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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나 단편영화를 보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미래의 거장이나 좋은 배우들을 미리 만날 볼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처음 연출한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들은 작품 완성도면이나 전개 면에서 프로 같은 모습을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런 약점들은 필자와 같이 상업영화에 눈이 맞추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쉽게 즐길 수 없는 부담감이 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최근 부산 국도예술관과 함께 독립영화실을 만들어가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고민 중에 하나가 이런 부담감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결국 답은 계속해서 독립영화와 단편영화를 접해야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계속 독립영화와 단편영화들을 보면서 장단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쉽게 다른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복 받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도 없으며 구할 수도 없는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들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최근 자주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들을 즐기다보면 꼭 다른 분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작품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세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한 김지곤 감독 작품을 소개하고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김지곤 감독은 첫 연출작 <낯선 꿈들>을 통해 제13회 브라질 국제 학생영화제 "국제경쟁부문"수상, 제10회 메이드인 부산 독립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제9회 인디다큐 페스티발 국내 신작전 초청, 2009 부산 아시아 단편영화제 경쟁부문초청,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9 한국 단편 경쟁 부문 초청, 2009 한-불 영화제 셀렉시옹2009 부문 초청 등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김지곤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낯선 꿈>, <길 위에서 묻다>, <오후 3시> 등 세편입니다. 이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오후 3시>였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명암이 대비된 영상과 함께 부산지역에서 촬영된 작품이라 부산 출신인 필자에게 상당히 정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세 작품 중 <낯선 꿈>과 <오후 3시>는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다큐멘터리 영화 형식을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제 면에서 상당히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마치 연작 형식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다만 <오후 3시>가 가장 최근에 연출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낯선 꿈>보다 모든 면에서 확대되고 세밀해진 느낌을 줍니다. 특히 <낯선 꿈>과 <오후 3시>는 부산지역에서 키노 키드로 지낸 분들이라면 충분히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옛 추억으로 묻혀 있던 부산 지역의 여러 극장들에 대한 기억들을 꺼내 볼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멀티플렉스의 안락함은 없을지 모르지만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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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세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오후 3시>를 중심으로 김지곤 감독과 인터뷰를 해봤습니다.

- 김지곤 감독님 안녕하세요. 자신의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전 1983년생이구요. 2010년 대학원 석사 졸업예정입니다. 원래 전공은 영화가 아닌 신문방송전공입니다.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신문방송 전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 신문방송 전공이신데 어떻게 단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제 꿈은 영상 PD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 국사시간에 일본군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다큐멘터리가 저에게 꿈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 꿈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영화편집 공부를 하면서 대학 지도교수님의 전국 동시상영관 소재 실험영화를 만들 때 조감독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물론 이전에 VJ아르바이트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백령도에서 해병대 생활을 하면서 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많이 생각하였으며, 군대에서도 영상물 제작을 계속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제가 깨달은 것이 영화 보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감상하는 법이 중요한 것인데 당시만 해도 저 같은 경우 감상하는 법을 제대로 모르고 흉내만 내는 정도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깊이 있게 도전하고 싶어서 단편영화 연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두 번째 작품 <길 위에서 묻다>를 일본에서 연출하였는데, 어떻게 일본에서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길 위에서 묻다>는 김지곤 감독님이 연출한 <낯선 꿈>, <오후 3시>와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지요?
"일본 삿포로필름커미션이 부산과 함께 실시하는 "삿포로 무비 스케치"에 두 번째 참여 감독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삿포로 무비 스케치"는 삿포로필름커미션에서 왕복 여비와 로케이션, 현지 스태프 비용 등의 제작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단 조건은 촬영기간은 4박 5일, 시간분량은 15분 이내입니다. 이런 제작 조건이 붙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힘들게 촬영하고 편집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처음 제작비란 것을 지원받아 단편영화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너무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다만 위에서 이야기한 조건들 때문에 개인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하고 끝내버린 것이 아쉽습니다. 두 남녀 주인공을 통해 더 많은 공통부분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이게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더 큰 문제는 삿포로에 가기 전에 상상했던 것과 실제 현지 로케이션을 통해 본 것들이 너무 달라서 급하게 여러 가지를 수정해야만 한 점과 필요한 장면 섭외가 제대로 안된 점, 그리고 여러 가지 촬영제약들이 있어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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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출한 단편영화 중에 <낯선 꿈>과 <오후 3시>는 마치 연작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혹시 연작으로 구상을 하신 것인지 아니면 <낯선 꿈>과 <오후 3시>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만든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낯선 꿈> 같은 경우에는 첫 작품인데 2005년 3월 촬영을 시작해서 2006년 2월까지 촬영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영화에 대한 결말이 잘 나오지 않았으며 내용에 대해 정확한 맥을 짚지 못해 조금 힘들었구요. 당시 제가 군대를 가야 했기 때문에 실제 <낯선 꿈>이 완성된 것은 2008년 4월이었습니다. 첫 작품이 완성되는데 3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작품 모두 접근 방식은 똑 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부산지역에 동시상영관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이런 현실들을 담아 놓아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낯선 꿈>이나 <오후 3시>에 나오는 공간들이 초 현실처럼 보이지만 실제 예전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붐비던 극장이었습니다. <낯선 꿈>에 나오는 삼일극장 같은 경우엔 지금 없어졌지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인 10월 달에 수많은 언론에서 영사실 취재를 해가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또 다시 삼일극장 영사실은 조용해졌습니다.

<오후 3시> 역시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가는 극장을 담고 있습니다. 첫 작품에 나왔던 삼일극장은 이미 없어졌으며, <오후 3시>에 나오는 삼성극장 역시 이제 없어질 것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만 <낯선 꿈>과 <오후 3시>가 다른 점은 공간과 소재가 <오후 3시>가 더 확장되었단 것입니다. <오후 3시>에는 부산에서 점점 없어지고 있는 골목길 풍경을 함께 담았습니다. 멀티플렉스 때문에 작은 극장들이 설 자리를 잊고 없어지듯이, 점점 개발이 가속화되고 아파트 단지가 계속 들어서면서 우리가 어릴 때 자주 보았던 골목길까지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오후 3시>에 보면 골목길 끝에 아파트가 나오는데 이런 현대식 건물들이 점점 없어져가는 예전 모습들을 감시하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낯선 꿈>과 <오후 3시>를 촬영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충격은 사라져가는 동시상영관 같은 경우 자연의 빛과 바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동시상영관의 경우 큰 창문이 있고 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과 자연바람은 분명 멀티플렉스와 또 다른 풍경입니다. 특히 제가 동시상영관 창문을 찍은 이유는 그 큰 창문을 중심으로 현재 동시상영관과 바깥세상이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입니다. 삼일극장과 삼성극장에서 영사기를 돌리시는 영사기사분과 그 외부에 있는 우리들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한 것을 느끼게 한 것이 바로 동시상영관에 있는 큰 창문이었습니다. 창문이 저에게는 마치 단절의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 <낯선 꿈>과 <오후 3시> 모두 배우들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인위적인 음악사용 역시 최대한 자제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제 우리 일상생활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기계음이나 영화관에서 발생하는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생활 소음 등을 주로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이렇게 인위적인 음악사용을 자제한 이유가 있는지요?
"제가 처음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 때 영화는 영상언어가 주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영상을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무엇인가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자막이나 인위적인 음악을 사용하여 관객들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 대신, 실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소음이나 실제 음으로 관객들에게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오후 3시>에 나오는 아리랑 노래도 실제 동네주민분이 틀어 놓은 노래이며, 싸우는 소리 역시 진짜 촬영 중에 동네 주민들이 싸우는 소리를 담았습니다. <오후 3시>같은 경우에는 분명 좁은 골목길이지만 그 골목길을 우리라는 개념으로 확장시키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폭 넓은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은 어떤 일이든 이웃들이 함께 알고 함께 소통을 합니다. 그런 소통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진정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큐멘터리는 있는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어야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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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꿈>, <오후 3시> 모두 80년대 부산에서 영화를 즐겨봤던 분들이라면 익히 잘 알고 있는 정겨운 극장 풍경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본동시상영관이라 던지 허름하지만 추억에 젖을 수 있는 극장 풍경들이 그것인데요. 이렇게 과거 극장의 모습을 두 단편영화에서 중심적인 소재로 잡은 이유가 있습니까? 특히 두 작품 모두 등장하는 인물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부분이 영사기를 돌리고 있는 나이 지긋하신 영사기사분들이었습니다. 이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라고 하지만 실제 모든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낯선 꿈>에서 촬영했던 삼일극장은 없어지고 현재 그 자리에 지하차도가 생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극장을 없애버리고 지하차도를 만드는 것이 정말 올바른 일인지 생각해봅니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라고 하는데 이렇게 오래된 극장들이 버티지 못하고 지역주민들에게 호응조차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예를 들어 <오후 3시>에 나오는 동시상영관 삼성극장은 여전히 상영 중인데도 문을 닫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삼일극장과 삼성극장에서 수십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 오신 영상 기사 분들이 있고 특히 삼일극장 영사기사분은 나이가 많으셔서 삼일극장이 없어지면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분명 이런 극장에서 오랜 기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 오신 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삼성극장 영사실 기사 분은 자긍심이 대단하셨습니다. 자신이 문화예술분야의 장인으로서 오랫동안 일해 왔다는 자긍심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오후 3시>에서 할아버지가 마지막 장면에서 졸음을 깨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은 1년이란 시간이 걸려서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애착이 남는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 처음 <오후 3시>란 제목만 봤을 때 그 시간대에 일어난 이야기를 단편영화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낮과 밤이 모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제목을 <오후 3시>라고 지은 이유가 있는지요?
"<오후 3시>에 나오는 골목길이나 사라져가는 동시상영관 모두가 현재 우리 시각으로 봤을 때 나태로움과 권태로움이 밀려오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간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에 새벽 3시와 오후 3시가 자주 나오고 그런 느낌들과 공간이 일치하는 것 같아서 제목을 <오후 3시>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 <오후 3시>에 십자가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 장면을 많이 넣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종교적인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종교를 떠나서 다른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지요?
"이 작품에 십자가 존재차제가 하나의 이미지 메타포(은유)를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워낙 십자가에 대한 소재가 민감하다보니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웃음). 처음 <오후 3시>를 촬영할 때 골목길을 찍다보니 십자가가 보여서 담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 십자가가 관객들에게 특별한 매거핀(극적인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은 극과 극입니다.

개인적으로 종교적인 목적은 전혀 없습니다. 십자가에 대해 특별히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십자가란 것이 있고 그것 역시 우리의 공간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찬송가도 현장에서 들려오는 것을 그대로 녹음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연출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은 감독이 길을 열어 놓을 뿐이지 실제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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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3시>를 처음 볼 때는 확실히 몰랐는데 두 세 번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영화 초반부 고양이가 앉아 있던 장소와 텅 빈 복도, 휑한 소파와 창문, 그리고 영화프로그램 안내표 등을 통해 이곳이 예전에 영화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영화 초반부 멀티플렉스가 들어오기 전 부산극장가를 지배했던 80년대 극장의 몰락을 보여주는 것 같은 장면을 넣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 영화에 롱테이크 장면이 많습니다. 처음에 그런 장면들을 많이 넣은 이유는 이렇게 해야만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무장해제 할 수 있겠단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무장해제의 의미는 관객들이 이 영화는 길게 가야되며, 화면 안에서 보이는 것을 찾아내면서 호흡해야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공간들을 세밀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관객들이 영화에 나오는 낡은 것들을 보면서 무엇인가 잊혀져가는 것들을 찾길 바랐습니다."

- <낯선 꿈>과 <오후 3시> 모두 에로영화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감독님 영화를 몇 번 보면서 불현듯 생각이 난 것인데, 과거 이본동시상영관의 경우 꼭 한편이 에로영화로 맞추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두 작품에 이런 에로영화 장면을 끼워 넣은 것이 이런 이유인지요?
"에로영화 장면을 넣은 이유는(웃음) 당시 촬영 기간 동안 하는 작품이 에로영화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성적인 표현을 가미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 뜻을 이야기하자면 80, 90년대 동시상영관에서 한 작품은 항상 에로영화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공간에 대한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이미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는 에로영화의 흐느낌이 마치 저한테는 절규처럼 들렸습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극장에서 나오는 절박한 절규라고 할까요."

- <오후 3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누런 종이에 쓰진 옛 부산지역 단관극장들과 전화번호가 나오는 부분이었습니다. 글자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서 부산지역에서 영화를 즐겼던 분들이라면 한번은 다 들어봤을 법한 극장 이름들입니다. 이 장면에서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요?
"사실 이 장면에 나오는 종이는 촬영하고 나서 1년 후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벽 색깔과 종이 색깔이 너무 같아서 쉽게 인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문득 발견하게 된 종이인데 그 종이에 있는 극장들 중에 당시 삼성극장을 제외하고 남은 극장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마치 그 종이가 앞으로 삼성극장이 어떻게 될 것인지 보여주는 암시 같았습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영화를 즐긴 분들에게 서비스이기도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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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같은 경우에는 역사가 100년이 되는 옛 극장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런 극장들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실 옛 극장이 도로를 넓히기 위해 없어진 것이 정말 이해되지 않습니다. 파리에서 열렸던 한불영화제에 갔을 때 외국 사람들과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는 100년 된 극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고전 명작들만 상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만해도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이끌려온 손자 손녀들도 있었습니다.

극장이란 추억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세대가 아울려져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들과 함께 가서 옛 추억에 잠긴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분명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런 것들은 불가능합니다. 오래된 극장들이 개발논리에 밀리거나 혹은 멀티플렉스가 안 되면 추억의 공간으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개인적으로 평가했을 때 첫 번째 작품보다 세 번째 작품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정도입니다. 감독님 스스로도 자신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시는지요? 아니면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부족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웃음). 단편만 계속하다보니 영상 혹은 사운드 같은 부분에서 많은 부족함을 느낍니다. 특히 영상들이 마치 나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 한마디로 변증법적 장면들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장면과 장면들이 훨씬 부드럽게 이어지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 같은 것입니다. 훨씬 좋은 장면들을 찾아내어서 조금이라도 더 부드럽게 장면들이 이어지고 관객들이 받아들이게 할 수 있었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학생이다 보니 아직 여유로움이 없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보이는 창문 밖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 본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할머니가 몸이 불편한 아들을 위해 군고구마를 까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것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버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여러 가지 장면들이 전부 저에게 소중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 소소한 우리 일상생활들을 제가 연출하는 영화에서 어떻게 살릴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영상을 공부했지만 영상을 좀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어떤 설명 없이도 영상으로만 관객들에게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전해졌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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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작품과 상관없는 현실적인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단편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실제 관객들이 직접 볼 수 있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단편영화 세편을 연출하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이었습니까?
"역시 현실적으로 제일 큰 문제는 제작비, 즉 돈입니다. 옆에서 도와주는 좋은 후배들과 친구들이 많아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좋은 장비들이 필요한데 제작비가 부족해서 빌리지 못하고 촬영을 끝내야 될 때, 영화에 출연 섭외했는데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보니 이런 부분들이 애로사항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제 작품이 좋으면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에 스스로 더 발전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계속 노력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꼭 언급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국도예술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부산일보에 난 기사를 통해 국도예술관에서 제 작품을 상영해주고 관객들과 대화 시간을 마련해준 것이 스스로 많은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에 많이 나타나는 문제점중 하나가 일반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기 쉽지 않단 평가입니다. 물론 이것은 상영관이 거의 없는 현실과 쉽게 접할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지만 작품 자체가 너무 연출한 감독의 자기만족으로 흐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단평영화를 직접 연출하는 감독으로서 일부 관객들이 아닌 많은 관객들과 함께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어떤 영화든 관객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분들이 김지곤 감독 작품은 나쁜 점도 있지만 무엇인가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좋단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감독이 관객들 위에 군림해서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이런 작품들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관객들과 의사소통이 막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어떤 감독이 되고 싶으신지요? 그리고 꼭 한번은 연출하고 싶은 장르나 주제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란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이 이런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요. 제 개인적으로도 이런 작품들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영화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형식이나 제약을 두면 안 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최초 송고된 후 순차적으로 http://www.moviejoy.com 에도 발행될 예정입니다.
김지곤 오후 3시 무비조이 MOVIE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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