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센 놈이 왔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 말은 지난해 '등급문제'를 함축한 말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뭔가 뒤끝이 이상한 들쭉날쭉한 등급 판정 때문에 시비가 생겼던 지난 한 해였다.

 

청소년을 소재로 한 영화임에도 몇몇 장면만으로 '18세 관람가' 등급을 판정하고 이에 불복해 영화 개봉을 늦추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외압 논란'까지 생겼다. 해마다 등급 시비가 한두건씩 생기긴 했지만 2009년의 시비는 그냥 넘어가기엔 뭔가 석연찮은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다.

 

12세, 15세 등급이 '청소년 관람불가'로 둔갑하다

 

2009년 등급으로 마음고생을 한 영화를 꼽으라면 먼저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6월 'X지 때문에 18세 관람가... 정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뤘기 때문에 굳이 자세한 재론을 할 필요가 없지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버젓이 12세 관람가로 공개된 영화가 한 달 뒤 18세 영화로 둔갑한 것은 여전히 석연찮음을 안겨준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12세 관람가로 상영됐음에도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반두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12세 관람가로 상영됐음에도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반두비> ⓒ 인디스토리

 

여주인공인 고교생 민서(백진희)가 안마시술소에 다닌다는 설정과 대사 몇 줄만으로 12세 영화를 18세 영화로 바꾼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조선일보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한 내용을 들며 '외압'론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압보다 더 분명해보이는 것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한 행동은 청소년들에게 청소년 자신의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출한 영화는 절대 보지 말라는 압력이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얼마 전에 있었다. 이성한 감독의 <바람> 등급 시비다. 이 영화 또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15세 관람가로 상영됐는데 개봉 심의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학교 내에서 불량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패싸움을 하는 장면과 선생님의 심한 체벌 장면이 그 이유였던 것이다.

 

영화사 측은 결국 폭력장면을 사운드로 대체한 감독판으로 재심의를 했고 결국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고 재개봉을 했다. 그러나 영화 속 싸움 장면이 과연 18세 관람가를 줘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5세 관람가로 공개됐음에도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던 <바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5세 관람가로 공개됐음에도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던 <바람> ⓒ 싸이더스 FNH

 

예전 학교에서의 폭력과 욕설 장면이 난무하던 <말죽거리 잔혹사>나 고교생의 살인 장면이 나오는 <강철중>등은 아무 문제 없이 15세 관람가로 학생들에게도 관람의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현재의 등급은 단순히 '교복을 입고 싸운다', '여고생이 안마시술소에서 일한다'는 이유를 들며 무조건 18세로 판정한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속이 탈 지경이다.

 

18세라고? 그럼 개봉 안해! 그러나...

 

이와는 약간 다른 등급 시비가 있었다. 호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박정훈 감독의 <비상>은 18세 관람가 등급에 반발해 개봉을 연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꽃보다 남자>의 김범을 앞세운 <비상>은 소녀팬들을 타겟으로 15세 관람가를 노렸으나 호스트바 묘사와 액션 장면 등의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타겟으로 잡은 관객층을 이탈하게 만든 등급 판정에 제작진은 반발했고 결국 개봉 연기까지 선언했지만 영화의 흐름을 깰 수 없다는 내부 논의 결과로 삭제 없이 청소년 관람불가로 그대로 상영했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그것은 등급 시비 때문이 아니라 영화의 완성도 때문이었다.

 

 18세 관람가로 결국 상영한 <비상>

18세 관람가로 결국 상영한 <비상> ⓒ 성원아이컴

 

그간 등급 문제가 터질 때마다 관계자들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등급 판정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맘대로식' 등급 판정이 종종 일어나고 이 때문에 최종 판결자가 되어야하는 관객은 판결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최종 판결자 관객은 판결을 못한다

 

단지 조금 야하거나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가를 청소년 관람불가로 둔갑시키고 심지어 같은 폭력적인 내용이 있음에도 차별적으로 등급을 주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행동은 스스로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고 그로 인해 영화 제작진들은 등급을 믿지 않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물론 대부분 심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자신의 영화를 온전히 보여주기 어렵다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겐 큰 아픔이 아닐 수 없다.

 

등급을 주는 사람들은 많은 토론과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며 내용상 문제가 되는 부분 때문에 관람불가 판정을 줄 수 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형평성 없는 관람불가 판정이 계속해서 나온다면 반발은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의 입맛에만 맞춘 등급 판정은 결국 불신만을 안겨준다는 것을 올해 등급 시비에서 볼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5회는 '배우는 헐리우드 진출, 그럼 캐릭터는?'이 이어집니다.
 

2010.01.02 09:3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5회는 '배우는 헐리우드 진출, 그럼 캐릭터는?'이 이어집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반두비 바람 비상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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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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