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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영희 전 노동부 장관을 본 건 2006년 3월 <법학입문>이란 과목을 수강할 때였다. 이름만 보고 예쁘고 상냥한 여자 교수일 거라 생각했던 나는 첫 날부터 실망을 했다. 하지만 그의 수업을 듣는 동안 나는 이 교수의 팬이 되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늘 학생들 앞에서 겸손했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해 엄하고 무서운 교수만을 상상했던 나는 이 교수의 수업을 들으면서 나이가 들면 저렇게 늙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런 이 교수가 작년 2월 노동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 나는 앞으로 이 교수의 수업을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못내 아쉬웠다. 간혹 뉴스를 통해 그의 소식을 접하곤 했지만 강의를 하던 이 교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이 교수가 다시 학생들을 찾은 건 지난 9월 퇴임 후, 처음이었다. 11월 11일 오후 3시쯤 인하대학교 로스쿨관 국제회의장에는 교수들과 학생들이 이영희 명예교수의 특강을 듣기 위해 삼삼오오 모였다. 나도 이 교수의 특강을 취재하고자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겨들고 제일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세 시 반쯤 오랜만에 강단에 선 이 교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의 2년만이었지만 대학 강단에 선 그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이 교수는 운동을 하다 제적처분을 받았던 대학시절부터 노동부장관이 되기까지 국정참여의 경험을 강의 초반에 5분 정도 짧게 소개했다. 특히 대학교수로서 강단에 섰던 얘기를 할 때마다 이 교수는 여운에 잠긴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1980년부터 명예교수가 된 지금까지 참 오랜 세월 학생들과 함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이 문구가 마음에 든다며 학생들에게 "폭넓은 경험을 쌓아라"고 조언했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청년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대학생들의 대기업 편애 현상이 문제다"라며 최근 청년취업난과 관련해 "국내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로 뻗어나갈 것"을 당부했다. 또 이와 관련해 "요새 학생들은 쉬운 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보다는 나의 능력과 적성을 고려해 직장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항일·반독재를 위해 평생을 바친 고 함석헌 선생이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을 비판하며 쓴 글이다. 이 교수는 이 문구를 인용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데도 대중의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엎드려 있는 학생이 되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생각이 없는 사람을 첫째, 창의가 없는 사람, 둘째,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 셋째, 생각이 미치지 못 하는 사람으로 분류했다. 그러면서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부단한 자기반성과 사유훈련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의 미래와 청년세대의 과제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개인적 성공이 최대의 애국"이라며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을 부탁했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선 국민 개개인이 세계 속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은 데서 나온 말이다. 이 교수는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언급한 정보화 시대가 벌써 도래했다"며 "시대적 과제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특강을 마치고 여러 교수들과 학장의 배웅을 받으며 나가려는 이 교수에게 달려들었다. "저 교수님, 오늘 하신 강의를 기사로 써도 될까요?" 그는 처음에 당황하며 "취재하러 온 기자입니까?"라고 물었다. "기자지망생입니다." 이 교수는 웃으며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기사를 쓰는데 도움이 될 거라며 준비해 온 원고 등을 친절하게 빌려주었다. 내 뒤로 교수들과 학장이 이 교수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 서있었지만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 필요한 게 있는지 더 물어봐주었다.


태그:#이영희, #노동부, #장관, #인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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