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참가자인 고산
▲ 고산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참가자인 고산
ⓒ 최슬연

관련사진보기


우주에 대한 나의 꿈 역시 여전히 내 안에 나와 함께 있다. 막연한 동경과 설렘으로 시작된 우주에 대한 꿈이 이제는 나의 심장에 날아와 박혀 버렸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미완의 꿈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숨을 쉬고 나의 심장이 살아 뛰는 한 이 꿈도 나와 함께 살아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꿈이 오래되면 오래된 술처럼 좋은 향기가 나지 않을까? 앞으로 이 꿈이 어떻게 익어 갈지도 한 번 두고 볼 일이다.
- 고산의 미니홈피 글귀 중 -

최근 나로호 발사와 실패로 우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커졌다. 과거엔 우주하면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항공우주국 'NASA' 정도를 떠올리던 우리였지만 이젠 우리도 우주 강대국들 사이에서 우주 진출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어 2007년 3월부터 이소연과 함께 러시아의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훈련을 받고 돌아온 고산씨를 만나보았다. 고씨로부터 1시간 40분 가까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 중 우리 국민들이 궁금해 할만 한 몇 가지 내용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 내가 어떻게 한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될 수 있었는가?

고씨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워낙 뛰어난 지원자들이 많아서 최종 선발에서 이름이 불려지기 전까진 내가 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우주인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겐 큰 의미였다"며 "우주인 선발 테스트를 받는 내내 진심으로 행복했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고씨는 첫 테스트였던 단축 마라톤에서 사용했던 등 번호부터 최종 선발 때 입었던 의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념물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주인에 대한 도전이 언제 끝날진 모르지만 그에겐 도전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자가 만나본 고산씨는 우수한 지성·인성·강인한 체력 모두를 갖춘 이미 준비된 우주인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고씨는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인지과학 협동과정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 원래 장래희망은 연구원으로 우주인 선발에 지원했을 당시에도 삼성종합기술원 인공지능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운동에도 능하다. 대학 시절, 고씨는 복싱부, 등산부, 축구부에서 팀원을 이끌기도 했다. 특히 2004년에는 전국 신인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대회에 참여해 동메달을 받았으며 같은 해 여름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에 위치한 해발 7500m 높이의 '무즈타크 아타'를 오른 경험이 있다.

이야기하다 그가 보여준 사진 한 장에는 올해 여름 낭가파르바트산에서 하산하다 실족해 사망한 고미영씨와 함께 등반하던 모습이 있었다. 또 한영외고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카투사에서 군복무를 마쳐 중국어와 영어회화에도 능통하다.

- 우주인이 되기 위해 어떤 준비과정을 거쳐야 했는가?

전체 지원자 3만6206명 중, 이소연씨와 함께 최종 우주인 후보자에 선발된 고씨는 러시아의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1년 넘게 훈련을 받았다. 러시아에 머무르는 동안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고씨는 생존 훈련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생존 훈련은 산간 지역이나 바다 등에 불시착할 때, 구조대를 기다리며 극한의 환경에서도 적응하고 살아남는 훈련이다.

보통 지구로 돌아올 때, 우주인이 탑승하는 귀환모듈은 스스로 궤적을 조정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는 궤도 진입 시 입력하는 초기 데이터 값과 우주선 내부의 컴퓨터 계산에 의해 자동으로 산출되며 우주선을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지점에 착륙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때론 우주선의 계기에 예상치 못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엉뚱한 곳에 착륙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에 대비한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고씨는 여름엔 흑해, 겨울엔 러시아의 산간 지역에서 만일에 대비해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우주복을 대신해 옷을 갈아입고 비상 음식, 3리터짜리 수통만으로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버텨야 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또는 추운 겨울 산속에서 며칠씩 구조 요청을 하다 보면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멋진 추억이자 경험을 통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고 그 순간을 회상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더 말하자면 고씨는 러시아어를 비교적 유창하게 구사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처음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어 러시아에 갈 때, 러시아말을 하나도 할 줄 몰랐다"고 했다. 고씨는 "중간에 통역관이 있으니 러시아 교관들과 질문하고 소통하는 게 어려웠다"며 "처음 가서 5개월 동안은 정말 죽어라 러시아어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또 "우주인 한 명을 배출하는데 국민 세금 300억 정도 드는데 어떻게 사명감이 안 들 수 있겠냐?"며 "대한민국 대표로서 정말 열심히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사명감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그의 눈빛이 유난히 빛났다.

러시아에서의 훈련, 그리고 그 후

과연 지금 그에게 우주는 어떤 의미일까? 고씨는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되고 러시아의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1년이 넘도록 훈련을 받았다. 그 때의 경험은 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고씨는 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분명 인지과학을 공부하던 연구원에서 러시아에서의 훈련 후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씨는 미래의 꿈에 대해 한마디로 단정 짓지 않았다. 대신 고씨는 "다시 또 삶의 교차로 위에 서있다고 그 앞엔 여러 갈림길이 놓여 있고 아직 어느 길로 갈 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분명 우주인 선발 후 경험들은 그를 더 크게 했고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의 경험들이 앞으로 고산이 나아갈 길을 결정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할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참가자인 고산
▲ 고산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참가자인 고산
ⓒ 최슬연

관련사진보기


내가 만나 본 고산은 강인한 체력, 그리고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 그는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는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지만 고산과 함께 했던 1시간40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난 후, 그가 무엇이 되기를 희망하는지 정확히 알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는 분명 지금보다 더 빛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태그:#고산, #우주인, #우주비행사, #이소연, #나로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