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포스터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포스터 ⓒ (주)아펙스 엔터테인먼트

결국 돈 때문이다. 83살의 노장감독이 만든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는 돈으로 시작해서 피로 결말이 나는 영화다. 강도, 살인, 마약, 불륜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는 한 가정을 피로 물들이기에 충분해 보인다. 동시에 이 작품은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탐욕, 질투, 무책임, 부도덕함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있다.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는 잘 나가는 회계사지만 회계감사를 앞두고 뒤가 켕긴다. 감사를 받으면 자신의 부정이 드러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는 브라질 이민을 계획 중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한편 행크(에단 호크)는 이혼한 아내에게 꼬박꼬박 딸아이의 양육비를 대느라 숨통이 턱턱 막힌다. 형과 아우는 도원결의를 맺듯 비장한 각오로 범죄를 모의한다. 그것도 부모님의 가게를 표적으로 한다. 허나 어머니가 죽는다. 미필적고의라고 하기에는 너무 치명적인 사고였기에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

 

 영화는 꽤나 고전적이다. 시드니 루멧은 노장답게 우회로를 선택하기 보다는 직선주로를 택했다. 아버지와 두 아들사이에서 벌어지는 질투와 애증 그리고 복수라는 주제는 그리스 비극에 뿌리내리고 있다. 장남 앤디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행크를 질투하고, 그런 아버지에게 섭섭한 마음을 내비치는 장면들은 앤디의 모습이 그러하다. 한편 영화는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와 미국인들의 윤리의식에 흠집을 내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동시대 미국 감독들이 여러 차례 도전해서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테마라고 할 수 있다. 비극과 복수라는 테마 그리고 동시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고전미와 현대성을 두루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감독은 고전적인 내용을 세련된 그릇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등장하는 두 남녀의 거친 정사는, 관객에게 포르노를 볼 때의 당혹감과 부끄러움을 준다. 사전정보 없이 섹스 신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 장면은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러나 두 남녀의 관계가 부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장면에 대한 관객의 해석은 역전된다. 정사를 마친 후 앤디와 그의 아내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하고 행복한 부부상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는 관점과 전후맥락에 따라서 사물과 사건에 대한 해석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에 주안점을 두어 영화는 동일한 사건을 각 인물별로 편집했으며, 보석상 강도 사건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지그재그로 넘나든다. 같은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할 때 마다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팽팽한 긴장감은 이야기의 밀도를 높인다. 한 예로 앤디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동생을 향해 범죄를 함께 하자고 설득하는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행크의 위축된 모습이 부각되고, 두 번째에서는 행크를 설득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앤디의 모습이 부각 된다. 또한 결과가 먼저 등장하고 동기와 원인이 후에 등장하기 때문에 인물의 심리와 사건의 전말을 유추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는 결말부로 향해가면서 책임의식을 슬그머니 내놓는다. 애초에 영화는 남성들의 무능력함에 포커스를 맞춘다. 앤디의 경우 연봉을 10만 달러나 받으면서도 회사공금을 가로채 부정축재를 해왔다. 그와 아내는 프티부르주아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만족하는 법을 모른다. 특히나 앤디의 아내는 브라질로 이민을 가서 풍족한 삶을 살길 원한다. 아내 때문인지 몰라도, 앤디는 가장으로서의 중압감에 시달린다. 결정적으로 앤디는 침대에서 아내를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아내는 욕구불만이고 남편은 신경쇠약이다.

 

 영화 속 한 장면

영화 속 한 장면 ⓒ (주)아펙스 엔터테인먼트

 

 

 한편 동생 행크는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늘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다. 헤어진 아내로부터는 양육비조차 감당해주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무시당하고, 딸 역시 그런 아버지를 가난뱅이 취급한다. 앤디와 행크는 서로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가부장으로써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다. 적게 벌든 많이 벌든 돈은 벌수록 욕망을 부채질 하는 얄궂은 놈이다.

 

 두 사람 모두 어느 순간 책임을 회피하면서 핑계를 대기 시작한다. 이것이 평온한 가정을 뒤흔들고, 평범한 사람의 악마적 본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어머니가 총기사고로 사망하면서부터 두 남자의 책임회피는 절정에 달한다. 동생 행크는 어찌할 바를 몰라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형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 형 앤디는 아버지에게 못내 섭섭했던 속내를 내비춘다.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눈물과 분노를 동시에 터뜨리는 그의 모습은 자뭇 동정심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두 남자가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의 말과 행동은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처절한 발악에 가까워진다. 덩달아 피해자도 늘어간다. 마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처럼, 원금에 불어나는 빚처럼, 영화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죽음은 도미노 게임처럼 연속적해서 일어난다.

 

 결국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는 자명한 진리에 도달한다. 이는 현대사회를 묘사하기에도 적합하다. 탕감하지 못하는 빚이 무서워 책임을 방관하고 회피하는 순간에 빚은 눈덩이처럼 우리를 질식시켜버린다. 카드로 돌려막기를 해도 결국 모든 책임은 나에게 돌아온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속 가정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다. 책임을 미루고 전가하거나, 남을 착취해야 하는 구조의 연속. 피도 눈물도 없는 세상이다.

2009.05.24 09:50 ⓒ 2009 OhmyNews
아마도 악마가 너의 죽음을 에단 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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