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포수 최승환은 어깨가 강해 도루를 막는 능력이 뛰어나다.

두산 포수 최승환은 어깨가 강해 도루를 막는 능력이 뛰어나다. ⓒ 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주전 포수 최승환(31)은 '5할'이다. 타율이 아니라 도루 저지율이 5할대다. 최승환은 4월 30일 현재 15번의 도루 시도 가운데 8번을 막아 8개 구단 주전 포수 가운데 가장 높은 5할3푼3리의 도루 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타율은 1할5푼8리(57타수 9안타)에 그치고 있다. 상,하위 타선 가릴 것 없이 어디서든 안타가 터지는 두산 타선의 힘 때문에 부진이 가려져 있긴 하다. 최승환은 "포수는 타격보다는 수비가 먼저다. 본분에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타율이 계속 1할대에 머문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4월 30일 SK 와이번스와 치른 잠실 홈경기에 최승환은 타격 부진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김광림 두산 1군 타격 코치는 "아직 자신을 못 믿는 것 같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자기 스윙을 하면 분명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시즌 전 김코치는 최승환을 올해 두산에서 가장 기량이 발전한 타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았다. 186cm, 89kg의 듬직한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 좋고 체격 조건을 살리는 스윙을 한다는 게 이유였다. 부진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4월 월간 타율에 불과하다.

4월 28일 SK와 경기를 앞둔 잠실구장 1루쪽 더그아웃에서 윤혁 두산 운영팀 과장이 최승환에게 한마디 했다.

"타율 2할만 넘겨 봐라."

윤과장의 핀잔 아닌 핀잔에 최승환은 준비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답했다.

"2할은 치겠죠. 일단 도루 저지율에서 1할만 타율로 옮기면 안 될까요."

LG를 벗어나다

최승환은 올해로 프로 10년째를 맞는 중견 선수다. 1996년 고졸 우선지명으로 2000년 LG 트윈스에 입단한 그는 조인성과 김정민의 벽에 막혀 좀처럼 1군 출전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9년 동안 1군 출전이 141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최승환은 "긴 2군 시절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2군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서른줄에 들어선 최승환은 이대로 은퇴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럴 때마다 서효인 LG 2군 배터리 코치(현 LG 1군 배터리 코치)가 큰 힘이 됐다. 서코치는 최승환에게 "너는 재능이 있다. 조금만 참으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격려했다. 최승환은 서코치의 도움으로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기회보다는 시련이 먼저 찾아왔다. 최승환은 2007년 6월 15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에서 2루에 슬라이딩을 하다 왼쪽 무릎 반월판 연골이 파열돼 수술대에 올랐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포수에게 무릎 수술은 치명적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재활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포수 보강 문제가 시급했던 두산의 눈길을 끈 것도 이때다. 두산 김승영 단장과 김태룡 운영홍보부문 이사는 최승환의 영입 문제를 놓고  논의를 거듭했다. 김단장은 "(최)승환이의 영입은 무릎 수술 때문에 적잖은 위험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워낙 성실한 데다 재활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2군 성적이 조금씩 향상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3일 최승환은 9년 동안 몸담았던 LG를 떠나 두산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때 외야수 이성열도 두산으로 이적했고 오른손 투수 이재영과 내야수 김용의가 LG로 갔다. LG의 한 관계자는 "최승환은 수준급 포수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이지 그만한 포수도 없다. 두산에서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회를 얻다

조인성과 김정민이 버티고 있는 LG를 떠난 건 최승환에게 큰 변화이자 기회였다. 그러나 두산 김경문 감독은 주전 포수 채상병(30)을 믿고 있었다. 최승환은 백업 포수에 불과했다. 최승환은 "무조건 (채)상병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채상병은 최승환의 연세대 2년 후배다.

김감독은 최승환에게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줬다. 두산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도전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는 이와 같은 경쟁 구도다. 선수들이 끊임없이 경쟁하며 전력 이상의 힘을 냈던 게 최근의 두산이다.

지난해 두산의 주전 포수는 여전히 채상병이었지만 최승환도 출전 기회가 조금 늘었다. 최승환은 정규 시즌 126경기의 절반인 63경기에 출전했다. 그전까지 2006년 31경기에 나선 게 한 시즌 가장 많은 1군 출전이었다.

최승환은 지난해 10월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날 최승환은 선발 출전했고 팀이 0-2로 져 SK가 4승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는 광경을 지켜봤다. 그는 "팀은 졌지만 만원 관중 속에서 포스트시즌의 결정판인 한국시리즈에 뛴 것 만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말했다.

이 경기는 최승환에게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2009년 두산의 주전 포수는 채상병이 아닌 최승환이었다. 4월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홈 개막전에 최승환은 포수 겸 8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팀이 7-5로 이기는데 힘을 보탰다. 그날도 지난해 한국시리즈 5차전과 같이 3만500명의 만원 관중이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경문 감독은 시범경기 때 최승환, 채상병은 물론 상무에서 전역한 용덕한, 김진수까지 골고루 출전 기회를 줬다. 시범경기 막바지에야 김감독은 "최승환을 주전으로 기용할 마음을 굳혔다"고 밝혔다. 최승환은 올 시즌 두산이 치른 20경기 가운데 18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경쟁에서 밀린 채상병은 올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다.

 두산 포수 최승환(왼쪽)과 마무리 투수 이용찬이 경기를 마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두산 포수 최승환(왼쪽)과 마무리 투수 이용찬이 경기를 마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두산 베어스


김경문의 선택

두산 코칭스태프는 채상병과 최승환의 능력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보고 있다. 김태형 두산 1군 배터리 코치는 "차이가 있다면 (최)승환이의 어깨가 조금 더 강하다는 정도"라고 말했다. 김감독도 김코치와 같은 말을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의외로 큰 차이일 수도 있다.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 2년 연속 SK와  만났지만 고비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다. 두 팀의 전력에서 가장 큰 차이는 포수였다. SK는 기본기는 물론 투수 리드, 도루 저지 능력까지 뛰어난 경험 많은 박경완이 마스크를 썼다. 반면 두산은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하고 노련미가 떨어지는 채상병과 최승환이 번갈아 포수를 봤다.

포수의 차이는 두 팀의 성적을 갈랐다. 두 팀 모두 기동력이 뛰어났지만 재미는 SK만이 봤다. 정규시즌 두산 선수들은 189개의 도루를 성공해 170개의 SK에 앞섰다. 성공률도 75%나 돼 SK의 67.2%보다 높았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만큼은 기동력에서 SK에 뒤졌다. SK가 7개의 도루를 성공하는 사이 두산은 고작 3개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주전 포수 채상병의 미흡한 송구 능력은 SK의 발빠른 야수들을 더욱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정규시즌 채상병의 도루 저지율 2할2푼4리는 8개 구단 주전 포수 가운데 한화 이글스 신경현(0.220)에 이어 두 번째로 나빴다.

그래서 김감독은 올 시즌 전력 구상에서 주전 포수 교체를 전면에 내세웠다. 강한 어깨를 가진 포수를 찾다 보니 결국 최승환이 주전 포수가 됐다. 스카우트로 활동한 적이 있는 윤혁 운영팀 과장은 "송구 능력이 좋은 최승환의 영입으로 과거 두산의 단점이 장점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최승환은 스포츠 주간지 <SPORTS2.0>에서 각 구단 코칭스태프와 방송사 해설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최고의 포수'를 뽑는 설문에서 블로킹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투수들의 최승환에 대한 평가는 박하지 않다. 5할대의 도루 저지율 때문만은 아니다. 최승환의 룸메이트인 신인 투수 성영훈은 "(최)승환이 형은 평소 투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눈다. 어린 투수들이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채상병이 투수 리드에 강점을 보이고 도루 저지에 약점을 보였다면 최승환은 도루 저지 능력이 뛰어나지만 1군 투수들과의 경기 경험이 더 필요하다.

두 선수의 차이에 대해 두산의 구원 투수 이재우는 "송구 능력이 좋은 최승환과 호흡을 맞출 때 퀵 모션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고 했다. 이재우와 함께 두산의 허리를 책임지고 있는 투수 임태훈은 "상병이 형이 안정적인 리드를 한다면 승환이 형은 공격적인 리드를 한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종종 승부구 사인을 낸다"고 귀띔했다.

도둑을 잡아라

올 시즌 SK의 준족들은 두 선수의 차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SK 외야수 박재상은 "어깨가 좋은 포수가 있어 도루에 부담이 되는 면이 있다. 지난해는 두산을 상대로 도루하기가 쉬웠는데 올해는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팀 내 1위인 9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내야수 정근우는 "포수도 포수지만 두산 투수들이 전체적으로 투구 동작이 빨라졌다. 견제도 잘해 뛸 때 가끔씩 망설인다"고 털어놨다.

두산 외야수 민병헌은 최승환이 8개 구단 포수 가운데 최고의 송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송구 능력만 놓고 보면 승환이 형을 능가하는 포수가 다른 구단에 없는 것 같다. 도루는 투수의 투구 폼을 뺏는 거라 포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두산은 예외다. 도루를 시도하는 선수의 절반 이상을 막지 않나."

김정준 SK 전력분석팀 과장은 "도루 저지는 투수가 45%, 포수가 45%, 공을 받는 내야수가 10%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포수의 도루 저지율은 다른 요소가 포함된 결과라는 뜻이다.

김과장은 "포수의 송구 능력이 좋지 않으면 주자가 있을 때 구종과 코스에 약점이 생긴다. 변화구나 몸쪽공 승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포수의 능력은 모든 요소를 종합해 평가해야 한다. 박경완이 아직도 최고의 포수로 평가받고 있는 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박경완은 도루 저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도루를 허용하게 되면 포수에게 절반의 책임은 있다고 봐야죠."

각 팀의 도루 저지를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린 라이트'를 부여받은 빠른 선수들은 한결같이 "갈수록 도루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5할대의 도루 저지율을 보이고 있는 최승환에게 더욱 눈길이 쏠리는지도 모른다. 두산은 최승환의 주전 기용으로 도루를 막는 효과도 봤지만 팀 평균자책점 3.63으로 3.13의 1위 KIA에 이어 2위를 달리며 다른 방면에서도 성과가 났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퀵 모션과 주자 견제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의 흐름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시즌 도중에 입단해 2승5패 평균자책점 3.98로 비교적 선전했던 KIA의 외국인 투수 케인 데이비스는 투구 동작이 느려 재계약에 실패했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두산 투수 김선우는 세트 포지션에서 느린 투구 폼과 견제 동작을 보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누구보다도 1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고 싶었던 최승환은 올해 큰 목표가 없다. 부상 없이 1군에서 최대한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싶을 뿐이다.

"뒤늦게 새로운 야구 인생이 시작됐다. 올 시즌 1군 경기에 주전으로 나서는 게 정말 꿈만 같다. 최선을 다해 선수 생활을 하겠다."

최승환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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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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