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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

마더 한국판 포스터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라는 문구를 읽으면
비장한 모성애가 느껴진다

▲ 마더 한국판 포스터 "아무도 믿지 마, 엄마가 구해줄게"라는 문구를 읽으면 비장한 모성애가 느껴진다 ⓒ CJ Entertainment

비장한 표정의 엄마와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엄마를 꼭 붙잡고 엄마의 뒤에 있는 아들의 모습. 그리고 그 밑에 쓰여져 있는 문구까지.

마더의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면서 나는 극장에 가서 눈물 깨나 쏟고 오겠구나 싶었다. 스릴러의 형식을 빌었어도 결국에는 범접할 수 없는 모성애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끼고 감동받아서 눈물을 흘리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일요일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나는 내가 영화에 대해서 정 반대의 기대를 했음을 알게 되었다. 마더는 모성애에 관한 영화가 아니었다. 단지 엄마라는 소재를 통해서 모성애에 대해서 접근하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감독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을 전달하려 했을 뿐이다.

영화 마더에는 바보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같은 건 없었다.  오직 자기애와 인간의 집착만이 있었다.

엄마의 애정은 아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영화는 초반부에서 상당히 빠르게 중심사건이 터지고, 아들 도준(원빈)이 범인으로 몰려서 경찰서에 잡혀간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위기가 전부 다 나타난다. 이 후에 김혜자가 원빈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게 되는데 나는 이 과정에서 김혜자의 감정에 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가슴에 와 닿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첫째 이유는 엄마(김혜자)와 도준(원빈)의 연기 때문이었다.

범죄현장에서 재현 중인 도준 엄마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간절하다

▲ 범죄현장에서 재현 중인 도준 엄마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간절하다 ⓒ CJ Entertainment


엄마는 자신의 손가락에서 피가 나는 것도 모르고 도준의 작은 부상만을 걱정하며, 소변을 누고 있는 도준의 옆에서 한약을 먹여줄 정도로 바보 아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세심한 걱정을 한다. 엄마의 모든 삶은 아들을 위주로 돌아가고, 엄마는 자신의 안위 따위야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보여지는 건 단지 그 모습 뿐이다. 영화에서는 보통의 엄마가 그러하듯이 엄마가 아들을 따뜻하고 애절하게 바라본다거나 머리를 쓰다듬는다거나 하는 등의 가슴 뭉클한 장면 등이 클로즈업되거나 조명되지 않는다. 그저 엄마의 다소 과보호적인 행동들만 나열해서 제시할 뿐이다.

또한 아들인 도준 역시 엄마의 이런 마음을 모른다. 이는 도준이 바보라서 몰라주는 것이 아니다. 그는 조금 어리숙하기는 하지만 남녀 간의 성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다 이해하고 있으며, 진태를 따라다니면서 여러가지 세상 일에 대해서 보고 배워서 대부분의 일을 이해한다.

그런데 도준은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에게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는 말도 잘 하지 않고, 그저 멍한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엄마와 잤냐는 무례한 농담을 던져도 지나치게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한다. 이는 그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엄마에게 무관심하며, 엄마가 자신에게 쏟는 행동을 사랑이라고 느끼지 않고 있어서이다.

도준에게 한약을 먹여주는 엄마 엄마는 소변을 누는 도준에게 와서 한약을 먹여주기까지 한다

▲ 도준에게 한약을 먹여주는 엄마 엄마는 소변을 누는 도준에게 와서 한약을 먹여주기까지 한다 ⓒ CJ Entertainment


이런 특성은 연기에서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스토리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엄마는 도준이 5살 때 농약을 먹고 도준과 동반자살을 하려고 했었다. 이는 도준을 진심으로 생각한 것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잣대를 도준에게도 적용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 이후에 도준에게 쏟는 행동은 많은 부분이 죄책감에서 나온 행동이다. 엄마가 자신이 도준을 정말 사랑하는지를 생각할 틈도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만을 다하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고 엄마의 집착이 생겨난다.

도준 역시 지난 과거를 기억한다. 그는 5살 때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것을 기억해낸다. 엄마는 도준에게 '함께' 죽으려고 했던 것이라고 소리지르지만 도준은 엄마가 나중에 약을 따라 마시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저 자신에게 농약을 먹이던 엄마의 모습만 기억할 뿐이다. 엄마의 방식대로 해석된 모성애는 도준의 무의식 중에서 계속 자리잡고 있었고, 도준 역시 엄마의 모성애를 느끼지 못해서 항상 멍한 눈빛으로 엄마를 볼 뿐이다. 그가 엄마에게 옛 기억을 말할 때는 어떠한 분노도 실망도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부터 제대로 된 애정이 오지 않았기에 그가 실망도 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엄마  도준을 풀려나게 하기 위한 엄마의 마음은 도준보다 훨씬 간절하다

▲ 엄마 도준을 풀려나게 하기 위한 엄마의 마음은 도준보다 훨씬 간절하다 ⓒ CJ Entertainment


저마다의 집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영화는 전반적으로 어두침침하고 무채색이 사용된 화면이라서 사실 딱딱하고 서늘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 단절되고 부조화를 이루는 듯한 느낌, 차가운 느낌이 심하게 드는데 이는 봉준호의 영화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그 이유가 영화에서 감독이 크게 말하려고 하는 주제가 '사람들 간의 소통의 부재, 누구에게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간의 소통의 부재와 단절이 가장 크게 느껴진 장면은 죽은 여학생의 장례식장에서의 장면이었다. 장례식장에 찾아간 엄마에게 동네 사람 중 두어 명이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며 무슨 낯짝으로 찾아오냐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여기서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 참 다양하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이 장면을 보면서 기이하다고 느낀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주머니 두어 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식으로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쥐어채려 하는데, 조용히 담배를 피고 있던 어떤 아주머니는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무표정으로 엄마의 따귀를 때린다. 그리고 가장 분노해야 할 여학생의 할머니는 아무리 그가 미쳤다고는 해도 저 사람들의 일이야 상관없다는 듯이 텅-빈 하늘에 막걸리병을 무심하게 던진다.

사실 여학생의 죽음은 할머니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도준은 정말 살인범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을 진실이라 생각하며 분노하는데, 그 분노의 표출방식은 정말 제각각이다. 모두 저마다의 해석을 하며, 애초에 소통 따위는 자리에 없다. 더군다나 죽은 여학생이 어떠한 일로 괴로워했고 왜 죽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봉준호, 그가 만든 영화 속의 세계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영화 분위기와 배경설정은 소통의 단절을 극대화시켜서 관객에게 전달한다.무채색의 배경, 어느 시대 어느 지방인지 알 수 없는 지역적 특징들, 어느 세대의 삶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삶의 방식들. 봉준호가 설정한 공간은 기본적으로 2009년 현재를 말하고 있지만(중간에 월드컵 얘기가 나오면서 년도가 언급된다), 마치 2009년과 7,80년대의 모습을 섞어놓은 것 같다. 도준을 수사하는 취조실은 80년대를 연상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전작 '살인의 추억'도 함께 떠오르게 한다.

그는 비현실적이고 삭막한 공간설정을 함으로써, 현실적인 공간과 시대 설정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선입견들을 버리고 철저히 사람들의 삶의 행태만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동안 자연스럽게 봐 왔던 삶의 세세한 부분들에 이질감을 느끼면서 깊게 들여다보게 되고, 그 동안 놓쳐왔던 것들을 보게 된다. 고다르 감독이 '네 멋대로 해라'에서 효과음의 부자연스러움을 통해서 일상을 들여다보게 했다면, 봉준호 감독은 그 부자연스러움을 공간을 이용해서 느끼도록 하였다.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 외에도 봉준호 감독이 항상 자신의 영화를 통해서 공통적으로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마더에도 들어가있다. 그는 항상 공권력을 불신하며 공권력이나 경찰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꼭 짚고 넘어간다. 사과를 물린 채로 도준을 때리며 수사하는 경찰의 주먹구구식 수사모습이나, 도준의 변호사가 룸살롱에서 검사, 지방유지와 폭탄주를 먹는 장면에는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뚜렷하게 담겨있다.

도준 도준은 속수무책으로 경찰에 잡혀가서 조사를 받는다

▲ 도준 도준은 속수무책으로 경찰에 잡혀가서 조사를 받는다 ⓒ CJ Entertainment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집착이 광기를 불렀다

마더의 영화소개나 영화평들을 읽어보면 모성애가 결국 광기로 돌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말이 많이 쓰여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다르게 생각했다. 영화의 초반부터 엄마는 원래 미쳐있었다. 그녀는 무채색의 삶 속에서 항상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영화 내내 김혜자는 무채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안에서 계속해서 붉은 색 옷을 입는데 이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찾으려는 그녀의 노력이다.

장례식장에 온 도준의 엄마 장례식장에서조차 엄마는 빨간 옷을 입고 있다

▲ 장례식장에 온 도준의 엄마 장례식장에서조차 엄마는 빨간 옷을 입고 있다 ⓒ CJ Entertainment


뭐하나 살만한 이유 없는 삶 속에서 그녀가 찾아낸 것은 엄마로서의 자기 자신이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엄마로서의 삶은 정체성을 찾으려는 그녀의 집착이 그려낸 허상일 뿐이었고, 결국 그녀의 집착은 광기가 되어서 나타난다. 모성애가 그녀를 미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집착이 광기가 되어서 나타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혜자는 자신의 다리에 침을 놓는데, 모든 걸 다 잊게 해준다는 바로 그 침자리에 스스로 침을 놓는다. 이렇게 침을 놓은 후 엄마는 일어나서 춤을 춘다. 이 장면은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굿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 장면이 모든 것이 끝났으나 결국 엄마로서의 역할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김혜자가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기 위해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풀려났고 모든 사건이 종결되었지만 김혜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집착과 광기, 그녀의 춤은 그래서 더욱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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