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의 칭찬처럼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결정짓고 아시아 축구의 뜻 깊은 역사를 계속 써내려가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10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를 만난다.

우리로서는 그냥 친선 경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 결과에 대해 싱거워진 최종 예선 일곱 번째 경기이지만, 상대인 사우디로서는 남아공으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중요한 맞대결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특히 사우디전은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색다른 흥미를 느끼게 해 준다. 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과에 대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이란의 시선] 한국 이겨라?

 북한 축구대표팀의 정대세가 1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경기에서 조원희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하고 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북한은 한국이 사우디를 잡아줘야 유리하다. 북한의 정대세가 지난 4월 1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경기에서 조원희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하고 있다. ⓒ 유성호


현재 아슬아슬하게 2위를 달리면서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 동반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노리고 있는 북한(승점 11점)의 관심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마지막 경기 일정상 리야드에서 사우디와 맞붙게 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우디가 승점 10점인 현재 상태 그대로 자신들과 맞붙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부담스러운 방문 경기 일정이기는 하지만, 그 경우 승점(1점차)이나 골득실(2골 이상)면에서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경기 결과를 애타게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 더 있다. 어찌 보면 북한 선수들보다 더 긴장하며 그 결과를 기다릴 팀이 이란이다. 그들은 현재 본선 진출의 마지막 희망이라 할 수 있는 3위도 아닌 4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더욱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적어도 3위에 턱걸이해야 플레이오프라는 완행열차를 두 차례 갈아타고서라도 남아공으로 갈 수가 있다.

그들 역시 한국 선수들이 사우디를 이겨주기 바라고 있다. 북한 선수들과 똑같은 상황이다. 그래야 17일 저녁에 한국과 벌이는 마지막 경기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걸 수가 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이 이들 두 팀 선수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한국의 시선] 그들의 빈자리 누가 메울까

 한국 축구대표팀의 박주영이 28일 저녁 경기도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친선 경기에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중동 킬러'로 떠오른 박주영은 이번 사우디전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을까? ⓒ 유성호


반면에 우리 축구팬은 바라보는 지점이 크게 다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약한 상대와 치르는 A 매치라 할지라도 이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치렀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홀가분하다. 쉴 틈도 없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대표 선수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이것이 다 지난해 11월 20일 새벽 사우디 리야드에 있는 킹 파드 스타디움에서 사우디와 벌인 최종 예선에서 2-0으로 승리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슛이나 다름없었던 박지성의 짜릿한 도움으로 이근호의 선취 결승골이 터졌고 박주영의 그림 같은 쐐기골은 이번 예선 일정 중에서 가장 시원스럽고도 의미 있는 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서 얻어 온 승점 3점이 정말로 큰 보탬이 된 셈이다.

우선, 이번 경기에 징계로 나오지 못하는 세 선수(DF 이영표, 오범석, MF 김정우)의 빈자리가 눈에 띈다. 스포츠 헤르니아(탈장)로 갑작스럽게 팀을 이탈한 김치우의 상황까지 고려하면 왼쪽 측면이 가장 큰 걱정이다.

지난 일요일(7일) 새벽 두바이에서 이영표 대신 들어와 30여 분 동안 왼쪽 수비수로 뛰었던 김동진은 10명이 뛰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실점이나 다름없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에 불안한 형편이다.

더구나 돌아온 골잡이 알 카타니와 저돌적인 나이프 하자지, 노련한 미드필더 아우텝 등을 내세워 승점 3점을 얻기 위해 덤비는 사우디 선수들을 고려할 때, 그렇게 쉽게 뚫리는 측면 수비의 뒷공간은 치명적인 약점일 수밖에 없다. 월드컵 본선을 고려하여 더 멀리 보면서 이영표는 물론 오범석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 측면에서도 이번 경기 측면 수비수들(김동진·김창수)의 몸놀림은 주시할 필요가 있다.

김정우의 빈자리는 부상을 딛고 당당하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거가 된 조원희(위건 애슬레틱)가 있어서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이강진(부산)까지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가운데 미드필더로 나란히 뛰는 기성용도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새내기' 유병수-김형일의 활약 볼 수 있을까?

모험보다는 안정된 항해를 좋아하는 허정무 감독의 특성상 이번 경기에서도 'A매치 기록 1'에 해당하는 새내기들의 활약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승패에 대한 부담을 많이 덜어낸 만큼 교체 카드를 떠올려보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그중에서도 지난 3일 두바이에서 오만과 벌인 평가전에서 뛰어난 위치 선정으로 프리미어리거 출신 상대 문지기 알 합시(볼턴)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새내기 골잡이 유병수(인천 유나이티드 FC)가 가장 눈에 띈다.

이근호나 박주영은 이미 나라 밖 축구 관계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터라 하우사위가 이끌고 있는 사우디 수비수들도 충분히 대비하고 들어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병수는 측면이나 가운데 미드필드까지 폭넓게 움직이며 상대 수비수들이 따라다니기에 까다로울 정도로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가 뛰게 되면 의외의 구석이 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눈길이 가는 선수는 가운데 수비수 김형일(포항 스틸러스)이다. 새내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늦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지만 1년 뒤 본선 무대를 겨냥할 때 충분히 다듬어 둘만한 재목이기 때문이다. 그의 성실한 수비 자세는 현 소속팀보다는 전 소속팀인 대전 시티즌 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들어오면 조용형과 나란히 뛰던 가운데 수비수 이정수의 활용 가치를 색다르게 시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조용형 못지않게 패스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이정수는 측면 수비수로도 뛸 수 있기 때문에 오범석 대신 나올 것으로 보이는 김창수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대안이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뛰는 선수들과 그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초월한 선수들의 홀가분한 실력 발휘가 어떤 과정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그것이 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최고 실력자 대결이기에 더욱 흥미로운 점이다. 정말 이런 축구 즐길 기회, 앞으로 몇 년간은 없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B그룹 현재 순위

1위 한국 6경기 4승 2무 14점 11득점 3실점 +8 [본선 진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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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북한 7경기 3승 2무 2패 11점 7득점 5실점 +2
3위 사우디 아라비아 6경기 3승 1무 2패 10점 8득점 8실점 0
4위 이란 6경기 1승 4무 1패 7점 6득점 6실점 0
5위 아랍에미리트 7경기 1무 6패 1점 6득점 16실점 -10 [탈락 확정]

◎ 그룹 2위까지 본선 직행.
◎ 그룹 3위는 A그룹 3위와 플레이오프 후 오세아니아 1위 뉴질랜드와 대륙간 플레이오프 거쳐 본선 진출.
유병수 축구 김동진 김형일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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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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