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간의 축구 경기 도중 공의 소유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왔다갔다한다. 그 과정에서 누가 더 기술적으로 앞서 있으며 동료들과의 호흡을 앞세워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느냐가 승리의 요건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AS 모나코의 박교수'라 불리는 박주영의 결승골로 이기기는 했지만 경기 전체를 대응하는 우리 선수들의 점수는 기술적인 면이나 조직적인 면 모두 100점 만점에 65점 정도만 줘야 할 듯하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은 12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파라과이 국가대표와의 평가전에서 84분에 터진 박주영의 결승골을 잘 지켜내 1-0으로 이기며 역대 전적에서 첫 승(1승 3무 1패, 승부차기 기록은 무승부)을 거뒀다.

허정무 감독, 정말 이기고 싶었나 보다

권투대표팀 감독이 된 허정무(?) 12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의 파라과이 평가전에서 허정무 감독이 마치 권투감독처럼 주먹질을 하며 선수들에게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 권투대표팀 감독이 된 허정무(?) 12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의 파라과이 평가전에서 허정무 감독이 마치 권투감독처럼 주먹질을 하며 선수들에게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 권우성


62분, 성남의 기대주 조동건이 이근호 대신 들어갔다. 아무리 스물세 살이라고 하지만 A 매치 첫 경험은 몹시 떨리는 순간이었다. 기성용의 찔러주기가 자신의 앞을 지나갔지만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에서 밀리며 좋은 기회를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가 26분만에 다시 벤치로 물러날 줄은 몰랐다.

허정무 감독은 4분전에 터진 귀중한 골을 지켜내면서 꼭 이기고 싶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88분에 조동건을 다시 불러들이며 오장은을 들여보냈다. 조동건을 응원하는 팬들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스쳐갔을지도 모른다. 여섯 명이나 교체가 가능한 평가전이라고 하지만 후반전 중반에 들여보낸 공격수를 특별한 잘못이나 다친 곳 없이 다시 빼는 것은 조금 경솔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

그 덕분인지 약 5분간 우리 대표팀은 가운데 미드필더 자원이 한꺼번에 네 명(조원희, 김정우, 기성용, 오장은)이 뛰는 기이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렇게 뒤늦게 가운데 미드필더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유는 뭘까?

가운데 미드필더의 능력, 현대 축구의 영원한 숙제

실질적인 1군 선수들로 꾸려 파라과이 대표팀을 이끌고 온 헤라르도 마르티노 감독은 득점 없이 시작한 후반전에 승부를 걸었다. 간판 골잡이 넬손 아에도 발데스가 김정우와 높은 공을 다투다가 이마를 다치는 바람에 빠진 아쉬움이 있었지만 '마르티네스, 산타나, 에스티가리비야' 등 능력 있는 가운데 미드필더들을 새롭게 내세우며 우리 선수들에게 그야말로 한 수 가르치는 축구를 구사했다.

이 덕분에 후반전 중반 20분간은 거의 파라과이 미드필더들이 공을 점유했고 우리 선수들은 공의 방향을 따라다니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나마 '조용형-강민수-이정수' 셋이 번갈아 가운데 수비를 맡아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에 골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에서 현재 3위를 달리고 있는 파라과이는 이 가운데 수비수들 때문에 위험 지역 안에서 90분 내내 이렇다 할 슛 기회를 잡지도 못했다. 75분, 바꿔 들어온 공격형 미드필더 마르티네스가 찔러준 공을 키다리 골잡이 카르도소가 오른발로 찬 것이 가장 인상적인 공격 장면이었는데 마무리 동작이 컸던 탓에 바로 앞에 버티고 있는 문지기 이운재를 직접 위협하지는 못했다.

비록 파라과이는 이처럼 마무리 능력이 모자랐지만 후반전 80분이 흐르는 시간까지 침착한 미드필드 연결 동작을 통해 경기 전체를 관리할 줄 아는 팀이었다. 반면에 우리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좋은 공격 기회를 얻었지만 무리한 움직임으로 그 효율성을 극대화시키지 못했다.

공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넘어와도 다음 동작을 기술적으로 완성시키거나 주변의 동료를 100% 활용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최성국(상무) 같은 드리블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기성용과 김정우는 교체 없이 끝까지 뛰었지만 중원의 공 소유권을 상대에게 넘겨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제를 드러냈다. 사실 두 선수는 패스를 잘 하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이 경기에서는 무리한 드리블로 좋은 역습 기회를 더 얻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공 소유권을 갑자기 넘겨주면서 가운데 수비를 맡은 이정수와 조용형이 더 고생해야 했다.

그나마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김치우 대신 들어온 조원희의 다양한 활용 가치 덕분에 가운데 미드필드에서 숨통이 조금 트였다. 후반전 초반에는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뛴 조원희는 가운데 쪽 구멍이 점점 더 커지자 기성용과 자리를 바꿔 가운데로 들어와 쓰러져 가는 팀을 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 순간은 역시 '기술'

 12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의 파라과이 평가전에서 후반 37분 박주영 선수가 골을 성공시킨 뒤 손가락을 세우는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12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의 파라과이 평가전에서 후반 37분 박주영 선수가 골을 성공시킨 뒤 손가락을 세우는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축구 선수들이 실제 경기를 치르기까지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매우 많다.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몸을 가볍게 준비하는 것, 90분을 쉼 없이 뛸 수 있게 하는 강한 체력, 부분 전술 익히기, 팀 전체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머리로 이해하기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술적인 능력이라는 점이다. 69분에 들어온 이승현(부산)은 조동건과 마찬가지로 A 매치 첫 경험이었다. 그러다보니 마찬가지로 넓은 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더 좋은 공간으로 빠져나가는 동료를 못 보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다.

그런 그를 눈 뜨게 하는 패스가 두 차례 들어왔다. 모두 가운데 미드필더 기성용이 찔러준 것이었는데 첫 번째 기회는 골문 앞으로 찔러준 것이 상대 수비수에게 걸렸고, 두 번째 기회는 시원스럽게 왼발 슛으로 연결해 박주영의 결승골이 터지게 만들었다.

지난 9일 새벽 루이 2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프랑스 프로축구(리그 1) 2009-2010 개막 경기(모나코 1-0 툴루즈)에서 귀중한 결승골(44분) 도움을 기록한 박주영은 84분, 이승현의 슛이 상대 문지기 비야르 몸에 맞고 나오자 침착하게 오른발 안쪽 슛을 터뜨려 그물을 흔들었다.

축구 경기 결정적인 장면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력이었다. 소속팀에서 네네의 결승골을 돕는 순간, 왼발 돌려차기 패스 기술은 보는 이들의 감탄사를 이끌어냈듯이 이 경기 결승골 순간에도 박주영의 기술은 빛났다. 모나코 팬들이 그에게 '선생'이나 '교수'라는 별명을 붙인 이유를 잘 알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보통 상황이었다면 거기서 오른발을 그렇게 내밀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당연히 상대 수비수는 위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발을 내뻗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코스 카세레스가 달려들고 있는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박주영은 발 안쪽 넓은 면을 공에 정확히 뻗었다. 상대 문지기 비야르의 위치까지 고려한 기술적으로 완벽한 결승골이었던 것이다.

축구장에서 선수들이 기술과 조직력을 어떻게 버무려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 61분에 옆줄 바로 앞에서 벌어졌다. 후반전 초반 24분간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뛴 염기훈은 상대 미드필더와 공의 소유권을 각각 두 차례씩 주고받았다.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축구 경기 중 너무나 흔히 벌어지는 장면이지만 시사하는 점이 많았다.

그 상황에서 두 선수 모두 자신에게 공의 소유권이 넘어왔을 때 먼저 생각한 것은 드리블 뿐이었다.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정도의 드리블 기술이 있지 않고서는 옆줄 바로 앞 그 좁은 공간에서 상대 선수를 따돌리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두 선수는 드리블만 고집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동료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 기술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조직력을 극대화시켜야 하는지가 꼭 정해진 것은 없다.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결국 선수 자신의 '머리(brain)'다.

덧붙이는 글 ※ 남자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 12일 상암월드컵경기장

★ 한국 1-0 파라과이 [득점 : 박주영(84분)]

◎ 한국 선수들
FW : 이동국(46분↔박주영), 이근호(62분↔조동건/88분↔오장은)
MF : 김치우(46분↔조원희), 김정우, 기성용, 염기훈(69분↔이승현)
DF : 이영표, 이정수, 조용형, 오범석(46분↔강민수)
GK : 이운재

◎ 파라과이 선수들
FW : 살바도르 카바냐스(61분↔오스카 카르도소), 넬손 아에도 발데스(52분↔오스발도 마르티네스)
MF : 에드가 베니테스(72분↔마르셀로 에스티가리비야), 크리스티안 리베로스(66분↔호나탄 산타나), 에드가르 바레토(53분↔에두아르도 레데스마), 엔리께 베라
DF : 데니스 카니사, 안토린 알카라스, 훌리오 카세레스(82분↔빅토르 카세레스), 마르코스 카세레스
GK : 후스토 비야르
박주영 기성용 이승현 조동건 축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