그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 영화는 '과속'을 통해 과거에 남자였음을 숨기고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숨기려는 여성을 통해 그 어려움을 이야기하려했지만 '수박 겉핥기'에 그쳤다.

민감한 부분을 살짝살짝 간지르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가 아니라 쉽게 해프닝 위주로 영화를 끌고간 안일한 모습이 안타깝지만 그만큼 아직 우리나라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를 건드리기가 아직은 어려운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이나영 김희수 트랜스젠더 과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