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FC 1995 엠블럼

부천 FC 1995 엠블럼 ⓒ 부천 FC 1995

먼 길을 날아와 비가 내리는 낯선 운동장에서 뛴 잉글랜드 7부리그 클럽 선수들은 비록 한 골도 넣지 못하고 물러서야 했지만 원자력발전소 엔지니어, 지붕수리공, 회계사, 세일즈맨 등도 이렇게 축구를 즐길 수 있고 또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곽창규 감독이 이끌고 있는 K3 리그 부천 FC 1995는 18일 저녁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월드 풋볼 드림 매치 2009 친선 경기에서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잉글랜드 7부리그)를 3-0으로 이겼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희망의 match

지난 6월 말 부천 FC 1995 팀 누리집(www.bfc1995.com)에 놀라운 메시지가 떴다. 말로만 듣던 잉글랜드 클럽이 온다는 소식이었다. '유맨'이라는 약칭이 어색하게 들려서 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디펜딩 챔피언)를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가 했다.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엠블럼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엠블럼 ⓒ FC United of Manchester

정말 그들은 우리가 아는 맨유와 관련이 깊은 팀이었다. 1부리그가 아니라 7부리그 팀이라는 사실이 조금 달랐다.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지금 박지성이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구단이 미국의 말콤 글래이저 상업 자본에 넘어간 것에 분노하고 실망한 팬들이 모여 힘겨웠지만 끝내 창단의 꿈을 이룬 팀이다.

2005년 8월 창단 때는 10부리그로 출발한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7부리그까지 올라와 팬들의 자긍심을 한껏 높이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방한 시기도 절묘하다. 6일 뒤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아시아 투어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연고 이전'이라는 행태는 항상 열정이 끓어오르는 축구장에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는 구단의 주인이 맨체스터 시민들로부터 미국의 상업 자본으로 넘어간 것이기 때문에 연고 이전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지만 이 경기의 꿈을 이룬 부천 FC 1995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천 FC 1995 구단에서는 이 경기의 공식 명칭 말고도 '슬프도록 아름다운 희망의 match'라는 수식어를 써서 그들의 아픈 역사를 알고 응원해주는 많은 이들에게 그 기쁨을 알렸다. 부천의 곽창규 감독도 경기 직후 KBS N SPORTS와의 인터뷰 끝에 "이 경기가 이루어지기까지 너무나 큰 도움을 주신 서포터즈 '헤르메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진정한 '꿈의 만남' 이루어질 수 있을까?

니폼니시 감독, 골잡이 곽경근, 특급 조커 이원식, 미드필더 윤정환, 윤정춘 등의 얼굴과 함께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축구가 떠오른다. 부천 SK 프로축구단이다. 하지만 조용형이라는 감각 있는 수비수까지 발굴한 그 구단은 지난 2006년에 돌연 연고 이전을 발표하고 멀리 제주도(제주 유나이티드)로 떠나버렸다. 그래서 부천의 팬들은 2006년을 시작하는 봄이 너무나 추웠다.

하지만 부천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분노의 눈물을 잠시 거두고 그 해 3월부터 한 발 한 발 멀고 험하지만 또렷하게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진정한 시민 구단을 이루기 위해 그들의 붉은 열정이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부천 FC 1995라는 팀을 창단시켰고 2008년 K3 리그에 참여했다. 이것만으로도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부천 FC 1995 구단은 그저 리그에 참가하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았다. 늘 팬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부천 시민들 곁으로 찾아가는 정책을 실천하고 있다. 운영 규모가 큰 회사의 지원도 끌어내기도 하지만 동네마다 지역후원업체도 적극 유치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에 이루어진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와의 맞대결은 그 주변 정황으로 봐도 정말로 절묘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6일 뒤에 'FC 서울'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경기가 벌어진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FC 서울은 제주 유나이티드와 마찬가지로 안양 시민들의 열정을 묵살하고 서울로의 연고 이전을 선언하며 도망간 팀이기 때문이다.

18일 저녁 부천종합운동장에는 장대비가 오락가락하며 날씨가 궂었지만 2만 5천명이나 되는 팬들이 모여들었다. 비슷한 시간대에 진행된 K-리그 16라운드 경기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7월 18일 K-리그 16라운드 최다 관중은 16,852명(마산종합운동장, 경남-포항)이었다. 1,000명 이상의 관중이 모이기 힘든 서귀포월드컵경기장을 안방으로 쓰는 제주 유나이티드 구단 관계자 입장에서 부천종합운동장의 2만 5천명 관중 열기는 어떻게 보일까? 이러고도 연고 이전의 정당성을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아울러, 부천 FC 1995는 지난 2월에 AFC 윔블던(잉글랜드 5부리그)과의 자매 결연까지 체결했다. 이것은 정말 세계 축구의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또 하나의 뜻깊은 인연인 셈이다. 연고 이전의 아픔이라는 동병상련이 그들의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AFC 윔블던은 지난 2003년 윔블던 FC의 연고 이전(윔블던 → 밀턴 킨즈)에 반대하는 서포터즈에 의해 탄생된 팀이다. 그러니 또 하나의 드림 매치가 이루어질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축구장이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꿈의 만남'이 늘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월드 풋볼 드림 매치 2009 경기 결과 / 2009. 7. 18 부천종합운동장(관중 : 25,000명)

★ 부천 FC 3-0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득점 : 박문기(30분,도움-김두교), 김민우(88분), 장재완(9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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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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