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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다. 얼굴도 준수했고 생각보다 괜찮은 상대가 나와서 내심 흡족하게 느끼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겠다던 그 남자. 적당히 매너도 있고 오늘 나오기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편의점에 들려 버스카드를 충전하려고 그 남자를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게 했다. 그런데 가게에서 나오다 재빨리 담배꽁초를 땅에 비벼 끄는 그 남자를 발견했다. 자기 딴에는 처음 만나는 여자 앞에서 나름 예의를 지킨다고 담뱃불을 껐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던 그 곳이 금연권장 버스승강장이라는 것을 그 남자는 과연 알았을까? 일순 그 동안 쌓여왔던 콩깍지가 한 순간에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곳곳에 금연권장구역 지정

 

현재 국민건강증진법 상, 병원이나 학교는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대형건물, 공연장 등 공공장소에 대해서는 일부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또 서울시는 '간접흡연 제로 서울 사업'을 통해 대대적으로 금연 홍보 및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에서는 지속적으로 금연관련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버스승강장 등 공공장소를 '금연권장구역'으로 지정하고 이에 대한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또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고 간접흡연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이에 대한 방침을 금연아파트, 금연공원 등으로 점차 늘려나갈 예정이다.

 

정작 실천해야할 흡연자들은 무관심해

 

그러나 정작 실천해야할 흡연자들은 무관심해 지자체들의 이런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특히 이런 '금연권장구역'은 말 그대로 권장구역일 뿐이므로 실제 법적으로 강제하거나 제재를 하는데 한계가 있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금연구역에서 흡연을 하면 범칙금을 징수하지만 지자체가 정한 금연권장구역에서는 흡연을 하더라도 일정한 제재를 가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흡연자들이 이를 악용한다는데 있다. 법이 규제하지 못 하는 느슨한 틈을 타 '금연권장 버스승강장'이라고 써져 있는데도 그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핀다.

 

금연권장 포스터가 붙은 버스승강장 앞에서 흡연하는 유정열(가명, 26)씨를 인터뷰했다. 가명을 요청했지만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도 유씨는 뻔뻔스럽게 담배를 피우며 응했다. 기자의 질문에 그는 "포스터는 봤다."며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뭐라 그러는 사람도 없고"라고 짧게 답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대답은 모두 다 비슷했다. 100여차례 인터뷰 결과 "문제가 되면 끄겠다"는 응답이 71명이었고 "간혹 뭐라 그러는 사람도 있긴 한데 그러든 말든 신경 안 쓴다"는 대답이 21명이었다. 나머지 8명은 "금연권장 버스승강장이 뭔지도 몰랐다"고 답했다.

 

비흡연자들의 소극적 태도도 문제

 

기자가 인터뷰를 시도했던 흡연자 중 70%가량은 금연권장 버스승강장에서 담배를 피더라도 비흡연자들로부터 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금연권장구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에는 비흡연자들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비흡연자인 김민지(24)씨는 "공공장소인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몰상식한 행동"이라면서도 "먼저 나서서 담배 좀 꺼 달라는 요청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김씨는 "선뜻 얘기하기가 좀 그렇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임해민(23)씨도 "괜히 얘기를 꺼냈다 상대방이 화만 냈다"며 "국민에게 자율적으로 맡기기보단 좀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서울특별시 금연환경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었지만 1년이 넘도록 그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이에는 실태도 알아보지 않고 정책을 마구잡이로 남발하는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금연포스터를 한 장이라도 더 붙이려는 노력 이전에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태그:#금연, #담배,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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