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열림포럼.

지난 23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열림포럼. ⓒ 상상마당

 

지난 5월 23일 토요일, '이 시대 이야기꾼들의 이야기 만들기'라는 주제로 <제7회 KT&G 상상마당 열린포럼>이 개최되었다. 그동안 꾸준하게 젊은 예술가들의 작가적 상상력을 지원해온 KT&G는 한국문화의 위기가 이야기에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며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 포럼은 천운영 소설가, 윤태호 만화가, 조진국 드라마 작가, 김현석 영화감독이 참여해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며 세 시간 이상 진행됐다.

 

이날 포럼에 참여한 전문 작가들은 순수한 활자 매체의 창작자 천운영씨를 제외하면 모두 다 그림이나 이미지 매체 속한다. 시나리오는 문자로 작성되지만 영화제작을 위한 영상언어로 기록되는 점이 그러하고 만화 역시 시각적인 문법에서, 특히 윤태호 작가의 이끼같은 작품은 영화연출과 닮은 점이 많다. 이미 순수 활자 창작물보다 그림과 이미지가 주요한 소비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 것이다. 물론 그림과 이미지를 구성하는 바탕은 텍스트가 되므로 문화의 위기를 근본적인 이야기에서 찾는 것은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과연 그 책임이 이야기꾼들과 그들의 생산물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한국적 스토리텔링은 무엇인가

 

이날 포럼의 기획 의도는 한국적 스토리텔링의 현 주소를 되짚어 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한국형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한국형'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나 생각해 보자. 아마도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개봉하면서 소위 말하는 '한국형'이란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됐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한국형 스토리텔링은 현재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애초에 지금의 영상 매체라는 것은 서사는 물론 촬영이나 편집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이해를 거쳐 도입된 것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제치하에서 갑자기 유입된 서양문물이었고 또 발전 과정에서도 헐리웃이나 일본 드라마를 중심으로 도용과 복제를 반복해 왔다.

 

소위 최근의 막장 드라마를 근거로 문화의 위기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원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이 땅에는 줄기차게 이어져온 치정극과 신파극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영화의 장르 역시 멜로, 액션, 코미디, 공포로 크게 나뉘어져 소비되면서도 결국 치정과 신파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바탕이 되는 단편 신파소설 양식 또한 외국으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받아들여졌다. 때문인지 해외 작품들에 대한 복제의 반복이라는 한계를 지속적으로 보여 왔다.

 

또한 생각해 보자. 스토리텔링에 대해 배우는 시나리오 작가들은 왜 3막 구조 등의 서구문법을 중심으로 배워야 했을까. 애초에 우리민족은 이야기라는 것이 없었나? 그렇지 않은데 이상하지 않나. 그리스 신화의 것들을 배우고 유대신화의 요소들을 배우면서도 왜 작가를 목표로 하는 과정에서 동양문화와 우리의 고전에 대해서는 그만큼 파고들지 못하는 것일까. 헐리웃 못지않은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들을 보라. 고전적인 헐리웃의 스토리와 견주어 비슷한 소재와 문법을 발견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많은 부분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개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개성이 있을까.

 

 지난 23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열림포럼.

지난 23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열림포럼. ⓒ 상상마당

 

한국영화나 만화 등 흥행작들 가운데 따라 하기, 표절과 도용, 짜깁기 의혹이 있는 작품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포럼 중간 질문을 던진 어느 관객은 우리는 왜 CSI 같은 걸 못하냐고 물었다. 아니 왜? 도대체 우리가 그걸 왜 해야 하는데? 미드 보고 싶으면 미드를 봐야지. 따라해 봤자 짝퉁밖에 더 되겠나. 그렇지 않은가. 물론 치밀한 구성의 예로서 그런 질문을 했을 수는 있기 때문에 후에 다시 언급하겠다. 또한 한국형 스토리텔링을 생각해보는 자리에서 일본 창작자를 왜 들먹이며 뭐가 더 좋은지를 논해야 했을까.

 

이날 청중들의 질문에서 우리 고전의 스토리텔링이나 작가들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다. '한국형'이라는 것을 생각하기위한 바탕이 미흡하다고 여겨져 무척 아쉬웠다. 이것은 전적으로 청중들을 보며 느낀 것이다. 때문에 한국문화의 위기가 꼭 작가들의 이야기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닌 것이다.

 

한국 문화의 위기는 이야기만의 위기가 아니다

 

CSI에 대한 질문의 답으로 김현석 영화감독은 충무로에는 그런 작품을 내놓을 만한 인재가 정착하기 힘들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시나리오 쓰는 과정에서 물질적인 지원은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윤태호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취재비도 자비로 충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작가를 하기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우며 정 하려거든 5년 치 생활비를 미리 벌어놓고 시작하라는 선배들의 금언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아무리 치밀하게 장르적 완성도를 높여도 결국 제작자와 투자자가 맘에 안 들면 그만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자본을 들여 이익을 회수하려는 산업의 구조상 현장에서는 주 타겟인 여성관객들이 좋아할만한 것이 아니면 퇴짜를 놓는 경우가 다반사다. 헐리웃의 경우 시장이 넓고 관객층이 다양하기 때문에, 즉 소비층이 넓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성실하게 취재를 한 작가가 '세븐' 같은 잘빠진 스릴러를 내놓더라도 분명 팔리게 되어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단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에 도입된 엔터테인먼트의 주 소비층으로서 가사노동을 하며 여가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여성층의 취향이 자리 잡고 있다. 애초에 대중적인 신파물의 주 소비층이 여성들이었고 지금도 흥행을 노리는 기획과정의 주 타겟은 여성으로 자리 잡는다. 아직도 많은 제작자와 투자가들은 여성관객 다수가 선호하는 장르적 장치들과 서사를 선호 한다. 실제 시나리오 기획을 하면서도 감독과 작가, 제작자는 여성관객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고민하기 일쑤다. 생각해 보자. 쉬리 이후로 액션 스릴러에 왜 멜로가 결합되어야 했을까. 사실 헐리웃에서도 호러나 스릴러 등 특정 장르의 주 소비층은 성별의 비율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이어져 왔다.

 

 지난 23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열림포럼.

지난 23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진행된 열림포럼. ⓒ 상상마당

 

그런 것 다 무시하고 장르적인 완성도만 높이면 어떻게 될까? 추격자 이후로 제작된 정통 장르영화와 흥행 여부를 헤아려 보라. 별로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예전에 어느 감독은 수년 간 작업한 시나리오를 들고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대기업 제작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상부에 작품을 보고하는 모니터링 직원이 시나리오의 서사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안타까운 감독은 직접 파워포인트로 서사구조를 정리해서 각 시간대별로 무슨 사건이 어떠한 연결 고리를 가지는지 브리핑까지 했다고 한다. 그 감독도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장르영화 전문가인데 정성들여 완성한 각본이 그런 취급을 당했다. 이후 어렵사리 제작자를 만났지만 각본은 또 다시 수정을 거치고 설상가상 투자가 여의치 않아 제작비 문제로 제대로 찍을 수 조차 없었다.

 

작가나 감독이 정말 대단한 시나리오를 완성하더라도 그것을 심사하는 모니터링 직원이나제작자, 투자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말짱 꽝이다. 완고를 내놓더라도 또 다시 결정권자들의 입맛에 맞도록 수정을 반복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들의 인준을 거쳐(?) 제작된 무수한 복제작들과 쓰레기 영화들은 무엇을 증명하나. 바로 그러한 구조의 무능함이다. 결국 소비되는 문화, 창작물의 위기란 큰 틀에서 산업의 구조와 관객(독자) 그리고 텍스트, 이렇게 세 가지 문제가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도전정신으로 정면승부를 펼치자

 

그림이나 이미지 매체를 위주로 이야기 했지만 소설 역시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흥행을 염두 하는 대자본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롭다 할 수 있으나 집필 기간 동안 아무런 지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문단권력으로 일컬어지는 인맥 또한 공모전 등을 준비하는 지망생들에게 많은 부담을 안기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야기라는 것은 우리가 향유하는 대중문화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뼈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척박하고도 험난한 환경 속에서 작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불멸의 걸작을 꿈꾸며 열정을 불사를 수 있을까.

 

윤태호 만화가나 조진국 드라마 작가는 (작법을 통한) 기술이 있더라도 재능이 없다면 힘든 일이니 그만 두는 것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던졌다. 그러나 천운영 소설가와 김현석 영화감독의 말은 달랐다.

 

"(공모전 등에) 자꾸 떨어지니까 내가 혹시 재능이 없는 것일까 좌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사회에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요. 이 사회가 아무리 힘들고 쓰레기 같더라도 그럴 수록 작가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 거리를 건져 올릴 수 있습니다.

 

노력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어떠한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서 그에 대한 대답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1등이 될 수는 없습니다. 천부적 재능을 넘어서 필요한 것이 인간적인 노력입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그것이 이야기(소설)이고 예술이 아닐까요?" 천운영(소설가)

 

"계속 글을 쓰세요. 기타도 처음 연습할 땐 코드 잡기가 힘들죠. 글쓰기도 습작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코드가 잡히게됩니다." 김현석(영화감독)

 

열심히 쓰더라도 너무나 자기만의 개성과 작품성에만 매달리면 독자나 관객이 외면하지는 않을까, 구태의연한 기획자들이 몰라주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지도 모른다. 과연 작가와 독자와의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소설을 쓰면서 (이 직업은) 무당과도 같다는 생각을 해요. 무당은 접신을 하잖아요. 소설가 역시 나를 둘러싼 세상과 접신하는 과정이 있다고 생각해요(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작가정신을 말한 듯). 무당이 접신을 한 후 터지는 말이 과연 스스로한 말일까요? 아니죠. 무당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들어야 하고 듣고자 하는 말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상대가 원하는 것이죠. 소설을 쓰는 과정도 그런거라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세상이 원하는 말이기도 하다고요." 천운영(소설가)

 

예전에 강제규 감독은 젊은 작가들이 지나칠 정도로 영화나 다른 유명 작가들의 창작물만을 많이 본다는 것을 경계한 적이 있다. 역시 작가는 사회와 시대상을 알고 소재를 얻기 위해서, 제작현장을 알기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또한 본인의 작품을 알아주지 않을 수록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조언하는 감독들도 있다. 실제로 관객에게 사랑받는 개봉작들 중에는 제작자로부터 수없이 거절당하며 쓰레기통에 처박혔던 이력을 가진 것이 의외로 많다.

 

꿈을 품고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그대여,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 솔직히 말해 이날 열린 포럼은 '한국형' 스토리텔링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렸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다만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자리를 제공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이제 '한국형'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고 찬란한 미래를 열어나가는 것은 이 글을 읽는 꿈을 품은 자들의 몫이다.   그런 분들은 우선 포럼을 기획한 KT&G 상상마당에 도전해 보시라. 흥행보다도 작가적 도전정신을 응원하는 상상마당은 음악, 영화, 사진, 소설 등 창작자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으니까.

 

포럼 동영상 보기 

덧붙이는 글 | 기사 취재하는 날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 저는 한동안 이 기사를 쓸 수 없었습니다. 
충격과 슬픔과 분노로 밤을 지세웠습니다. 억울한 죽음에 몰리신 당신을 추모합니다. 내 마음 속에 작은 비석을 세우며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2009.05.30 13:22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기사 취재하는 날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 저는 한동안 이 기사를 쓸 수 없었습니다. 
충격과 슬픔과 분노로 밤을 지세웠습니다. 억울한 죽음에 몰리신 당신을 추모합니다. 내 마음 속에 작은 비석을 세우며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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