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시네마

▲ 서울아트시네마 ⓒ 이도훈


요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스라이 잊고 지내던 일이 떠오른다.

잊고 싶었던 옛 이야기. 어린 시절 집을 짓고 산다는 건 우리 가족의 원대한 꿈이었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괭이질을 하신 자리에 기초를 닦았고, 아버지가 땀 흘려 모으신 돈으로 산 나무와 벽돌을 두 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르고 쌓아 지은 집이 있었다. 그렇게 삼대의 손길을 거친 삶의 보금자리에서 우리는 8년을 살았다.

그러나 그 집은 이제 우리 것이 아니다. IMF의 한파도 겪어내며 지켜낸 집이었건만, 아버지는 동업을 하던 죽마고우에게 사기를 당했다. 돈에 눈이 먼 친구에게 철저히 배신 당하신 아버지는 결국 8년을 지켜온 집을 빼앗기셨다. 모든 게 풍비박산 났다. 7년을 애지중지 기르던 진돗개마저 키울 곳이 없어서 새 주인에게 떠넘겼다. 그 후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때는 참 막막했다.

헌데 나는 그 어느때 보다 더 막막하다.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에 관한 지원정책을 '공모전'으로 바꾸겠다고 통보한 사실을 접하고 나서다. 내 20대를 책임지고 있는 나의 안식처, 나의 그림 같은 집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비록 지난 25일 영진위가 한 발 물러나 '올해는 공모제 전환을 철회한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지만, 불이 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시기만 미뤄졌을 뿐.

모든 시네필들의 고향, 서울아트시네마

올해 내가 들은 이야기 중 가장 황당했던 사건은 추기경의 사망 소식도, 화재가 난 망루에서 숨진 철거민들의 사건도, 흉포한 살인마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고귀한 생명이 사라진 순간과 비교해서는 안 되지만 내게는 서울아트시네마가 그만큼 중요하다. 내 20대의 청승과 아양을 넉넉히 받아준, 오늘날 내 삶의 절반을 이곳에 의탁하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은, 모든 시네필들에게 그러하듯 나의 또 다른 고향이다.

영진위는 서울아트시네마에 돌이킬 수 없는 풍화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공모전을 시행할 경우, 서울아트시네마는 서서히 마모되어 결국 재가 되어 날릴지도 모르며 훗날 한국영화사 속에서 '옛날 옛적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었다'는 식으로 신화처럼 기록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게 서글프다. 명백하게 현존하는 영화인의 성지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90년대 한국영화의 정신적 버팀목이었으며, 21세기 한국영화인의 토양이 될 곳이다. 그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다니. 그걸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내가 서울아트시네마의 입장과 일부 관객 및 영화인들의 분노에 동의하는 건, 아트시네마의 주인이 명백히 영진위가 아니라, 서울아트시네마라는 데에 있다.

우리가 믿었던 '영진위'는 어디에?

서울아트시네마

▲ 서울아트시네마 ⓒ 이도훈


근 10년간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켜오면서 동시에 이곳을 시네필의 성지로 정착시킨 영화인들의 몫이며, 덩달아 나처럼 발품을 팔아가며 이곳에서 영화를 보아온 관객의 몫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영진위의 무차별적인 통보를 보고 있으면 그들이 마치 주권자인양, 통치자인양 행세하는 꼴을 보이고 있다.

느닷없는 '공모제' 전환 통보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존폐와 직결되는 심각한 사안이다. 영진위의 논리에는 첫 삽을 뜬 사람과 주추를 올리고 대들보를 올린 집주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을 명목으로 불도저로 밀어버리려는 업자들의 행태와 유사하다. 집주인들의 사정은 조금도 들어볼 아량이 없이 막무가내다. 더 놀라운 건, 그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영진위'라는 사실이다.

영화문화 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에서 영화인들의 생명권과 존립을 두고서 '공모전'이라는 논리로 서울아트시네마 지원을 시장자율에 맡기겠다는 작태는 내 상식으로는 이해불가다. 우리가 알던 영진위는 어디로 갔나? 영진위도 소위 말하는 실용주의를 따를 모양인가보다. 그리고 도덕적 판단이나 윤리적 관용을 앞서 생각하기 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관료주의의 상명하복 질서를 따를 모양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그건 아우슈비츠에서나 가능하던 일 아닌가? 최고통치자의 이념과 정책에 충실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은 사라진다. 돌이킬 수 없다. 후회해도 늦다. 모든 역사서는 문화가 말살되고 억압되는 시기를 폭압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제발, 그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한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은 사라진다

나는 서울아트시네마가 좋다. 이곳은 오늘날 우리 영화의 과거이자 현재며 다가올 미래이다. 영화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 아무 영화나 보고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곳이며, 영화를 조금 본 친구들이  좀 더 열성적으로 영화문화에 빠져드는 곳이며, 영화전문가들이 넓은 혜안을 가지고 새롭게 영화를 해석하는 곳이다.

실로 이곳은 영화 문화의 실직적인 보고(寶庫)이자 영화인을 위한 보배(寶貝)다. 그러니 서울아트시네마는 경제적인 논리로 추방을 명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이곳의 주인은 모든 영화인이기 때문이다.

서울아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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