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중근은 6일 경기에서 14점을 뽑아낸 일본의 강타선을 5.1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틀어 막았다.

봉중근은 6일 경기에서 14점을 뽑아낸 일본의 강타선을 5.1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틀어 막았다. ⓒ WBC 홈페이지

 

기분 좋은 1승이었다. 그것도 1-0 완봉승이었다. 투수전의 백미를 보여준 9일 경기로 한국 대표팀은 콜드패의 수모 못지않은 충격을 일본에게 돌려줬다. 무엇보다 14실점으로 체면을 구긴 한국팀의 마운드가 명예회복에 성공한 점이 다행이다. 이날 승리로 A조 1위로 미국으로 가게 됐고 추가 상금 30만달러도 챙겼다. 선수들과 야구팬들이 기쁨을 만끽할 때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질문 하나를 던져야겠다. 당신이 만약 본선 2라운드에서 한국과 일본을 만나게 될 B조(쿠바·멕시코·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 1~2위 결정전에 진출한 팀의 감독이라면 1위를 하고 싶겠는가, 아니면 2위를 하고 싶겠는가.

 

참고로 B조의 순위 결정전은 13일에 열리고 여기서 이긴 팀이 A조 2위인 일본과, 진 팀이 A조 1위인 한국과 본선 2라운드 첫 경기를 치른다. B조는 본선 2라운드에서 첫 경기 상대를 고를 수가 있다는 말이다.

 

더블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치러지는 대회에서 첫 경기 승리는 매우 중요하다. 첫 경기에서 이기면 최소 2경기를 보장받고 여기서 1승만 더 거두면 4강에 진출하게 되지만 첫 경기에서 지게 되면 무조건 2연승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차가운 머리는 2위를 해서 일본을 피하고 한국과 상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뜨거운 마음은 차마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참 어렵다. 하지만 내가 그 팀들의 감독이라면 순위 결정전에서 지기 위해 애쓸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이 한국보다 상대하기에 더 '껄끄러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B조 1~2위 결정전에 진출한 감독이라면?

 

한국 야구, 충격의 콜드게임 패 7일 오후 도쿄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아시아예선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7회 2-14 충격의 콜드게임 패를 당한 뒤 대표선수들이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 한국 야구, 충격의 콜드게임 패 7일 오후 도쿄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아시아예선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7회 2-14 충격의 콜드게임 패를 당한 뒤 대표선수들이 덕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명곤

이번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 1라운드에서 한국과 일본은 사이좋게 1승씩을 나눠가졌다. 1승 1패, 겉보기로는 무승부다. 하지만 투수진이 내준 점수를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본 마운드는 이번 예선에서 단 3점만을 허용했다. 중국전은 무실점이었고 한국을 상대로 한 두 경기에서 3점을 내줬다. 한국과의 첫 번째 경기에서는 선발 마쓰자카에 이어 와타나베와 스기우치가 던졌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선발 이와쿠마에 이어 스기우치-다르빗슈-후지카와-마하라-야마구치가 이어 던졌다. 이 중 마쓰자카가 2점, 이와쿠마가 1점을 내준 게 전부였다.

 

마쓰자카에게 투런 홈런을 쳐내고 이와쿠마에게 1타점 적시타를 때려낸 김태균을 제외하고 한국 타선은 일본의 막강한 투수진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데 실패했다. 그만큼 일본은 엔트리에 포함된 투수 중 그 누가 나오더라도 기복 없는 피칭을 했다. 이것이 두터운 선수층을 가진 일본의 힘이다.

 

반면 한국은 애초부터 이기는 경기와 지는 경기를 구분해서 대응해야 했다. 일본처럼 선수층이 두껍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지난 7일의 콜드패를 '대참사'라 부르며 입이 쩍 벌어질 과장법을 구사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날의 콜드패는 당했다기보다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선발 투수가 무너진 상황에서 에이스급 투수들을 동원해 추가 실점을 줄이기보다는 투수들을 최대한 아끼면서 지는 경기 운영을 했다는 말이다. 지는 경기에 나오는 투수들의 구위가 생각보다 떨어졌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등판했던 정현욱을 아낀 김인식 감독

 

 믿었던 김광현이 무너지며 한국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일본전에서 1.1이닝 8실점으로 무너진 김광현. 2라운드에서 그의 부활은 필수다. ⓒ 유성호

1차전 경기를 되짚어 보자. 김인식 감독은 선발 김광현이 1.1이닝 동안 8실점으로 무너지자 정현욱을 투입했다.
 
아무리 국내에서 '정노예'로 불리며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등판했던 정현욱이지만 2회에 마운드에 오른 경험은 많지 않았을 터. 그래도 정현욱은 달아오른 일본 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그의 공엔 힘이 넘쳤다. 그제서야 마운드의 힘대결이 팽팽해지는가 싶었는데 김인식 감독은 정현욱을 아웃카운트 4개만 잡게 하고는 마운드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장원삼과 이재우를 뒤이어 마운드에 올렸다. 하지만 일본 타선은 다시 달아올랐고 결과는 매회 실점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정현욱이 마운드에 있었던 때가 유일하게 실점이 없었던 회였다. 김인식 감독이 유일하게 일본 타자들을 농락하던 정현욱을 뺀 것은 이날 경기에서는 지겠다는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

 

김인식 감독이 경기가 끝난 후 "콜드패도 1패일 뿐"이라고 당당했던 것도 의도했던 패배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껴두었던 정현욱은 두 번째 일본전에서 승리의 디딤돌을 놨다.

 

콜드패를 지켜보는 야구팬들은 분통이 터졌지만 더블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치러지는 경기에서 지는 경기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나온 1-0 완봉승은 김인식 감독의 포기할 줄 아는 마운드 운용 덕분이었다.

 

모든 경기에 봉중근-정현욱-류현진-임창용과 같은 능력치를 갖춘 투수들을 투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현재로선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래서 투구 수 제한까지 있는 이번 대회에서 선택과 집중, 이는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한국과 같은 팀들에겐 필수다.

 

투구 수 제한 있는 WBC, 한국에게 선택과 집중은 필수

 

사실 WBC는 일본과 같이 투수층이 두꺼운 팀에게 유리한 대회다. 투구 수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투구 수 제한이 없는 대회에서는 아무리 약팀이라 하더라도 단기전의 특성상 특급 투수 1~2명을 앞세워 강팀을 꺾는 이변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

 

하지만 선수보호 차원에서 도입된 WBC의 투구 수 제한은 그런 이변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때문에 엔트리에 든 투수가 고른 기량을 갖춘 있는 팀에게는 오히려 투구 수 제한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지난 2006년 WBC에서 한국이 4강까지 간 것은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등 구위와 경험을 갖춘 메이저리거들이 포진한 마운드 덕분이었다. 상대적으로 두터운 선수층을 구축할 수 있었기에 김인식 감독은 투구 수 조절을 통한 효과적인 마운드 운용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앞둔 김 감독은 "지난 대회보다 투구 수 등 규정은 더 까다로워졌는데 마운드는 더 약화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B조에 속한 팀들이 일본을 꺼리고 한국과 경기하기를 원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들로서는 한국을 초반에 무너뜨리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한국으로선 경기를 포기하는 마운드 운용을 할 수밖에 없어 의외로 손쉬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본선 2라운드, 쉬어갈 팀이 없다

 

2라운드에서 맞붙게 될 팀 중에서는 중국처럼 쉬어갈 수 있는 팀이 없다. 그래서 풍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하는 김인식 감독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감독의 수고를 덜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다. 그것은 1라운드에서 부진했거나 출전하지 않은 투수들의 분발이다.

 

특히 한국전 승리가 더 쉬울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있을 B조 팀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본선 2라운드까지 남은 일주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 닦고 잘 조이고 잘 기름치자.

2009.03.10 13:39 ⓒ 2009 OhmyNews
WBC 김인식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