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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 - KOICA와 함께한 730일

- 글사진 : 강제욱, 이명재, 이화진, 박임자

- 펴낸곳 : PHOTONET (2008.12.29.)

- 책값 : 12900원

 

 

 (1) 자원봉사란?

 

 'KOICA'라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이라는 사진이야기책을 보면서 이런 모임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알파벳으로만 적으니, 이곳이 한국에 있는 모임인지 나라밖에 있는 모임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을 죽 읽다 보면, 끄트머리에 이 모임을 찬찬히 알려주는 사진과 글이 실리는데, 'KOICA'란 '한국국제협력단'을 줄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무상원조를 시행하는 정부출연기관으로서 해외봉사단 파견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원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바야흐로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났다는 뜻에서 이와 같은 모임이 꾸려졌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나라안에는 아직 찢어지게 못사는 사람이 많은 한편, 터지게 잘사는 사람 또한 많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나라안이 되든 나라밖이 되든 '넘치는 자원'과 '넘실대는 사람'을 나누어야 하기도 합니다. 일 나누기가 되든 자원봉사가 되든 공동체가 되든,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어찌 사는가를 들여다보면서, 내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보기도 해야 합니다.

 

.. 내 기억 속의 파라과이는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거나 원시의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서울처럼 삭막한 도시의 풍경과도 거리가 먼, 믿기지 않을 만큼 맑고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던 곳이었다. 안데스 지역의 고산 지대도 아니고 그렇게 매력적인 하늘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파란 하늘을 보며서 때레레를 마시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그곳이 망고나무 그늘 밑이라면 더욱! 파라과이는 어느 도시이건 그 안에 자연이 살아 있다 ..  (14쪽 / 강제욱)

 

 생각해 보니, 저도 꽤 자주 자원봉사를 합니다. 언제나 자원봉사라는 이름은 안 걸치지만, 몸을 바쳐서 일을 거들거나 함께하고 있으니 자원봉사가 맞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도움을 바라는 분이나 저 스스로나 서로가 자원봉사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로 돈을 챙겨 주는 이가 없으나, 딱히 돈을 받을 마음 또한 없습니다. 한 동네에 살기에 거드는 일이 아니라, 함께 그 자리에 있어 좋기에 일을 거들게 됩니다.

 

 동네 밥집 김치 담그기를 거드는 일은 알게 모르게 자원봉사입니다. 동네 밥집 할머니가 반찬을 한두 가지 더 챙겨 주는 일도 이래저래 자원봉사입니다. 성당에서 세례받는 분들 사진을 슬쩍 찍어 주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성당 다니는 이웃사람들이 술이나 밥을 가끔 사주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헌책방 사진을 찍어 선물로 드리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헌책방 아저씨가 때때로 500원이나 1000원을 에누리해 주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구멍가게 할배한테 빈병을 모아 드리는 일도 자원봉사입니다. 구멍가게 할매가 우리 옆지기 신으라고 떠 준 덧양말 한 켤레도 자원봉사입니다. 늘 자원봉사에 둘러싸인 삶입니다.

 

.. 가끔씩 아이들은 나를 '독재자'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서 '수업하지 말아요', 'TV 봐요', '숙제 좀 적게 내 주세요' 등등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거의 들어주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녀석들과 좀더 친밀하게 지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학생들의 생일에는 독재자인 나도 악동 제자들과 어울렸다 … KOICA 봉사단원으로 파견되어 한국어를 가르치면서도 처음에는 참 힘들었다. 학생들이 뭘 원하는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시간 안배도 안 되는 데다 머리속의 내용은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아이들의 질문에 "다음 시간에 알려 줄게요" 하는 날도 많았다. 집에 돌아오면 '아차!' 잘못 가르친 것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래도 처음 가르쳤던 아이들과, 고심하며 준비했던 수업 내용 자료 등은 여전히 내게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  (96∼97, 140쪽/이명재)

 

 아기를 돌보는 일도 자원봉사였을까요? 아픈 옆지기를 돌보며 집살림을 도맡아 꾸리는 일도 자원봉사였을까요? 제 몸을 아끼고 싶어서 손빨래를 하고 손걸레로 집안을 훔치는 일도 자원봉사였을까요?

 

 국어사전에 나온 뜻풀이를 보자면, "어떤 일을 대가 없이 스스로 하는 일"이 자원봉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집에서 집식구를 보듬는 일도 자원봉사라면 자원봉사가 아니랴 싶습니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니까요. 아무 갚음을 꿈꾸지 않는 나눔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사랑과 나눔 그대로 내 동무한테 똑같이 하고, 내 이웃하고 똑같이 어깨동무를 하니까요. 옆지기 부모님 댁에 가서 설거지를 해도 자원봉사이고, 중학생이 된 처남한테 책을 선물해 주거나 쓸돈 몇 푼 넌지시 책에 끼워 주어도 자원봉사가 아니랴 싶습니다. 길을 가다가 자전거가 고장나 옴쭉달싹 못하는 사람을 보고는 자전거를 손질해 주거나 구멍난 바퀴를 때워 주는 일도 자원봉사이리라 믿습니다. 길에서 동냥하는 분한테 천 원이나 이천 원 내밀어 주고, 길장사를 하는 분들 물건을 때때로 사는 일도 자원봉사가 되리라 믿습니다.

 

 나한테 돌아오는 사랑과 옆지기한테 돌아가는 사랑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아기한테 나누어지는 사랑과 동무네 아기한테 옮아가는 사랑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한 흐름이요, 한 동아리요, 한 모둠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풀포기와 나무 한 그루 모두 사랑합니다. 부모님을 믿는다면 파란하늘도 믿고 푸른 들판도 믿고 누렇게 익는 나락논도 믿습니다. 책이면 똑같은 책이지 헌책과 새책이 없듯, 사람이면 똑같은 사람이지 요 사람 조 사람 나눌 금이란 없습니다. 나라안 사람이든 나라밖 사람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우리 말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이주노동자를 만나든 살결 하얀 서양사람을 만나든, 저는 늘 똑같이 웃으며 한국말로 묻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움을 주든 받든 합니다.

 

.. 현지에 혼자 뚝 떨어진 내게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서툴기만 한 언어나 과중한 업무, 외로움과 향수병이 아니었다. 다름아닌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느냐 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외로움이 전혀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너무 외로웠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라도 먹고 살아남아야 하는 문제 앞에서 외로움은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물론 내가 살게 될 집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곳의 직원들과 준비한 식료품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식료품을 보고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구입한 것은 쌀과 설탕 한 포대, 식용유 한 통 정도였다. 아침에 밥숟가락으로 설탕을 집어넣은 차를 마시고, 밥을 할 때 식용유를 부어 고소하게 만드는 그들의 음식 문화를 알게 되었을 때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도저히 그렇게 먹고살 수 없었다 ..  (159∼160쪽/이화진)

 

 무슨 시설에 가야만 자원봉사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어느 모임에 들어가 머나먼 어느 땅을 밟고 내 힘을 나누어야 자원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도에 가야만 데레사 수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티벳에 가야만 달라이 라마를 만나겠습니까.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목소리를 꼭 들어야 깨달음을 얻겠습니까. 백담사에서 백팔 번 절을 해야 몰록깨침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큰 아파트에 살아야 두 다리를 쭉 뻗겠으며, 우리가 빠른 차를 타야 서울에서 부산까지 즐겁게 달릴 수 있겠으며, 우리 주머니에 맞돈 백만 원쯤 들어 있어야 술 한잔 신나게 마실 수 있겠습니까. 두어 평 방 한 칸으로도 넉넉하고, 두 다리로 걸어도 즐거우며, 만 원짜리 한 장으로도 신납니다.

 

 

 (2) 무얼 말하거나 보여주겠다고 하는 젊은 넋이지?

 

 '자원봉사를 하는 기쁨'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는 《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을 읽어냅니다. 책을 처음 받아쥘 때부터 읽기를 마치고 덮을 때까지 속이 무척 답답합니다. 틀림없이 이 책에 사진과 글을 담은 젊은 네 넋은 나라밖에서 아름다움과 기쁨과 보람을 듬뿍 받아안았을 텐데, 그 아름다움이 무엇이고 기쁨이 어떠하며 보람이 어떻게 당신들 마음에 새겨졌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까마득합니다.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진인지 또렷하지 않습니다. 관광사진이나 홍보사진은 아닐 텐데, 또 풍경사진이나 예술사진도 아닐 텐데, 그리고 인물사진이나 다큐사진도 아닐 텐데, 무엇을 하자면서, 아니 우리한테 무엇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찍은 사진이고 보여주는 사진인지 딱히 느낌이 잡히지 않습니다. 살갗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살갗에 겉스치고 바스라지니 가슴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제 가슴 어느 한켠이라도 뭉클뭉클 건드려 주면 고마울 텐데,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뭐야? 벌써 끝이야? 할 말이 이게 다야?' 하는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겠습니다. 책을 쥐어든 제가 외려 뻘쭘해지고 맙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해? 그냥 이렇게 놀다가 한국으로 돌아갈까!" 나는 결국 답답해서 짜증을 부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내가 조금 진정되자 말림은 차분하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화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마. 네가 지금 잊고 있는 게 하나 있어. 너는 2년 후 다시 너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잖아. 무엇을 많이 주고 간 화진으로 기억되는 것도 좋지만, 난 말이야, 좋은 친구 화진으로 남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가는 나라에는 그들만의 시스템이 있다는 걸 잊곤 한다. 어떤 때는 그러한 시스템이 말도 안 되고 답답해 보이지만 그것은 그 지역만의 자연환경과 역사, 사회적 환경, 국민성 등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잣대로 판단하고 그곳의 시스템은 낙후되었으니 무조건 바꾸고 새롭게 만들려다 뜻대로 안 되면 결국 현지인과 다투고 제 분을 못 이겨 힘들어하게 된다 ..  (177∼179쪽/이화진)

 

 나라밖으로 자원봉사를 나갔던 젊은 넋들이 '실패를 했다'는 이야기도 아니요, '뜻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어떤 자원봉사를 했는지'도 찬찬히 나오지 않는 가운데, '얼마 동안 지내고 무엇을 가르치거나 거들었으며', '어떤 지역사람과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를 엿볼 수 없습니다. 파라과이든 우크라이나든 탄자니아든 중국이든, 사진이나 글에서 이와 같은 나라를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종잡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코이카 해외협력단 보고서'라도 되느냐 하면, 이 또한 아닙니다. '코이카 해외협력단 홍보글'이라도 되느냐 하면, 이마저 아닙니다.

 

.. 사실, '사진찍기'는 우크라이나와 의사소통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오해를 사진으로 풀기도 하고, 우크라이나 내면의 깊은 이야기들을 사진을 통해 듣기도 했다 ..  (142쪽/이명재)

 

 300쪽이 조금 못 되는 책을 읽는 내내, 딱 한 군데에서 '사진찍기'로 무엇을 하려 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의사소통을 했다고는 나와도 어떻게 무엇을 의사소통했는지 스스로 털어놓지 못합니다. 작은(?) 책 하나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낼 수 없었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담아낼 이야기를 먼저 펼쳐 보인 다음, 살을 하나하나 붙여야 앞뒤가 알맞지 않느냐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직 많이 젊은 나머지 세상구경도 덜 했고 자원봉사도 덜 했기에 속깊거나 마음넓게 헤아린 이야기를 못 보여준다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얕거나 좁다면 섣불리 사진과 글을 우리 앞에 내보이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니냐 생각해 봅니다.

 

 무르익지 않은 가운데 구태여 사진과 글을 우리 앞에 내보이려 했다면, 사진으로든 글로든 무언가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 생각합니다. '나, 어느 나라에 자원봉사 다녀왔어요!' 이 한 마디를 하려고 300쪽에 이르는 '총천연색 사진이야기책'에 사진과 글을 싣지는 않았을 테지요? 우리 나라가 이제 개발도상국에서 아주 훌훌 털고 일어나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음을 뽐내고자 이러한 책을 내놓으려 하지는 않았을 테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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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 나눔, 길 위의 시간 - KOICA와 함께한 730일

강제욱 외 지음, 포토넷(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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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진책, #자원봉사, #KOICA, #책읽기, #해외협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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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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