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영화 포스터

<슬럼독 밀리어네어> 영화 포스터 ⓒ www.slumdog.co.kr

2009년 아카데미 영화제 8개 부문에서 수상한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상영되고 있다. 만일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지 못했다면 영화가 수입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대한민국 관객에게 인도 출신 배우들로 채워지고, 인도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얼마나 설득력 있겠는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줄거리와 구조가 단순한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아카데미에서 기염을 토했다는 사실도 의외지만, 만만치 않은 흥행수입 또한 다소 뜻밖이다. '빈민가의 개'를 의미하는 '슬럼독'과 '백만장자'를 뜻하는 '밀리어네어'가 결합하여 탄생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우리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두 단어의 묘한 결합에서 이미 얼마간 흥미를 느끼게 된다.

퀴즈란 무엇인가

언제부턴가 우리 곁에 함께 하기 시작한 오락 프로그램 하나가 퀴즈게임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살핀다면 퀴즈게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맞히는 놀이'다. 질문은 대개 깊은 지식이나 독서 혹은 풍부한 인생경험과 무관한 가볍고 평이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물론 다양한 경험과 상식을 가진 사람이 좋은 결과에 도달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우리가 단답형 유형의 퀴즈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우선, 짧은 시간 안에 승자와 패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월드컵이나 올림픽 운동경기에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는 것과 같다. 인생이란 장구한 세월에 비긴다면 몇 십분 내지 몇 시간 안에 승패가 확연하게 갈리는 퀴즈나 운동경기는 그야말로 짜릿한 긴장감과 쾌감을 선사한다.

두 번째, 내가 가진 크고 작은 지식과 상식을 프로그램 참가자의 그것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텔레비전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 따라서 공개적으로 지식의 길고 짧음을 재는 경우에 흥미는 배가된다. 출연자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더러 보여줄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주위 사람들의 칭찬과 찬미는 삶의 커다란 활력소 노릇을 하기도 한다.

세 번째, 퀴즈게임에 걸린 상금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도 드러났지만, 그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만한 거액이 걸린 두뇌게임이다. 영화에 나오는 퀴즈 프로그램 제목도 '누가 백만장자가 되기를 바라는가?(Who Wants To Be A Millionaire?)'이다. 평생 벌어도 만질 수 없는 거액을 한판 퀴즈로 움켜잡는 것이다.

인생 대역전은 가능한가

'로또' 복권 파는 가게에서 고객이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글귀는 '인생역전'이다. 그것은 단 한 번의 행운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생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몇 차례에 걸쳐 당첨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글귀는 더욱 자극적으로 변한다. '기막힌 인생 대역전'이다. 빈민가 가난뱅이나 무일푼 노숙자가 창졸간에 거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대단히 낮다. 만일 고등수학에서 '확률과 기대치'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로또'에 절대 돈을 걸지 않는다. 그것은 돈을 잃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퀴즈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내가 아는 지식의 범위 안에서 문제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한순간에 전혀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또의 불로소득이나 퀴즈의 불로소득은 이른바 '오십보백보' 차이밖에 없다. 오랜 시간 공들여 노동하고, 그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받는 임금과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로또에는 '몫'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운(명)' 이나 '제비(뽑기)' 같은 의미가 공존한다. 우연한 계기로 거액의 퀴즈상금을 챙기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우리는 주인공 자말이 경험하는 희귀한 상황에서 이런 맥락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제목에 밝혀져 있는 것처럼 슬럼가를 배회하는 사회 최하층 출신자가 백만장자 대열에 들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다. 거기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그것으로 하층인생의 대역전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성장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퀴즈게임에서 거액을 벌어들이는 신동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웠으리라.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퀴즈게임에서 거액을 벌어들이는 신동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웠으리라. ⓒ www.slumdog.co.kr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퀴즈게임에서 거액을 벌어들이는 신동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는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웠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거의 매일 대면하는 퀴즈 프로그램을 굳이 영화로까지 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영화에 부설된 두 가지 간선을 따라가게 된다. 긴장된 퀴즈 풀기와 자말의 성장 이야기가 나란히 공존한다. 

봄베이 혹은 뭄바이로 불리는 인도 최대의 도시 빈민가 출신 소년 자말과 형 살림. 아버지 없는 결손가정에서 자라나야 했던 소년들은 아주 어린 나이에 너무도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 빈곤이 불러오는 참혹함, 종교적인 갈등이 야기하는 살육, 도회지에 범람하는 인신매매, 그리고 운명처럼 찾아오는 첫사랑. 이런 대목이 자말의 어린 시절을 메운다.

영화는 서너 살배기 소년 자말이 어떤 경로를 거쳐 18세 청년으로 성장해갔는지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준다. 연대기적인 이야기와 퀴즈문제가 교차하면서 갈등과 긴장을 높여간다. 양자는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엇갈리면서 영화의 견고한 성분으로 작용한다. 어느 하나가 취약하거나, 어느 한쪽으로 강세가 주어지면 팽팽한 균형과 조화는 깨지고 만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은 물론 각색상까지 거머쥐게 된 연유가 여기 있다. 완벽에 가까운 평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양자의 긴장관계를 끝까지 놓치지 않은 사이몬 뷰포이(각본)의 공력이 엿보인다. 강렬한 추격 장면이나, 자극적인 정사장면 하나 없는 영화가 커다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슬럼독 밀리어네어>.   

인도의 얼굴

인도의 얼굴은 무척 다채롭다. 세계 제2위의 인구 대국이자, 일곱 번째로 국토면적이 넓고 200년 가까이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은 나라. 세계 4대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의 후예로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의 결과 그리스적인 요소와 결합하여 헬레니즘 문화를 잉태하였던 우수한 문화강국.

힌두교와 불교의 발상지이되, 무슬림이 인구의 10%를 점하는 다종교국가. 사회 양극화가 무한대로 진행되고 있는 정보통신 분야의 신흥강국.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인도가 발리우드(봄베이 + 할리우드)로 표현되는 세계 제3위의 영화대국이란 점이다. 그만큼 영화는 오늘날 인도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문화산업이자 생활의 일부분인 셈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그것은 자말과 살림, 그리고 라티카의 성장이야기에서 현저하게 드러난다. 인도의 11억 인구 가운데 1억 7천만을 헤아리는 빈민계층의 일상생활이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다. 거기서 나고 자란 어린것들이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 세상과 만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슬럼독 밀리어네어>다.

인도의 얼굴은 퀴즈 문제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인도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크리켓 문제, 미화 100달러 지폐에 그려져 있는 인물의 이름, <삼총사>에서 아토스와 포르토스 이외의 세 번째 총사. 크리켓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영국의 식민유산, 오늘날 인도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 프랑스 대중문화가 위력을 발하는 나라.   

영화가 남긴 몇 가지

 <뉴욕타임스>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인도 출신 아역 배우 모하메드 아자루딘의 고향 뭄바이 주민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시청하며 환호하는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인도 출신 아역 배우 모하메드 아자루딘의 고향 뭄바이 주민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시청하며 환호하는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 Newyork Times


영화는 관객에게 수수께끼 비슷한 몇 가지를 선사한다. 우선 퀴즈 프로그램 사회자 프렘이 자말을 어떤 인간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자말은 천애고아이자 무일푼이며, 무슬림이다. 불학무식한 청년 자말이 2천만 루피(한화 약 5억 3천만 원) 상금을 놓고 벌이는 숨막히는 게임을 지켜보는 프렘의 흉중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 '미네르바'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 대한민국 사회가 문제 삼은 것은 그의 학벌이었다. 조중동 같은 수구언론이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은 짧은 가방끈의 미네르바가 보여준 신통방통한 적중률이었다. 한국사회에 내재한 학벌 만능주의가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는 빈민 출신의 무슬림으로 외양만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이 걸린다.

종교간 분쟁이 인도와 세계의 뇌관이란 사실에 새삼 전율하게 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발칸의 인종청소, '다르푸르' 사태에서 불거진 종교로 인한 살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절정에 달한 것 같은 '제노사이드'는 여태껏 종점을 찾지 못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위험성을 우리는 작년에 경험했다.

인도든, 한국이든, 아메리카든 세계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자말은 아마 행복하게 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선택받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너와 내가, 너의 나라와 내 나라가, 그리하여 인류공동체가 서로 화합하고 평화롭게 공존공영하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그것은 정녕 가능할 것인가.

발리우드 종교 양극화 퀴즈 성장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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