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WBC 일본전 승리투수가 된 봉중근

지난 9일 WBC 일본전 승리투수가 된 봉중근 ⓒ WBC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예선라운드를 끝내고 '살아남은 자'들만이 모여 본격적인 우승 경쟁을 시작한다.

스타 선수들의 잇따른 불참 선언, 더욱 복잡해진 규정 탓에 걱정도 많았지만, 이번에도 WBC는 국가대항전 야구만의 매력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명승부와 이변을 쏟아내며 야구팬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뒷말을 남기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WBC에서만 볼 수 있는 투수들의 투구수 제한이다. 어깨가 생명이나 다름없는 투수를 보호해주려는 마음은 알고 있지만 어딘가 개운치 못한 것은 틀림없다. 

투구수 제한 규정이 주는 색다른 재미

WBC에서는 예선전이 열리는 동안 투수는 한 경기에서 70개 이상의 공을 던질 수 없으며 50개 이상을 던진 투수는 나흘, 30~49개의  공을 던진 투수는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해야만 다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 본선으로 올라갈수록 던질 수 있는 공은 늘어난다.

투수들로서는 WBC만의 독특한 투구수 제한 규정을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 혹사를 방지할 수 있어 싱싱한 어깨를 지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에게도 얻는 것이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한 명의 투수가 혼자 4승을 거두었다는 전설 대신에 더 많고 다양한 스타일의 투수가 등장함에 따라 승부의 '경우의 수'를 늘렸으며, 우리나라의 정현욱이 그랬듯 숨은 보석을 재발결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줬다.

투수들은 최소의 투구로 최고의 성고를 올리는 경제적 사고를 위해서, 감독들은 적절한 투수 교체 타이밍을 위해서 더욱 머리를 써야 하며 누가 얼마나 좋은 투수를 갖고 있느냐를 넘어 누가 얼마나 좋은 투수를 '많이' 갖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투수들 간의 실력 편차가 큰 약팀들은 불리한 규정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그들이 '믿을 놈은 너밖에 없다'며 에이스 투수에게만 막노동을 강요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특히 중고교 시절 학교의 명예와 감독의 명령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운드에서 어깨를 불사른 뒤 일찍 망가져버릴지도 모르는 한국의 유망주들에게는 너무도 부러운 규정일 것이다.

70개 넘기면 사이렌이라도 울리나?

이처럼 수많은 장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몇몇 야구팬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은 투구수 제한 규정이 야구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구수 제한에 쫓긴 투수들이 타자를 맞춰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이 주는 긴장감과 삼진 아웃의 짜릿함은 훨씬 줄어들 것이고, 완봉승 혹은 완투승의 영웅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WBC가 투구수 제한 규정을 내걸었을 때 일본야구의 전설 오 사다하루가 "말도 안 된다"며 일갈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수천만 달러의 몸값을 자랑하는 귀한 투수들을 이끄는 미국대표팀의 데이비 존슨 감독 역시 "17일 동안 많아야 8경기(결승까지 오를 경우)를 치르는데 너무 많은 제한을 받는다"며 "제한 규정들 역시 케이블 회선이나 연말 세금정산처럼 복잡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더 나아가 <뉴욕타임스>는 '혹시 투수가 던진 공이 70개가 넘게 되면 야구장에 사이렌이 울리는 것 아니냐'고 비꼬기까지 했다.

물론 어느 쪽의 말만 옳다고 할 수 없다. 투구수 제한 역시 불가피하게 나온 규정이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며, 그렇다고 해서 야구의 특성을 무시했다는 지적을 피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WBC가 투수들의 어깨를 보호해주면서, 야구가 가진 매력을 하나도 남김없이 꺼내 보여줄 수 있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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