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초등학교 쉬는 시간. 지적 장애가 있는 승호(가명)를 일반 아동 한 명이 운동장에 데리고 나온 후, 목에다가 개목걸이를 채워 질질 끌고 다녔다. 그 아이는 승호에게 개 짖는 소리를 내보라 했고, 승호는 개목걸이를 한 채로 그 아이가 시키는 대로 짖었다. 나중에는 승호 혼자 개목걸이를 한 채로, 운동장을 돌며 개 짖는 소리를 냈고, 그 아이와 다른 아이들은 승호의 모습을 보면서 박장대소를 했다.

장면 2
초등학교 야외 체험 학습 시간. 지적 장애인 민규(가명)와 함께 놀던 친구는 땅 속에서 꿈틀대던 지렁이를 발견했다. 이 친구는 지렁이를 잡아 맛있는 거라고 하면서 민규에게 먹어보라고 했고, 민규는 어쩔 수 없이 지렁이를 입 속에 집어넣았다.

장면 3
남녀공학인 고등학교 수학여행. 지적 장애학생인 '동현'(가명)이도 함께 갔다. 첫날 밤. 동현이와 함께 방을 쓰던 남자 아이 몇몇이 동현에게 옷을 모두 벗어 여관 밖으로 나가 마당을 걸은 후, 방으로 올라올 것을 명령했다. 동현이는 거부했지만, 남자 아이들이 윽박질러대어 결국 옷을 모두 벗고 여관 복도를 지나 마당으로 나갔다가 선생님으로부터 발견되었다. 

오늘날,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가 말하긴 어려워도,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장애학생, 특히 지적/발달장애 학생들은 특별한 조치와 지원을 하지 않는 이상, 비장애학생들의 놀림감으로 화풀이용으로 언제든지 전락하고 만다. 슬픈 일이긴 해도, 그것이 현실이다. 지적/발달 장애학생들을 놀린 학생들을 추궁하면,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그냥 장난 친 것 뿐이예요...' 맞다. 그 아이들이 '나쁜 마음'을 갖고 지적/발달장애 학생들을 놀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개목걸이를 차거나 지렁이를 먹거나, 옷을 모두 벗고 바깥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상상하지 못한다. 그것이 '아프고 슬픈 현실'이다.

'날아라 허동구'는 '착한 영화'이다. 지적장애학생인 주인공 동구와 동구를 둘러싼 대부분 주요 등장인물들은 때론 미운 행동들도 하지만, 착하다. 그래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웃고 있어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 아프고 슬프다. 나쁜 현실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 <날아라 허동구> 같은 반 아이들은 줄기차게 물을 떠다 나르는 동구의 노동으로 편하게 물을 마시지만, 어느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 줄 아는 거라곤 물을 떠다 옮기는 일’밖에 없다며, 동구를 무시한다.
ⓒ 주)타이거픽쳐스(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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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60인 지적장애아동인 동구(최우혁 분)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동구는 노란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같은 반 아이들에게 물 따라주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해하며, 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동구를 둘러싼 현실은 앞의 사건들처럼 녹록치 않다. 동구의 담임선생은 학급의 평균 점수가 낮아진다는 이유로 동구로 하여금 학교 결석을 종용하며, 학교 교장은 진규(동구 아빠, 정진영 분)를 불러 동구 같은 아이는 장애아동들만 다니는 특수학교로 전학가야 된다고 말하며, 전학을 강요한다.

같은 반 아이들은 줄기차게 물을 떠다 나르는 동구의 노동으로 편하게 물을 마시지만, 어느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 줄 아는 거라곤 물을 떠다 옮기는 일'밖에 없다며, 동구를 무시한다. 이들은 하나 같이 이른바 '정상인'의 시선으로 동구를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배제하려 든다. 훈련이나 연습을 통한, '발달 가능한 존재'로서 동구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렇듯 동구가 마주한 현실은, '넌 할 수 있는 게 없어. 넌 바보 멍청이야' 라는 '낙인'과 '편견'의 시선으로 둘러싸여 있다. 학생들의 놀림감과 화풀이용으로 전락하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동구의 유일한 친구이자 동구를 '발달 가능한 존재'로 보는 준태(윤찬)의 태도는 놀랍고, 반갑다.

▲ <날아라 허동구> 준태는 지적장애아동인 동구에게 야구규칙을 설명해주기 위해 함께 야구 오락 게임을 한다거나, 동구가 좋아하는 주전자와 컵으로 야구의 규칙을 설명해준다.
ⓒ 주)타이거픽쳐스(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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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준태도 처음부터 동구와의 관계맺기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준태는 아이들로부터 무시당하면서도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동구가 못나고 갑갑해 보여, 구박을 하거나 외면하기까지 한다. 이는 동구가 야구를 처음 배우는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반복한다. 처음 동구가 야구를 배우고자 했을 때, 권코치(권오상 분)는 마냥 반갑게 맞이했다. 선수 1명이 없어 시합조차 나가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동구의 출현은 마냥 반갑고 고마운 것이었다. 비록 룰도 모르고 방망이를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지만, 조금만 가르쳐주면 습득하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동구는 규칙을 말해줘도 모르고, 공도 무서워한다. 단지 주전자에 물을 떠다 나르는 일만을 행복해 할 뿐이다. 상길의 기대는 점점 좌절되고, 선량했던 그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구를 무시/외면한다. 착한 성장 찻에 동구를 마구 구박하진 않지만, 동구를 대하는 기본 태도/인식은 교장/담임/아이들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준태만은 달랐다. 모두 포기한 동구를, 준태만은 동구의 눈높이에서 가르친다. 야구규칙을 설명해주기 위해 함께 오락기기 게임을 한다거나, 동구가 좋아하는 주전자와 컵으로 야구의 규칙을 설명해준다. 게다가 스윙을 해서 홈런이나 안타를 치는 게 아니라, 번트 연습을 시키고 따라하는 준태와 둥구의 모습은, 지적장애아동에 대한 능력/현실을 충분히 고려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설득력/공감대를 높여준다. 공만 맞히기만 하면 되는 번트조차도 동구에게는 어려운 과정이었고 노력과 인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무런 사회적 역할 없이 단지 물만 떠다 나르던 천덕꾸러기 동구가, 야구라는 작은 사회 속 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맡아 수행할 만큼 '성장'했다는 점에 감동하고, 이를 가능케 한 준태의 헌신과 동구의 노력에 박수를 보낼 수 있다. 이렇듯 <날아라 허동구>는 지적장애아동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슬프고 아픈 현실'을 유쾌, 상쾌, 통쾌하게 그려낸다.

▲ <날아라 허동구> <날아라 허동구>는 지적장애아동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슬프고 아픈 현실’을 유쾌, 상쾌, 통쾌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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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실제 현실로 시선을 돌리면, '날아라 허동구'를 보면서 생겨났던 발랄했던 마음이 이내 어두워진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제고사 때, 전국 각지에서 특수학급에 다니는 일부 장애학생들이 학교 관리자의 요구에 따라 시험을 치지 않고 예정에도 없는 체험학습을 나갔다는 신문 기사를 비롯하여 어느 여중생의 장애학생 폭행 동영상 등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 속 동구들은 영화의 동구와 같이 날 수 있기란, 여전히 요원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때문에 우리들은 현실 속의 더 많은 준태들의 출현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것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서는, 차이와 다름이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첫 출발점이자 현실 속 동구들이 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기에.

장애영화 특수학급 통합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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