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이 마련한 공로패를 받고 기뻐하는 이봉주 선수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이 마련한 공로패를 받고 기뻐하는 이봉주 선수 ⓒ 운형권

'1990년 전국체전, 2009년 전국체전'

앞 연도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때고 뒤는 그가 마지막으로 출전한 대회다. 첫 출전은 2위로 시작했지만 마지막 경기는 독보적인 1위였다.

'40, 41'

앞 숫자는 이 선수의 지금 나이고, 뒤 숫자는 그가 남긴 풀코스 완주 기록이다. 이날 은퇴축하 케이크에도 41개의 촛불이 켜졌다. 그 동안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 우승 등으로 포기할 줄 모르는 선수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충남도청 대회의실, 대전의 한 음식점'

앞 장소는 그가 21일 낮에 공식 은퇴식을 한 장소고, 뒤는 이날 저녁 비공식으로 조촐하지만 가슴 찡한 은퇴식을 치른 곳이다. 이날 저녁 그는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의 모임인 '구칠회'에서 마련한 은퇴식에 참여했다. 구칠회는 모임을 결성한 1997년에서 유래했단다. 1992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준우승한 김재룡 선수를 비롯해 쟁쟁한 전직 얼굴들이 시야에 꽉 찼다. 이 선수는 이 모임의 막내지만 선수로서는 20년간을 달린 제일 큰 형이다.

공식 은퇴식에서 본 그의 표정은 무거웠지만 구칠회 모임에서의 그는 맥주잔을 부딪치며 연신 웃음을 날렸다. 이 선수는 '구칠회'를 가족들이 모인 모임 같다고 소개했다. 

"가족 같죠. 함께 모인 분들이 선수생활 힘든 부분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이죠. 언제나 이 모임에 오면 편안해져요. 마음이 통하는 모임이에요."

전국에서 모여든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들

실제 이날 모임에는 구성원 대다수가 참여했다. 서울은 물론 제주도, 울산, 부산, 안성 등 전국 각지에서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왔다. 한국전력 김재룡 코치(1992년 보스턴 마라톤 준우승)와  800미터와 1500미터 전 국가대표였던 조진성 선수가 이봉주 선수의 인기비결을 앞다퉈 공개했다.    

"오늘은 정기모임일이 아니에요. 더구나 전국체전 시즌에는 다들 바쁜 때라 모임을 갖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대부분 학교체육교사나 실업팀 감독을 맡고 있거든요. 그런데도 이렇게 모인 것은 그만큼 봉주가 인간적으로도 귀감이 되기 때문이에요."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이 이봉주 선수의 은퇴를 축하해 주고 있다.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이 이봉주 선수의 은퇴를 축하해 주고 있다. ⓒ 윤형권


'구칠회' 김기훈 회장(창던지기, 전 국가대표)과 중학교 시절 함께 육상선수로 학창시절을 보내 구칠회와 인연을 맺게 된 김경훈 구의원(대전 중구)은 "이봉주 선수가 마지막 은퇴경기를 위해 6개월 동안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며 "패배와 마지막을 모르며 달렸던 늘 처음 같은 선수이기 때문에 은퇴식마저 아름답다"고 평했다.         

이들은 이 선수에게 축하 케이크 및 꽃다발과 함께 공로패를 안겼다. 이들은 공로패에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사른 의지의 한국인이며 국민 마라토너"라고 새겼다.

이 선수는 "함께 땀을 흘렸던 육상종목 전 국가대표 선수들이 주는 공로패야말로 의미 있고 값진 것"이라며 흡족해 했다.

그는 그동안 가장 힘든 경기로 '시드니 올림픽'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애틀랜타 올림픽(은메달)과 보스턴 마라톤(우승)"을 꼽았다. 이어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마다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며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몸속에서 용솟음쳤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계획에 대해 "이제 후배들을 발굴해 양성하는 게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 공부를 병행할 예정"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 나가서 후진 양성에 필요한 훈련방식 등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힘든 경기는 '시드니 올림픽'... 후배 양성하는 게 내가 할 일"

다음은 이날 저녁 이봉주 선수와 한 음주(?) 인터뷰 요지다.

 이봉주 선수의 은퇴식

이봉주 선수의 은퇴식 ⓒ 윤형권

- 오늘 마지막 경기는 만족하나?
"기록보다는 마지막 경기고 1등을 하면서 유종의 미를 걷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만족한다."

- 오늘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은퇴했는데 소감은?
"부담도 없어지고 홀가분하다. 지금 마시는 술도 오랜만이다. 그동안 시합을 준비하느라 심적 부담과 스트레스가 많았다."

- 선수생활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경기는?
"다 힘들었다. 준비과정, 연습부터가 힘들다. 특히 컨디션이 안 좋은데 경기에 임했을 때는 힘들다. 시드니 올림픽 때는 컨디션은 좋았는데 불행하게 넘어지는 바람에…. 그 때는 생각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다보니 많이 위축됐고 정말 힘들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
"애틀랜타 올림픽(1996년)에서 은메달 땄을 때와 보스턴 마라톤(2001년)에서 우승했을 때다."

- 은퇴하고 싶었던 때는 없었나?
"왜 없었겠나. 성적이 안 나올 때마다 은퇴를 생각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더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몸속에서 용솟음쳤다. 그 때마다 다시 운동화 끈 졸라매고 달리게 됐다."

-앞으로 계획은?
"선수생활을 접고 은퇴했으니 후배들을 위해 힘 써야하지 않겠나. 이제 후배들을 발굴해 양성하는 게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 공부를 병행할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 나가서 후진 양성에 필요한 훈련방식 등을 배우고 싶다."    

- '구칠회'에는 언제부터 참여했나?
"97년도에 만들어졌는데 나는 중간에 들어왔다. 구성원 전체가 가족 같다. 함께 모인 분들이 선수생활의 힘든 점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 모임에 오면 편안해진다. 마음이 통하는 모임이다. 다들 인간적이다."

'구칠회' 20명 회원이 딴 메달은? 25개!
전 육상국가대표모임 '구칠회'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 모임인 '구칠회' 회원들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 모임인 '구칠회' 회원들 ⓒ 심규상


'구칠회'는 전 육상 국가대표모임이다.

97년 현 김기훈 회장(창던지기 전 국가대표) 등의 제안으로 처음 12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20명으로 불어났다. 이들 회원들이 선수시절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경기에서 딴 메달은 25개에 이른다. 그만큼 쟁쟁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태반이다.  

회원들은 모두 태릉선수촌을 떠났지만 여전히 태릉선수촌으로 가기를 꿈꾼다. 회원 대다수가 실업팀 감독이나 체육교사로 일하며 미래의 국가대표를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가장 기쁠 때는 '지도하고 있는 후배들이 좋은 성적을 냈을 때'란다.

이들이 쌈짓돈을 모으고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육상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김 회장은 "앞서 걸어온 우리들이 후배들의 어려움을 가장 잘 알지 않겠느냐"며 "꿈나무들이 자라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활동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봉주 구칠회 전 국가대표 육상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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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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