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우린 나름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린 서로 사랑했다고요." 아무리 항변을 한다 해도 씨알조차 먹힐 것 같지 않은 내용이다.

▲ 영화 포스터 "우린 나름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린 서로 사랑했다고요." 아무리 항변을 한다 해도 씨알조차 먹힐 것 같지 않은 내용이다. ⓒ Lakeshore Entertainment

'대학교수, 여제자 성희롱하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영화 속의 이야기가 진짜로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공개되었다면 아마 위와 같은 제목으로 대서특필했을 거다. 그리고 그 교수는 마침내 언론의 재판을 거쳐 진짜 재판이란 걸 받아 강단에서 떠나야 할 거다.

"우린 나름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린 서로 사랑했다고요."

아무리 항변을 한다 해도 씨알조차 먹힐 것 같지 않은 내용이다. 영화 <엘레지>는 퓰리처상 수상자 '필립 로스'의 <The Dying Animal>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2001년 발간된 이래 성과 사랑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다뤘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욕망과 사랑

인간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다면 생명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사랑일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리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숙제다. 설핏 대답했다 해도 타인을 설득해 '인정'하게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인생에 있어 사랑의 의미와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늙어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 노인이란 무엇이며 청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 성이란 욕망인가 아닌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준 영화? 다 좋다.

이 영화를 감독한 이자벨 코이셋은 "필립 로스의 작품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인간의 숨겨진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수많은 논쟁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라며 영화화 자체가 흥미로운 작업이었음을 밝힌 적이 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성에 대한 질펀한 대화로 시퀀스를 들이민다. 두 노 교수의 성에 대한 진담, 그리고 이어 진행되는 한 노교수의 제자를 향한 욕망, 참 흥미로운 일이다. 영화는 성에 대해 맘껏 부푼 기대를 품고 관객이 영화 속으로 몰두하도록 이끌고 들어간다.

노인의 성, 그 나이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당연히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러나 노인의 성도 아름다운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말하려고 한다. 노인에게도 성욕이 있는가. 영화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성에 있어서는 남자만 있을 뿐이지 노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데이빗 교수(벤 킹슬리)에게는 성이 하나의 욕망일 뿐이다.

집착과 사랑

 노인의 성, 그 나이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당연히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러나 노인의 성도 아름다운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말하려고 한다.

노인의 성, 그 나이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당연히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러나 노인의 성도 아름다운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말하려고 한다. ⓒ Lakeshore Entertainment


첨부터 강의실에 들어서는 대학원생 콘수엘라(페넬로페 크루즈)는 다른 학생과는 달랐다. 적어도 데이빗 교수의 눈에는.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밀접한 사이가 된다. 한 명의 남자로, 아니 다른 여느 남자들보다 더 남자다운 남자로 데이빗과 접촉하는 콘수엘라.

데이빗에게는 그녀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숙제인 성의 하룻밤 욕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콘수엘라에게는 진정한 사랑의 성이었던 것. 그는 지나는 역이었는데 그녀는 종착역이길 바랐던 것이다. 오늘날 남녀의 성의 차이는 이런 데서 불행의 절정에 이르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의 진한 사랑이 성적으로 만족해 가고 있을 때 여느 여자들과 똑 같이, 정말 똑 같이 가족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콘수엘라, 하지만 이미 성이 욕망 이하도 이상도 아닌 데이빗에게는 도망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된 것이다.

여기서 이들의 불행은 시작되는가? 도망치는 남자, 붙드는 여자. 그럴 듯하게 구도가 통속극으로 간다. 그로부터 2년 후, 여자는 유방암이 걸려 연락을 해 온다. 200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독립 영화. <워낭소리>를 이을 것이란 광고카피는 좀 그렇다. 엘레지는 있는데 진지한 숙고가 없다.

잘 포장된 성 영화, 그렇다. 그렇게 밖에는 다른 말을 해주기 힘들다. 30살의 나이차를 극복한 사랑이라거나, 사랑에는 국경이나 나이가 상관없다는 식의 상투적인 얘기는 그리 통할 것 같지 않다. 성애의 아름다운 표현에도 불구하고, 누드와 성! 그것으로 끝인 영화가 아닌가 싶다.

원조교제

쉽게 말하면, 데이빗과 콘수엘라의 사랑(굳이 사랑이라고 해도)은 원조교제다. 그러나 허락된 원조교제와 허락되지 않은 원조교제가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좋지 않다. 30살의 나이를 극복한 성애, 이 정도면 후한 평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줄거리는 돈과는 관계없는, 서로가 사랑이라는 가교를 통하여 하는 원조교제다. 노인이 노인이 아니고, 소녀도 소녀가 아니었다. 원조교제도 나름대로 사랑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주장한다면 그렇다고 인정해 줄 만하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 중 가려내고 뽑아낸 원조교제 이야기가 있다면, 영화 <엘레지>에 나오는 원조교제라고 하겠다.

덧붙이는 글 <엘레지> 이사벨 코이셋 감독/ 페넬로페 크루즈, 벤 킹슬리 주연/ (주)누리 픽쳐스 배급/ 상영시간 112분/ 2009년 3월 19일 개봉
엘레지 개봉영화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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