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낮술>을 보는 내내 커다란 두 가지 감정에 지배된다. 첫째가 주인공에 대한 한심함이요, 둘째가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병신 머저리 같은 주인공의 행동거지는 안타까움을 넘어서 실제 그가 내 주변인물이라도 그냥 포기하고 싶을 만큼 회생불가의 답답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다른 한편으로 드는 나에 대한 부끄러운 감정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렇게 답답한 주인공의 모습은 어쩌면 부정할 수 없는 내 자신 속 수컷의 일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남자들에게 이 영화는 그들의 불쌍한 치부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기에 딱이고, 여자들에겐 남자들의 애송이다운 면모를 통쾌하게 재확인하기 그만이다.

 

 영화 '낮술'의 주인공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쉴 새 없이 술을 마셔댄다.

영화 '낮술'의 주인공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쉴 새 없이 술을 마셔댄다. ⓒ 영화 '낮술'

 

영화 '낮술'에 나타난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생생한 고발

 

사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 영화는 단순히 술과 여자 앞에서 이성을 바로잡지 못하는 불쌍한 수컷의 최후를 우스꽝스럽게 보여주는 것 이상의 풍자성도 지니고 있다. 바로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이다. 이는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태 속에서, 한 사람의 가치와 진실성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여자보다 더 말초적이고 시각적인 남자를 그 타깃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혁진은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인물이지만, 술을 마시면 과감해진다. 하지만 이 과감성도 마음에 드는 이성에 대한 좀 더 직접적인 작업의 연장에서 그친다. 내성적이기도 하고 천성도 나빠 보이지 않는 녀석이라 그런지 사람을 대할 때 기본적인 예의를 갖췄긴 하지만, 소극적인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도 단지 외모만으로 여자를 수초 만에 판단하는 남자의 본능이 배어 있다.

 

또 혁진은 육체적 쾌락을 눈앞에 두고서는 순식간에 현실감각을 잃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이로써 영화는 그를 통해 일반적인 남자들이 미모의 여성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거침없이 비웃고 있지만, 혁진이 코믹스럽다 못해 귀엽고 안쓰럽게 수모를 겪는 것으로 묘사되어 비난의 주인공인 남자들 역시 이 사실을 웃고 인정할 수 밖 에 없게 만든다.

 

술은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도 모르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 장면에서 폭소했다. 혁진은 친구의 삼촌이 운영한다는 펜션에 초대 받지만 전혀 엉뚱한 곳으로 잘못 찾아간다. 분위기가 이상한 낌새를 챘다면 당연 펜션 주인에게 물어봐 확인해야 할 것을, 소심한 성격 때문에 난폭한 주인의 천대만 받고 방 안에 웅크리고 앉아 TV만 시청한다.

 

지루함은 곧 홀로 술마시기로 이어지고, 어느 순간 취해버린 혁진은 용감한 수컷으로 다시 변신하여 와인 한 병을 들고 옆방에 혼자 놀러 온 여자의 방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예상밖에도 방에선 건장한 한 남자가 나오고 혁진은 급당황하며 여자를 꼬시러 가지고 왔던 와인을 선물이라며 얼렁뚱땅 그에게 건낸다.

 

그 순간 혁진은 마셨던 술이 일순간에 깨고 동공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되는 얼빠진 표정을 짓는데, 오줌까지 지릴 듯한 멍한 그  모습은 관객들마저도 손발이 오그라들게 한다. 술에 취한 수컷이 맹목적으로 암컷의 냄새를 좇다 맞이하는 결말이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지 남자들은 백분 공감할 수 있으리라.

 

버스 정류장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방에 함께 있던 남자는 그냥 친구라 주장하며 혁진을 유혹한다. 혁진은 이미 굴욕을 당하고도 그녀의 어불성설을 믿으며 또다시 여자의 꾀임에 빠져 술을 마신다. 하지만 이내 펜션에 여자와 있던 남자가 다시 나타나 강제로 여자를 데리고 둘은 떠나버리고 만다.

 

 혁진은 미모의 여성 앞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꼭 그 과정에서 술이 촉매제 역할을 한다.

혁진은 미모의 여성 앞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꼭 그 과정에서 술이 촉매제 역할을 한다. ⓒ 영화 '낮술'

 

혁진은 또다시 낙동강 오리알이 되 버리고, 이제는 집으로 가야할 때도 되었음직 하지만, 술기운에 또다시 예정되어 있지 않은 경포대로 떠나는데... 우연을 가장하여 다시 혁진을 만난 남녀 조직단(?)은 혁진을 손쉽게 술자리로 이끌고, 혁진은 또다시 여자의 달콤한 말과 거짓 키스에 눈이 멀어 술을 퍼마시다 정신을 잃는다.

 

자, 이쯤에서 남성, 당신에게 한가지만 물어보자. 그래, 혁진은 바보고 병신이다. 하지만 뿌리칠 수 없이 예쁜 이성이 술과 함께 당신에게 접근했을 때,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도 몰랐던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른 적이, 당신은 정녕 없는가?

 

술 권하는 한국, 술 거절 못하는 한국 남성, 문제는 문제

 

영화에서 혁진이 어찌나 술통에 빠진 쥐처럼 술을 마셔대는지, 보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소주의 쓴 맛이 전해질 지경이다. 술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잘 마시면 약이지만, 독이 되는 순간도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영화 '낮술'은 술마시는 그대들에게 따끔한 메세지를 통쾌한 웃음과 함께 전달한다.

영화 '낮술'은 술마시는 그대들에게 따끔한 메세지를 통쾌한 웃음과 함께 전달한다. ⓒ 영화 '낮술'

통계로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서 술을 가장 좋아하고 또 많이 마시는 최상위권 국가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혁진의 모습은 어쩌면 답답하고 꼬이는 일상 속에서 오직 술에서 탈출구를 찾으려는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은 아닐까? 더 문제인 건 영화 속에서 혁진은 대부분의 경우 자의가 아닌 상황에서 반 강제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술을 권하는 한국, 특히 술에 있어 만큼은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한국 남자. 분명 문제다.

 

'낮술' 총 제작비는 1천만원이다. 초저예산 영화라 특수효과나 세밀한 기법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한 시간 반 동안 빠져나간 배꼽을 찾아야 할 만큼 유쾌한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기립박수를 보낼 만 하다. 또한, 인생과 술에 대해서 잠시나마 성찰하게끔 하여 독립영화로의 역할도 충실이 이행하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당신, 아니 술 때문에 한번이라도 위기에 봉착했던 당신, 낮술을 마시지 말고 보길 권한다.

2009.12.10 10:10 ⓒ 2009 OhmyNews
낮술 독립영화 소주 여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