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달(오른쪽)이 베르다스코에게 다가가 포옹하는 장면이 실린 호주오픈테니스대회 공식 누리집(australianopen.com) 첫 화면.

나달(오른쪽)이 베르다스코에게 다가가 포옹하는 장면이 실린 호주오픈테니스대회 공식 누리집(australianopen.com) 첫 화면. ⓒ Tennis Australia

 

롤랑 가로스의 붉은 흙바닥에서 그랬던 것처럼 라파엘 나달은 코트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네트를 넘어 베르다스코에게 다가가 가슴을 나누었다. 같은 에스파냐 태생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 둘은 다섯 시간이 넘도록 서로의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계남자프로테니스(ATP) 단식 랭킹 1위 라파엘 나달(스페인)은 우리 시각으로 30일 저녁 호주 멜버른 파크에 있는 로드 레이버 어리나에서 벌어진 2009 호주오픈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준결승전 두 번째 경기에서 페르난도 베르다스코(ATP 15위)를 다섯 시간이 넘어가는 명승부 끝에 3-2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 황제 페더러와 만나게 되었다.

 

첫 세트의 행운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빈 것은 욕심이었을까?

 

'사랑'의 힘이 이토록 큰 것일까? 지금까지 공식 경기에서 라파엘 나달을 여섯 번 만나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그였다. 특히, 페르난도 베르다스코는 최근 나달과의 맞대결(2008 롤랑 가로스 16강)에서 단 세 게임만 따냈을 정도로 맥을 못 추었는데 오늘은 너무나 달랐다. 현재 1인자 라파엘 나달이 이렇게 고생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세르비아의 실력자 아나 이바노비치와의 열애 기사가 세계 테니스 팬들의 가슴을 때린 뒤 그는 승승장구했다. 더구나 이번 대회에서는 그 동안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두 강적들(라덱 스테파넥, 앤디 머레이)을 차례로 물리치고 준결승에 올라온 것이었다.

 

현재 세계 1인자 앞에서도 그의 이러한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첫 세트 게임 스코어 6-6 상태에서 만난 외나무 다리 타이 브레이크 상황에서는 오히려 베르다스코에게 행운까지 찾아왔다. 포핸드 스트로크가 네트 위를 맞고 아슬아슬하게 넘어가 라인에 걸친 것. 라켓을 똑바로 세워 건너편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나달에게 미안하다는 표시를 해야 할 정도로 크나큰 행운이었다. 그렇게 베르다스코의 포효는 멜버른의 늦은 밤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라파엘 나달은 세 번째 세트에서 맞은 또 한 번의 타이 브레이크 기회에서 첫 세트에서 당한 설움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베르다스코의 두 손 백핸드가 오른쪽 옆줄을 벗어났고 이어진 나달의 멋진 포핸드 역크로스가 코트를 갈랐다. 7-2로 마무리지은 것은 절묘하게 뻗어나간 서브 에이스였다. 타이 브레이크 '장군 멍군'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네 번째 세트, 라파엘 나달에게 찬사를!

 

이토록 공 한 개, 한 개에 긴장감이 넘치는 경기는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네 번째 세트에는 그 긴장감을 잠깐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미소들이 코트와 관중석에 넘쳤다. 3-4로 뒤지고 있던 라파엘 나달은 베르다스코의 날카로운 스트로크를 놀라운 순발력을 자랑하며 하나하나 제대로 받아넘기고 있었다. 결국, 나달의 포핸드 크로스가 베르다스코의 왼쪽을 빠져나갔다. 이 때 주고받은 둘의 미소는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웠다. 일어나 박수를 치는 관중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멜버른 시각으로 금요일 저녁에 시작한 이 경기는 이미 토요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이 넘어야 할 세트는 하나가 더 남았다. 거기까지 달려온 그들의 땀방울이 허무하게도 어이없는 서브 실수(더블 폴트)에서 승부가 갈렸다.

 

다섯 번째 세트 열 번째 게임, 게임 스코어 4-5 상태에서 베르다스코가 공을 쥐고 서브를 넣었지만 뜻대로 공이 떨어지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순간, 서브 실수가 나오는 바람에 0:40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리고 말았다. 세 개의 매치 포인트 기회가 라파엘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첫 세트 타이 브레이크에서 베르다스코에게 찾아갔던 행운은 상대적으로 너무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베르다스코는 이에 포기하지 않고 과감한 스트로크를 뿌리며 매치 포인트라는 글씨를 두 번이나 지워나갔다. 하지만 또 한 번 서브가 네트에 걸리고 말았다. 314분의 긴 랠리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정말 몰랐다. 베르다스코의 허탈한 표정이 이 순간을 너무 잘 말해주고 있었다. 멜버른 시계가 토요일 새벽 1시 9분을 가리킬 때, 메이저 대회에서 처음으로 밟아본 베르다스코의 준결승 무대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아무리 하루 이상 쉴 여유가 있다고 하지만 오는 일요일 저녁 황제 로저 페더러(ATP 2위)를 상대해야 하는 라파엘 나달은 다리가 휘청거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베르다스코를 상대했다.

 

이제 나달과 페더러는 2009년 2월의 첫 날 저녁, 열 다섯 번째 결승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공식 경기에서 모두 열 여덟 번 맞붙은 기억이 있지만 호주 오픈 결승전은 처음이다. 너무나 특별한 인연이 기다려진다. 돌아온 황제의 네 번째 입맞춤일까? 아니면 라파엘 나달이 멜버른의 밤하늘에 처음으로 왼 팔뚝을 치켜올릴 것인가?

덧붙이는 글 | ※ 2009 호주오픈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준결승 결과, 30일 멜버른 파크 / 이름 옆 ( )안 숫자는 시드

★ 라파엘 나달(1) 3-2[6-7{4TB7}/6-4/7-6{7TB2}/6-7{1TB7}/6-4] 페르난도 베르다스코(14)

◎ 결승전 일정
1월 31일(토) 여자 단식 : 서리나 윌리엄스(2) - 디나라 사피나(3)
2월 1일(일) 남자 단식 : 라파엘 나달(1) - 로저 페더러(2)

2009.01.31 10:02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 2009 호주오픈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준결승 결과, 30일 멜버른 파크 / 이름 옆 ( )안 숫자는 시드

★ 라파엘 나달(1) 3-2[6-7{4TB7}/6-4/7-6{7TB2}/6-7{1TB7}/6-4] 페르난도 베르다스코(14)

◎ 결승전 일정
1월 31일(토) 여자 단식 : 서리나 윌리엄스(2) - 디나라 사피나(3)
2월 1일(일) 남자 단식 : 라파엘 나달(1) - 로저 페더러(2)
라파엘 나달 베르다스코 호주오픈 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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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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