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포수는 왜 마스크 등 갖은 도구를 착용해야 하는지, 같은 편인데 왜 혼자 마주 보며 경기 하는지, 포수에 대해 원초적 궁금증을 가진 여고생 이시호(가명,대일외고 3학년)양은 지난해 여름 야구라는 스포츠를 처음 만났습니다.

국제대회에 출전한 대표팀 경기를 접하면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깊숙이 숨겨두었던 애국심이 발동해 승리를 기원하고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일희일비 하며 패배에는 아쉬움의 탄식을, 승리할 경우에는 환호와 함께 가슴속 어딘가에서 뭉클함이 솟는데 이시호양이 그랬습니다.

베이징에서 날아온 야구대표팀의 연이은 승전보, 규칙도 제대로 모르는 야구에 흠뻑 매료되었죠. 덕분에 무더운 여름, 자신에겐 힘겨운 상대 수학문제집과 벌인 사투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필생의 라이벌 일본과의 경기에 두 차례 등판, 대표팀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영건 김광현의 팬이 됩니다. 날씬하고 잘 생긴데다 역동적인 투구폼을 가진 그가 일본 타선을 얼음처럼 만들어 버리기까지 하니 사랑받을 조건은 충분히 갖춘 셈이죠.

그렇게 야구가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여기저기서 "저 야구팬이에요." 라며 손을 번쩍번쩍 듭니다. 이시호양도 그 중 한 명이며 이제 김광현이라는 선수를 매개로 야구와 가까워지고 야구의 디테일한 매력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합니다.

김광현을 비롯한 많은 투수들을 탐구(?)했고 구종까지 마스터 하는 등 투수 부분에 대해선 나름대로 지식을 쌓았다고 믿으며 교수에서 야구기자로 인생의 목표를 궤도 수정하기까지….지금은 투수와 뗄 수 없는 관계인 포수가 어떤 포지션인지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메이저의 토시야를 보고 나서..."

포수에 대한 호기심의 발단이 한국야구를 비하하는 일본 만화 메이저의 사토 토시야라는 포수를 본 뒤라고 하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시게노 고로나 사토 토시야 등 일본 만화의 주인공들이 어느새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정서에 꽤 깊이 개입한 것 같습니다.

우리 만화의 멋진 주연들인 오혜성과 백두산, 배도협은 어디에...
                                                                                                       

자, 그럼 온갖 장비로 중무장을 하고 경기에 임하는 포수가 어떤 포지션이고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야전사령관이라 불리는 그들

포수를 흔히 '야전 사령관' 또는 '안방마님'이라 부릅니다. 안방마님은 농경사회에서 한 집안 경제의 근간이 되는 곳간 열쇠를 꿰 차고 살림 전반을 책임지며, 야전에서 사령관의 임무 및 역할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중책임합니다. 투수 뿐 아니라 다른 야수들도 리드해야 하는 등 경기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 포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들입니다.

동네야구에서 덩치만 크고 발도 느린, 야구를 잘 못하는 사람을 포수라는 자리에 우격다짐으로 앉히곤 하는데 이는 포수가 지녀야 할 많은 요소들을 완전히 무시한 발상입니다.

우선 포수는 아홉 개 포지션 가운데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고달픈 위치입니다. 경기 내내 투구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장시간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하고 줄곧 앉았다 일어서는 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때문에 치핵(치질)이라는 달갑지 않은 병이 포수의 직업병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포수가 그라운드에 녹여내야 하는 것들, 마땅히 갖춰야 할 것 들이 워낙 많은 까닭에 하나하나 차근차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자신이 리드해야 할 투수의 특성(장·단점)을 파악한다
투수의 주무기가 무엇인지, 컨디션은 좋은지, 제구는 어떻고 어떤 구종을 많이 던지도록 요구할지 등을 불펜피칭이나 경기 초반 완벽히 파악해야 리드가 수월해지고 경기를 풀어 가기 쉬운 것은 당연한 것.

② 상대하는 타자를 알아야 한다
상대하는 팀 타선은 물론, 개개인의 성향과 장·단점을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초구를 유난히 좋아하는 타자에게 평범한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으려들면 낭패를 볼 수 있고 편향된 타구가 많은 타자라면 수비 시프트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브레이킹볼을 노리는 타자에게 패스트볼을 선물할 줄 아는 센스는 좋은 포수로 가는 필요조건입니다.

③ 주자 견제에 능해야 한다
주자는 다음 베이스를 점유하겠다는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타자와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주자를 묶어두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도 가지고 있어야 주자가 함부로 포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습니다.(물론 투수의 1차적 견제도 중요합니다) 강한 어깨가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더 베이스에 붙어 있도록 다양한 견제 방법(투수·야수와의 호흡이나 사인 등)에 능통해야 합니다.

④ 상대 작전을 읽어라
위기에서 상대가 어떤 작전을 구사할지 예측한다면 투수를 리드하고 경기를 의도대로 이끄는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상대는 작전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하고 포수는 그것을 캐치하려는 치열한 두뇌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덕아웃에 들어가 기분 좋게 이온음료를 마실 수 있습니다.

⑤ 완벽한 블로킹
홈플레이트를 차지하려는 주자와 사수하려는 포수의 물리적 충돌은 빈번합니다. 담대한 정신으로 이겨내야 하고 투수의 바운드성(의도하지 않은 것도 많죠) 투구는 때로 타자를 유혹하는 긴요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누상에 주자가 있다면 완벽한 블로킹으로 막아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⑥ 강한 어깨
강한 어깨는 그것을 꼭 사용하지 않더라도 주자에겐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포수의 어깨가 강하다는 것이 주자의 발놀림을 소극적으로 변하게 합니다.

⑦ 강한 체력은 필수
포수의 체력소모가 크다는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 한 경기를 뛰고 나면 몸은 천근만근, 거기에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고 감독이나 코치로부터 한 소리 듣기라도 한다면 그땐 정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합니다. 강한 체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은 포수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⑧ 투수 마음을 편하게 하라
투수는 예민합니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마음먹은 투구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지나친 푸트워크는 투수를 심란하게 할 수도 있고 자신만 편안 하려는 볼 배합은 투수를 성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마음까지 읽는 포수라면 투수는 승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 할 것입니다. "포수의 리드가 워낙 좋았습니다."

⑨ 송구동작은 간결하게
도루 허용이라는 책임을 포수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사실 옳지 않습니다. 투수가 주자에게 스타트를 빼앗기면 제 아무리 강견이라도 주자를 잡아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미트에서 공을 빼내는 동작도 빨라야 하고 송구동작은 군더더기가 없어야 합니다.

⑩ 파이팅 하라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허슬플레이는 투수를 비롯한 팀원들의 사기진작에 엄청난 플러스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파이팅 한다면 분위기도 자연스레 다잡을 수 있습니다.(파이팅이 적절한 용어는 아니지만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에서 '잘 하자'는 의미로 통용 됩니다)

 국내 최정상급 포수로 평가 받는 박경완

국내 최정상급 포수로 평가 받는 박경완 ⓒ SK 와이번스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 포수에게 요구되는 것들을 살펴보았는데 '머리에 쥐가 난다'는 말, 괜한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투수의 1구 1구, 볼 배합과 코스에 따라 야수를 움직이고 벤치의 싸인도 체크해야 하며 주심의 성향 파악과 더불어 주심을 현혹하기 위한 현란한 미트질도 필요합니다.

이렇듯 기술, 체력, 정신적으로 포수는 다른 야수에 비해 미안할 만큼 노동의 강도가 커 있지도 않은 연차나 월차를 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때문에 야구를 시작하는 어린이들의 기피 1호 포지션이 바로 포수입니다.

좌완 강속구 투수는 지옥까지 쫓아가서라도 데려오라는 야구계 격언이 있는데 포수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좋은 포수는 하데스의 손아귀에 있더라도 빼앗아 와야 하는 것입니다.

스파이크를 들이대며 육탄 돌격하는 주자를 블로킹 해야 하는 포수, 유격수와 더불어 수비만 잘 해줘도 고마운 포수가 얼마나 힘든 위치인지를 안다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포수에게 '국민 볼배합'이라는 아픈 별명을 아무렇지 않게 붙여주지는 못할겁니다.

'세상은 남자가 지배하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야구를 '투수 놀음'이라고 하죠, 투수를 이끌고 조종하는 이가 과연 누구일까요?

포수 야전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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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특히 야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으며 어려서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기사를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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