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후 어깨와 팔굼치에 얼음 찜질을 하고 있는 최향남 선수.

연습 후 어깨와 팔굼치에 얼음 찜질을 하고 있는 최향남 선수. ⓒ 이승훈

"아~~"

어깨와 팔꿈치에 얼음을 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늘게 열린 입에선 옅은 신음 소리도 났다. 공을 던지느라 달아오른 근육에 하는 얼음 찜질이 그저 시원할 줄만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그건 투수라면 감내해야 할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늦깎이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최향남. 지난 20일 바람이 심하고 쌀쌀한 날씨 탓에 오후 훈련이 취소됐지만 그는 실내 연습장에서 기어코 투구 수 400개를 모두 채웠다.

롯데 자이언츠 2군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경남 김해의 상동구장에서 그는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이자 가장 늦게까지 훈련하는 선수다. 인터뷰가 끝나고도 그는 집이 아니라 웨이트트레이닝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이처럼 채찍질하는 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겠다는 꿈이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 그는 배수의 진을 쳤다. 지난해 시즌이 끝나자마자 휴식 대신 도미니카행 비행기를 탔던 것도 이런 간절함 때문이었다. 

간절함을 품고 떠났던 도미니카행

도미니카 윈터리그는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된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선수들 또한 실력이 출중한데다 열정도 뜨거웠다. 테스트에 합격해 팀에 들어갔다고 해서 출전 기회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리 돈 3000원짜리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매 경기 불펜에서 경기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경기가 6회에 접어들 무렵 등판 준비를 위해 몸을 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순간 현기증이 났다. 다리는 힘이 풀려 말을 듣지 않았다. 태어나서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덜컥 겁부터 났다. 순간 TV에서 봤던 다우너 소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내가 싸구려 음식을 먹다 광우병에 걸렸나 보구나.'

절망할 새도 없이 구급차에 실려 도착한 병원에서는 다행히(?) 식중독이라고 했다. 3일간 입원해 있으면서 솔직히 그는 후회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게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곧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면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해요. 힘들다고 가던 길을 멈추면 내가 원하던 인생을 살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악물고 버티기 위해 그는 바퀴벌레가 득시글대는 주방에서 만들어지는 싸구려 도시락 대신 7배나 비싼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많은 경기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8이닝 2실점이라는 비교적 좋은 성적으로 리그를 마쳤다.

국내에서 평범했던(?) 최향남... 마음은 메이저리그에

사실 최향남은 적어도 국내 리그에서는 최고가 아니다. 10승을 넘은 것은 단 한 번 뿐이고 해태-LG-기아-롯데를 거치며 기록한 통산 성적도 52승 65패에 평균자책점은 4.04다. 그런데도 최향남이 메이저리그를 꿈꾼 것은 10년 전부터였다.

침대에 누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누가 뭐래도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1997년 8승 3패에 평균자책점 2.99, 1998년 12승 12패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했던 LG 트윈스 시절이었다. 만나면 엉덩이를 걷어차거나 전지훈련 가서는 따로 방으로 불러 맥주 한 캔을 나눠주던 게 유일한 애정표현이었던 당시 김응룡 감독의 해태를 떠난 후 마음도 편했다.

"그땐 정말 무모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어요. 타자들을 상대할 때 전혀 두렵지 않았죠. 항상 마음먹은 대로 힘껏 공을 던졌습니다. 그런 공을 던졌을 때는 맞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김용수에 이어 LG의 에이스 자리를 넘보던 최향남은 그때만 해도 금기로 여겨졌던 머리 염색으로 감독 눈밖에 난데다 결국 부상이 겹쳐 2003년 방출됐다. 팀에서 쓸모없는 선수라는 낙인이 기분 좋을 리 없었지만 그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셈 쳤다. 그리고 그 '자유'를 메이저리그 도전의 기회로 바꿨다.

하지만 그를 주목하는 미국 구단은 없었다. 2년간 고향팀 기아에서 와신상담하며 공 끝을 가다듬었다. 구단과 팬들은 그가 고향팀에 정착해 활약해 주기를 바랐지만 그는 2006년 다시 클리브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저도 내 나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저도 한 팀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대접받는 선수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프로 선수에게 안정이라는 건 없어요. 국내에서 인정받는데 굳이 미국까지 왜 가느냐고 하는 것은 내가 살아온 길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죠. 국내에서 인정받은 것도 메이저리그라는 목표를 두고 노력한 덕분입니다. 국내에 눌러 앉으려고 했다면 지금의 최향남도 없었을 겁니다."

최고의 한 해였던 2006년... 얻은 건 자신감

역동적인 투구폼의 최향남 역동적인 투구폼의 최향남

ⓒ 롯데 자이언츠

갈아타야 할 비행기를 놓칠까 초긴장 상태로 찾아간 그곳에서 그는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트리플A 버팔로 바이슨스에서 시즌 8승 5패 평균자책점 2.37을 기록했고 탈삼진은 103개로 팀내 최다였다.

그는 팀내 최고 수훈 선수 중 한 명으로 뽑혔다. 메이저리그가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클리브랜드에서는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땐 정말 몇 경기만 더 나가면 평균자책점을 1점대로 낮출 수 있을 것 같았아요. 그만큼 나가면 안 맞을 자신이 있었죠. 8월 마이너리그 시즌이 끝난 게 아쉬울 정도였죠. 그리고 그만큼 했으니 기대를 많이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나를 마이너리그용 취급하는 것 같아 화도 많이 났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얻은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원하던 '강한 공'을 찾았고 예전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느껴졌던 메이저리그 선수들과도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목표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메이저리그 수준에 가까운 타자들과 정면 승부를 해도 이젠 내 공이 통했거든요. 당장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던지고 싶었던 '강한 공'도 찾았어요. 빠른 볼이 아니라 타자가 못 치는 공이 '강한 공'이죠. 좋은 밸런스에서 타자의 허를 찌르는 공 말이에요."

마음 같아선 바로 메이저리그의 다른 팀을 알아보고 싶었지만 트리플A의 버팔로 바이슨스와 계약한 기간이 무려 6년이었다. 족쇄를 풀고 다시 자유를 찾기 위해서는 미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언제든 자유롭게 놓아주겠다고 약속한 롯데에서 2년간의 담금질. 롯데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이별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다시 떠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느낌이 좋다. 그를 불러준 팀은 '노장들의 천국' 세인트루이스다. 게다가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초청받았다. 에이전트가 머물 집도 마련해 주고 통역도 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좋은 여건에서 미국 생활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최향남은 솔직히 유혹도 느낀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이번엔 정말 마지막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뭐라도 먹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약 먹고 150km 정도 던지면 코치와 감독이 내 공에 '뿅~' 갈 텐데. (웃음) 근데 그렇게 해서 1년 잘하면 뭐하나요. 결국 사기인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름답게 남는 건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거잖아요."

최향남의 '보헤미안 랩소디'...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

고등학교 시절엔 팔이 아파 1년을 무작정 쉬었다. 대학 진학 때는 선생님이 체육특기생 원서가 아닌 일반 원서를 써준 바람에 동국대 입학이 허무하게 날아가버리기도 했다. 프로에는 '구타가 없을 테니 오히려 잘됐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해태에 입단했지만 웬걸 프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수 생명에 지장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군대도 현역병으로 마쳤고, '불펜 선동렬'이라고 불리던 해태에서는 결국 '불펜'이란 두 글자를 떼지 못하고 LG로 트레이드 됐다. LG 시절 머리 염색 파문은 짧았던 전성기보다 오랜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메이저리그 도전기로 매번 겨울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궈왔다.

최향남이 지금까지 야구로 쓴 서사시의 대략적인 얼개다. 진정한 자유인 최향남의 '보헤미안 랩소디'의 결말은 어떤 모습일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모르긴 몰라도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리그 캠프에 가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믿기지 않을 만큼 기뻐요. 가서 빨간앵무새(세인트 루이스의 마스코트)의 기적이 일어나도록 정말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선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냐고요? 앞으로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못할 일이 없겠구나 그런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최종 목표는 50~60대가 됐을 때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울을 볼 때 악해 보일 때도 있고 선해 보일 때도 있거든요. 교회 다니는 친구들과 약속도 했어요. 우리가 50~60대가 돼서 거울을 볼 때 선한 표정이 나타나게끔 살아보자고. 그런 얼굴은 자기의 꿈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향남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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