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 역사와 정신 그리고 혁명을 그린 영화 <First Descent>

스노보드 역사와 정신 그리고 혁명을 그린 영화 ⓒ First Descent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제 스노보드 월드컵 대회가 13일로 막을 내렸습니다.

주최측은 지난 2001년 대회가 시작된 이후 아시아에서 열린 첫 스노보드 월드컵이라고 자랑하던데, 이미 한국보다 앞서 스노보드에 열광한 일본은 도쿄돔에서 서울시와 같이 점프대를 만들어 거대한 이벤트를 벌인 바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에 이어 스노보드에 열광한 나라로, 나가노 동계올림픽 등 90년대부터 스노보드 인구가 급격히 늘었고, 스노보드 선수들은 김연아 선수보다 더 많은 인기를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한국인들이 스키를 탈 때 전세계인들은 스노보드에 열광했습니다.

그래서 기후변화로 눈이 오지 않고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시가 도심 한복판에서 강행한 스노보드 월드컵 대회는 일본의 스노보드 대회나 이벤트를 따라한 '전시용'에 불과해 보입니다.

아참 혹시나 이번 광화문 스노보드 대회에 참여한 세계 10개국 정상급(?) 선수 29명 중, 스노보드의 역사와 기원 그리고 스노보더들의 로망인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한 '백컨트리 보딩'을 멋지게 담은 익스트림 다큐 <First Descent>에 등장하는 최고의 스노보더들이 나올까 싶었는데 선수명단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올해 1월 스노보드 대회에서 우승한 Shaun White

올해 1월 스노보드 대회에서 우승한 Shaun White ⓒ Shaun White


영화에 출연한, 스노보드 하나로 USA 익스트림 스노보드 대회를 수차례 휩쓸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젊은 Shaun White(http://www.shaunwhite.com/)는 일본 도쿄돔의 스노보드 이벤트에는 모습을 드러냈었습니다. 어쨌거나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벌어진 스노보드 월드컵 대회를 지켜 본 서울시민들은 스노보드의 정신이 무엇인지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2005년 개봉했던 영화 <First Descent>에 등장한 전설적인 스노보더들이 눈밭에서 서핑보드 등을 타면서 시작한 스노보드는 바로 '자유롭게 타고 노는 것과 그럴 자유, 기존 질서(스키)의 틀을 깨는 저항'이라 합니다.

그 자유와 저항의 기운이 미국과 유럽 젊은이들을 매료시켰고, 잡지와 언론들이 달라붙고 눈치빠른 상업자본이 파고들면서 현재의 익스트림 스노보드 대회나 월드컵-동계올림픽 대회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고상한 스키어에게만 허락되던 오만한 스키장이 이젠 스노보더들 때문에 먹고 살아간다고 말입니다. 스키장 주인이 스키 대신 스노보드를 탈 만큼.

월드컵을 보이콧 했던 스노보드, 전세계인들이 즐기는 스포츠!

특히 전설적인 스노보더들과 스노보드를 즐기는 이들은 동계올림픽 등에서 스노보드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유와 저항이 바탕이었던 스노보드에 경쟁과 순위를 매기는 올림픽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영화 <First Descent>

영화 ⓒ First Descent

그간 유치 실패를 거듭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한다는 광화문 스노보드 월드컵 대회는 정작 스노보드 정신과는 괴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프리스타일 스노보딩이 인기가 있는 반면, 유럽은 스노보드 레이스(크로스)가 인기라고 합니다. 누가 더 빨리 내려오느냐에 따라 순위를 매기고 우승자를 결정하는 것은 스키나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때문에 미국의 상업자본화된 익스트림 스노보드 대회에서는 스노보더들의 개성을 맘껏 표출할 수 있는 하프파이프가 가장 눈에 띕니다. 광화문에서 선보인 누가 더 멀리 높게 점프하느냐를 겨루는 빅에어 매치와는 분위기부터가 다릅니다.

그런데 영화 <First Descent>는 하프파이프나 슬로프에서의 스노보딩이 아니라 거대한 알래스카의 설원(백컨트리)에서 말그대로 자유로운 자연 그대로의 스노보딩을 펼칩니다.

헬기를 타고 산꼭대기에서 올라 스노보드 하나에 의지한 채 경사가 60도 이상인 비탈면을 눈사태 위험속에서도 거침없이 내려오거나, 말도 안되는 점프대를 만들어 설원 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은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두렵고 불안한 무모한 도전이지만 그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스노보딩 혁명'을 이뤄냅니다.

이 멋진 스노보딩 프로젝트를 위해 노르웨이에서 날아온 관록의 Terje Haakonsen의 스노보딩도 정말 환상적입니다.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리얼 그 자체의 엄청난 스노보딩을 보여줍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ISF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속 세차례나 우승했었고, 유럽 선수권 대회, US 오픈 하프파이프 등에서 수차례 우승하는 등 '스노보드의 지배자'라 불립니다.

여하튼 '닫힌' 광화문광장에서 낯선 스노보더들의 비행에 감탄-열광했던 서울 시민들이, 단순히 스노보더의 화려함만 보지 말고 스노보드가 향하고 있는 그것을 영화 <First Descent>에서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무언가를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정말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손가락 끝만 보지 마시고 손가락이 향하는 그 곳을 보시라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와 U포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 참고로 전 스키도 스노보드도 탈 줄 모릅니다. 비료포대 눈썰매가 최고라는. 아참 지구온난화로 겨울에 눈이 오지 않아 이젠 동계올림픽도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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