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삼성의 프로야구 경기에 앞서 전광판에는 32년 전 복싱경기 장면이 상영됐다. 이날 경기 시구자로 등장할 홍수환의 4전5기 경기 광경이었다. 파나마에서 벌어진 WBA 주니어 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서 홈링의 카라스키야에게 2회에만 4번 다운당하고도 3라운드에 기적의 역전 KO승을 거둔 경기를 보며 관중들은 물론 선수들도 감탄하며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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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를 마치고 VIP석에서 부인 옥희와 함께 자리한 홍수환은 "중앙중학 시절 유격수 겸 1루수로 활약했다, 같은 팀 2년 선배였던 이원국 투수가 멕시칸리그를 거쳐 LG의 전신인 MBC 청룡의 최초 외국선수였다"며 "끝까지 경기를 관람해 나을 불러준 LG를 응원하겠다"고 했다. 야구장에 처음 온다는 부인에게 야구 규칙도 자상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홈팀 LG는 경기 시작부터 삼성의 강봉규와 양준혁에게 볼넷을 연발하더니, 최형우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쉽게 점수를 헌납했고, 2회에는 박진만의 좌월 홈런, 3회에는 양준혁의 적시타 등을 맞아 0-4로 뒤졌다. 초반부터 무너지는 듯 했다. 더 이상 실점은 하지 않았지만 5회까지 단 1안타의 빈공으로 좀처럼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그럼에도 홍수환은 LG의 승리를 장담했다. 초반부터 4점을 내주긴 했지만 더 이상 실점을 안 하고 있으니, 반드시 역전할 기회가 올 거라며 두고 보라고 큰 소리치는 것도 모자라, 4전5기의 주인공이 시구를 했으니 4-5로 역전할 거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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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이영환 LG 단장에게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4점에서 멈추고 있다 파이팅 5대4로 이긴다

이영환 단장이 "고마워요 응원 더 해주셔야지요" 하며 응수할 때만 해도 설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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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8회 말 LG의 공격, 페타지니의 1타점 적시타로 2-4를 만들더니, 최동수의 볼넷으로 1사 1, 3루에서 등장한 대타 이진영은 정현욱의 초구를 벼락같이 받아쳐서는 거짓말처럼 4-5로 역전을 해버렸다. 대타 스리런 역전 홈런이었다. 넋이 나간 삼성은 9회 초에 등장한 마무리 이재영에게 3자 범퇴했고 그것으로 경기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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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리 족집게처럼 예언을 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홍수환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카라스키야에게 어떻게 이겼는지 아니? 4번 다운당했다고 자포자기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판사판 달려들지도 않았어. 1회전만 더 뛰자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기본기를 떠올리면서 다시 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는 거야. 어려울수록 희망을 잃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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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알리' 로 불렸던 홍수환은 1974년 한국 최초로 적지에서 세계 타이틀을 획득함으로써 복싱을 최고 인기스포츠로 탄생시킨 국민영웅이었다.

당시 강자가 즐비한 밴텀급의 숨통을 트기 위해 신설된 WBA Jr. 페더급 초대챔피언 결정전 8강 토너먼트에서 그는 명승부를 연출하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은 파나마 적지에서 열렸다. '지옥에서 온 악마' 카라스키야에게 2회전에만 4번 다운되고도, 3회전에 기적의 역전승으로 4전5기 신화를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세계타이틀 2체급 석권의 순간이었다. 당시 동양방송은 홍수환의 경기를 연속으로 27번 재방송을 하기도 했다.

홍수환 4전5기 LG트윈스 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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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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