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평가전이었지만 결국 '골' 숫자로 결과를 말해야 하는 축구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은 결코 실속을 차리지 못했다. 우리의 득점 기록도 실상 상대 수비수의 자책골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더욱 찜찜할 뿐이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고 있는 우리 남자축구대표팀은 우리 시각으로 1일 늦은 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시리아 국가대표와의 평가전에서 1-1(전반 0-0)로 아쉽게 비겼다.

 

어디가 위험 지역인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1-0으로 앞선 상태에서 경기가 그대로 끝나는 듯 보였다. 정규리그를 끝낸 뒤 대표 선수들을 꾸렸기 때문에 경기력을 100%에 가깝게 끌어올리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은 알지만 그래도 추가 시간에 내준 동점골은 너무나 뼈아픈 것이었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미드필더가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게 해줬다. 전반전에 상대팀에게 어떻게 끌려다녔는가 하는 점을 제대로 분석하고 후반전에 임했는가를 되짚어봐야 할 일이다.

 

지금은 일본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로 옮긴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장외룡 전 감독이 즐겨 쓰던 3-4-3에 가까운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우리 대표팀은 날개 공격수로 뛴 염기훈과 이근호까지 포함하여 항상 대여섯 명의 미드필더를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랬는데도 전반전에는 미드필더 와엘 아얀이 이끌고 있는 시리아에게 밀렸다.

 

전반전, 우리 선수들이 기록한 유효 슛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최효진이 골문을 넘긴 허무한 슛이 유일한 기록이었을 뿐이다. 문지기 이운재가 걱정스러울만큼 그렇게 강력한 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리아의 슛 기록은 다섯 개(유효 슛 2개)나 되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에 멀리 서아시아로 날아갔기 때문에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니라고 해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전반전 결과였다. 상대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도 오르지 못한 시리아였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그들은 지난 달 14일부터 시작한 2011 아시안컵(개최국 카타르) 예선 D그룹에서 중국을 3-2로 물리치고 2연승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단적으로 우리 선수들과 몸 상태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선수들이 시리아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에게 내준 슛 지점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포메이션이나 미드필더들의 움직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의 지점은 바로 벌칙구역 반원 밖이었다.

 

그 중에서도 반원이 그려진 바로 그 주위가 정말로 취약한 지점이었다. 이운재의 가슴에 안긴 두 개의 유효 슛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골문을 벗어났던 나머지 슛도 바로 거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후반전에는 이런 현상이 아예 없어진 듯 보였고 또 우리 선수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공격적으로 지배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 놓이기는 했지만 결국 추가 시간에 알라셰드에게 오른발 동점골을 내준 지점도 바로 거기였다.

 

이는 주로 그 지역을 맡았던 수비형 미드필더(김정우↔한태유) 한 선수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경기 시작 18분만에 거친 볼 터치 때문에 다쳐서 실려 나간 기성용의 빈 자리와도 연관이 있는 일이겠지만 '김치우-하대성'을 포함한 미드필더들과 가운데 수비수(조용형, 강민수)와의 유기적 움직임과 역할 분담 측면에서 찾아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4일 밤에 이어지는 바레인대표팀과의 2차 평가전에서 이 문제점이 개선되었는지를 지켜볼 일이다.

 

후반전, 달라진 것 몇 가지

 

 MF 하대성

MF 하대성 ⓒ 대구 FC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하대성(전북)이라는 가운데 미드필더의 알토란 같은 활약은 기분 좋은 발견이었다. 이미 골잡이 겸 날개공격수 이근호와 함께 대구 FC의 신바람 축구로 많은 K-리그 팬들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준 것이었다.

 

대구 팬들의 아쉬움을 남겨두고 이번 시즌부터 강희대제 곁으로 가게 된 하대성은 뜻밖의 부상으로 실려 나간 기성용 대신 들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기 시작했다. 그의 참모습은 후반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오른쪽에서 김치우가 단짝 역할을 잘 해줬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사실 전반전까지만 해도 '김치우-기성용-김정우-최효진'으로 짜맞춘 허리가 중간에서 어그러지자 역습 기회가 생겨도 그 속도 높이기를 효율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후반전 양 측면에 김동진과 김창수가 들어오면서 양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여기에 하대성이 빠른 공격 템포에 완전히 적응하면서 매우 박진감 넘치는 공격 흐름이 형성되었다.

 

측면 띄워주기의 정확성도 전반전에 비해서 좋아지면서 공격의 위력은 배가되었다. 그냥 포물선을 그리기만 하던 전반전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진 것이었다. 48분, 바꿔 들어온 김창수가 오른쪽 측면을 헤집고 끝줄 바로 앞에서 띄워준 것이 그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그렇게 모래 언덕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공격적 지배의 양상은 우리 쪽으로 완전히 넘어왔다. 1분 뒤에는 오른쪽 측면으로 자리를 옮긴 김치우가 밀어준 공을 역시 바꿔 들어온 골잡이 정조국이 짜릿하게 돌려차 크로스바를 부러뜨릴 듯 흔들어놓았다. 또, 1분 간격으로 가운데 미드필더 하대성이 오른쪽 45도 각도로 빠져 있는 김치우에게 완벽한 슛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후반전 초반 약 3분 동안 우리의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적 흐름은 하대성의 발끝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비록 골은 나오지 않았지만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는 72분에도 또 한 번 오른쪽 측면의 김치우에게 수준 높은 찔러주기 실력을 자랑했고, 73분에는 직접 왼발 유효 슛을 바꿔 들어온 상대 문지기 알 아자르 가슴에 안겨주었다.

 

81분에 상대 자책골로 나온 득점 상황도 하대성-김치우의 단짝 호흡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다. 이번에는 그 역할을 바꿔 김치우가 가운데 쪽에서 공을 찔러줬고 정조국이 열어준 공간으로 하대성이 달려들어갔다. 수비 입장에서 이 위험한 찔러주기를 막기 위해 섣불리 발을 내밀었고 잘못 맞은 공은 그대로 빈 골문에 굴러들어갔다.

 

하대성은 88분에도 정조국이 오른쪽에서 밀어준 공을 잡아 또 한 차례 결정적 슛 기회를 잡았지만 시리아 문지기 알 아자르의 순발력에 막히고 말았다. 공격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조율하는 역할만으로도 가운데 미드필더의 수준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하대성이 아주 잘 보여준 한판이었다.

 

측면 띄워주기와 찔러주기의 정확성, 역습의 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가운데 미드필더의 대응 자세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경기 후반전의 가치는 충분했다. 또한, 유능한 미드필더 한 명이 생각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도 배웠다.

덧붙이는 글 | ※ 남자축구대표팀 평가전 결과, 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알 막툼 스타디움)

★ 한국 1-1 시리아 [득점 : 아이투니(81분, 자책) / 알라셰드(90+1분)]

◎ 한국 선수들
FW : 염기훈, 정성훈(46분↔정조국), 이근호(76분↔김치곤)
MF : 김치우, 기성용(19분↔하대성), 김정우(61분↔한태유), 최효진(46분↔김창수)
DF : 이정수(46분↔김동진), 조용형, 강민수
GK : 이운재

2009.02.02 08:16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 남자축구대표팀 평가전 결과, 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알 막툼 스타디움)

★ 한국 1-1 시리아 [득점 : 아이투니(81분, 자책) / 알라셰드(90+1분)]

◎ 한국 선수들
FW : 염기훈, 정성훈(46분↔정조국), 이근호(76분↔김치곤)
MF : 김치우, 기성용(19분↔하대성), 김정우(61분↔한태유), 최효진(46분↔김창수)
DF : 이정수(46분↔김동진), 조용형, 강민수
GK : 이운재
하대성 기성용 김치우 김창수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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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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