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되어 일군 WBC 준우승, 모두에게 박수를!'

온 국민을 울고 웃겼던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대한민국의 준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비록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에 연장전 끝에 분패하는 등 아쉬움도 있었지만 당초 목표가 4강이었다는 점에 비춰보면 충분히 기대 이상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 어느 국제대회 때보다도 이른바 뉴스타들이 많이 떴다. WBC에서 새로운 스타들로 거듭난 이들은 기존의 네임밸류에 중요한 순간의 활약으로 인해 평소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더욱 인지도를 높힌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경기마다 펄펄 날며 자신을 팬들과 국제무대에 더욱 알린 스타들이 있는 반면 예상치 못한 부진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한 선수들도 있다. 특히 일부 팬들마저 이들을 사정없이 비난하고있어 더욱 안타까움을 사고있는 모습이다.

 KIA 타이거즈의 젊은에이스 윤석민은 이번 대회를 통해 최고의 국제형 우완투수로 거듭났다

KIA 타이거즈의 젊은에이스 윤석민은 이번 대회를 통해 최고의 국제형 우완투수로 거듭났다 ⓒ KIA 타이거즈


봉중근의사-국민어린이-조선의 국노, WBC 투수진의 뉴스타들

마운드에서는 윤석민-봉중근-정현욱의 활약이 돋보였다. 봉중근은 김광현의 예상치 못한 부진 속에서 새로운 '일본킬러'로 확실하게 떴다. 좌타자가 즐비한 일본타자들을 맞아 무려 3차례나 선발등판하며 왼손에 극일권총을 장전한 '봉중근의사'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비록 결승전에서는 다른 경기에 비해 주춤한 모습이었지만 같은 팀을 상대로 3번이나 출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신의 몫 이상을 해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어린이' 윤석민의 도약도 인상적이었다. 윤석민은 150km 이상의 강속구는 물론 140㎞대 고속 슬라이더에 커브, 써클 체인지업, 팜볼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춘 국내 최고의 우완투수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김광현-류현진 등 좌완투수들만 부각되며 좀처럼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도 잠깐이지만 엔트리에서 탈락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하지만 윤석민은 선발과 중간계투의 임무를 모두 수행하며 변함 없는 모습을 WBC에서 선보였고 결국 국제무대에서도 인정받는 최고의 투수가 됐다. 특히 준결승전이었던 베네수엘라전에서의 호투는 그를 '국민투수'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다. 윤석민은 다양한 레퍼토리 못지 않게 상하좌우 구석구석 찔러 넣는 제구력이 뛰어나 좀처럼 상대 타자들의 노림수에 걸려들지 않는다는 강점을 지닌지라 향후에도 오랫동안 롱런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투수진의 최고 뉴스타는 정현욱일 것이다. 봉중근-윤석민이야 대표팀에서는 그 가치를 늦게 인정받았지만 소속팀에서는 1-2선발급 투수다. 엄밀히 비교하면 정현욱의 이름 값은 이들에 한참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 전천후 중간계투로 프로무대에서 활약하기는 했으나 세계무대에서 이 정도로 통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강력한 파워를 바탕으로 무시무시한 구위로 무장한 정현욱은 등판 때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결국 대표팀의 핵심 셋업맨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힘으로 일본의 정교한 타자들을 윽박지르는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팬들에게 심어주었고 '조선의 국노(國奴)'라는 닉네임까지 얻게되었다.

근성 돋보인 콧수염 검객과 국제무대에서도 통한 한화의 '쌍포'

일본팀의 빈볼성 투구와 더티한 플레이에 수난을 면치 못했던 '콧수염 검객' 이용규는 이제 확실한 대표팀의 1번 타자로 자리를 굳혔다. 베이징올림픽 등 국제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1라운드에서는 이종욱에게 주전자리를 빼앗기며 대주자로 활용되는 모습이었으나 기복 없는 플레이를 통해 2라운드부터는 다시금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

당초 김인식 감독은 이용규의 안타 생산 능력보다는 이종욱의 주루플레이에 더 많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출루하지 않으면 아무리 빨라도 소용없다. 이용규 역시 이종욱보다는 근소하게 떨어질지 모르지만 얼마든지 그라운드를 누비며 상대 내야진을 뒤흔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결국 이종욱의 부진과 더불어 이용규가 그 자리를 꿰차게되었다.

이용규는 무엇보다도 근성이 돋보이는 선수다. 일본과의 2라운드 순위 결정전에서 우쓰미 데쓰야에게 빈볼성 투구를 머리에 얻어맞은 것을 비롯 결승전에서는 도루를 감행하던 도중 나카지마의 더티한 플레이에 헬멧이 깨질 정도로 큰 충격을 머리에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타석에서 날카롭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모습은 팬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국내리그 최고의 거포조합인 한화의 '쌍포' 김태균-이범호는 국제무대에서도 장타로 이름을 떨쳤다. 이들은 한화에서 보여준 무시무시한 장타 생산력을 WBC에서도 유감 없이 되풀이했다. 덕분에 이대호의 부진과 김동주-최희섭-이승엽 등 기존 거포들의 부재 속에서도 대표팀의 중심타선은 여전히 탄탄할 수 있었다.

김태균은 이번 WBC를 통해 최고의 거포로 발돋움했다. 단순히 한방만 갖춘 선수가 아닌 당겨치고 밀어치고를 자유로이 구사하며 파워와 정교함을 두루 과시했다.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다. 때문에 국내 구단은 물론 미국과 일본의 스카우트들로부터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태균이 요란하게 전면에서 떴다면 이범호는 조용하게 소리 없이 거포본색을 드러냈다. 라운드 초반 이대호의 부실한 수비 때문에 3루수로 중용되기 시작했던 그는 이후 호수비는 물론 찬스에서 꼬박꼬박 한방을 터트려주며 중심타선 바로 밑에서 하위타선의 키플레이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다. 특히 1점 차이로 끌려가던 결승전에서 연장전으로 접어들게 하는 적시타를 쳐낸 것은 두고두고 한일전의 명장면으로 회자될 전망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했던 대표팀 선수들의 명암은 개인별로 엇갈리기도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했던 대표팀 선수들의 명암은 개인별로 엇갈리기도했다. ⓒ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공식홈페이지 캡쳐


부진했던 선수들에게도 박수를…

야구는 리듬의 스포츠다.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겠지만 야구는 특히 선수간의 컨디션 사이클이 확실한지라 한번 부진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든 것이 사실. 프로야구 정규시즌 같은 장기레이스에서는 이같은 흐름이 반복되며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WBC같은 단기전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대호-강민호-이종욱 등 일부 부진했던 혹은 평균치는 했지만 이름 값에 비하면 모자란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은 아쉽기만 하다. 평소 좋은 기량을 검증 받았기에 국가대표로 뽑혔지만 컨디션 난조로 인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 이는 일부 몰지각한 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가슴에 태극기를 단 이상 못하고 싶어서 못한 선수는 없다. 선수로서의 자존심은 물론 국가대표로서의 사명감도 있는지라 누구나 할 것 없이 중요한 경기에서 주인공으로 떠오르고싶은 마음은 갖고 있는 것이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당시에는 KIA 타이거즈의 마무리투수 한기주가 많은 마음고생을 했다. 국내에서 150㎞ 중반을 넘나들던 불같은 강속구를 뿌리며 타자들을 압도하던 모습과 달리 외국의 국가대표들을 상대로는 최악의 모습을 보인 것이 그 이유로, 비록 결과적으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조롱에 시달리며 수모 아닌 수모를 겪어야만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기주가 그랬다면 이번 WBC에서는 손민한이 팬들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기주가 엄청난 부진으로 질책을 받았다면 손민한은 아예 경기에 나서지 않은 것이 야유 여론의 단초가 되고있는 상황. 부상과 그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등판이 쉽지 않았던 것이 그 원인이었는데 이유야 어쨌든 일부 악플러들은 온갖 인격모독성 발언까지 내뱉으며 손민한이라는 선수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들은 남다른 마음을 가지고 경기에 임한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무려 5번의 한일전이 있었던지라 그 의미는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경기에 자주 뛰는 선수들은 플레이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실천하면 된다. 하지만 자주 뛰지 못하거나 부진한 선수들은 덕아웃에서의 응원을 통해 기를 불어넣어 주거나 경기장 밖에서 연습을 도와주고 궂은일을 대신해주는 등 다른 통로를 통해 보탬이 되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손민한 같은 경우는 투수진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팀내 주장까지 맡고있었다.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 벤치를 지킬 수밖에 없었기에 그 자신부터가 힘들고 답답했을 것임이 자명하다.

이대호와 김광현은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이번 WBC에서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번 대회에서는 이번의 김태균-윤석민같은 역할을 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한기주 역시 현재까지는 국가대표로 다시 선발조차 되지 못하는 등 불명예에 시달리고 있지만 워낙 자질이 뛰어난 선수이니만큼 언제고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다.

야구는 특정 선수 몇 명으로 이길 수 없는 스포츠다. 전면에서 활약하고있는 선수가 있다면 음지에서 묵묵히 팀 플레이를 하며 받쳐주는 조력자들의 역할 역시 무시하면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 당장의 활약에 선수들 하나하나를 쪼개서 비교하기보다는, 힘을 합쳐 WBC 준우승을 함께 일궈낸 대표팀 모두를 함께 축하해주는 것이 진정한 야구팬의 자세일 것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손민한 윤석민 이용규 김태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