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우리는 흔히 꽃다운 나이라고 한다. 해가 바뀌어 열일곱이 된 둘째딸을 보면 정말 꽃 같다. 아기 같던 얼굴에서 어엿한 처녀 티가 나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몸에서는 쉬지 않고 에너지가 넘쳐 나오는 것 같다. '얼굴이 피는구나!'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온전히 실감하고 있는데, 이것은 꼭 내 딸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 것이다.

영화 <동백 아가씨> 포스터 영화 <동백 아가씨> 포스터

▲ 영화 <동백 아가씨> 포스터 영화 <동백 아가씨> 포스터 ⓒ 다큐희망

할머니는 열일곱, 바로 그 꽃다운 나이에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네 살 때 한센병에 걸린 어머니와 아버지를 따라 소록도에 들어갔지만 막상 자신의 병을 알게 되었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열 세살에 부모를 잃고 어린 동생 거두며 먹고 살기에 바빴던 열일곱 처녀는 한센병 소식에 얼마나 막막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점점 병이 진행되면서 양손의 손가락들도, 두 다리도 모두 절단해야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바다에 나가 꼬막을 캐고,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쑥을 캐고, 마늘을 까고...그렇게 한센병 환자로 60년을 살아오셨다.

춤과 노래에 소질이 있고, 음식 솜씨가 좋았던 할머니, 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를 잘 부르시는 할머니, 볼의 살마저 빠지고 힘없이 늘어지면서 고왔던 얼굴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할머니, 속상해서 젊은 시절 사진을 다 찢어버렸다는 할머니...할머니는 그렇게 77년 인생을 지나오셨다.                                   

나이 마흔에 만난 남편, 관리자들 눈을 속이며 낳아 1년을 기른 아들, 결국 그 아들을 큰집으로 보내야 했던 할머니는 풀을 뜯으며 한 나절 내내 울부짖었다고 했다. 그 아들을 잘 기르려고 부부는 끝없이 노동을 했고, 호적을 여러 번 옮기고 두 번의 사망신고를 하는 우여곡절 끝에 아들은 이제 어엿한 가정을 꾸렸다.

방안에 걸린 사진에는 그래도 아들이 있고, 탁자 위에는 아들이 어버이날 보낸 가슴에 다는 카네이션 조화가 놓여 있어 병들고 아픈 몸으로도 한 가정을 이루어냈음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는 아들을 낳아 기른 일로 '인간 사회의  보람'을 느끼신다고 했다.

2005년 일본에서 '한센인 보상 청구 소송'이 진행되면서 할머니는 일본 법정에 나가 증언도 하고, 시위 대열의 맨 앞에 앉으신다. 무릎 아래가 절단되었기에 타이어로 무릎보호대를 만들어 딛고 다니는 할머니, 법정이나 시위에 나서실 때는 씩씩하게 의족을 끼우신다. 그것도 손가락 없는 손으로.

한센인은 세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단다. 병에 걸려서 한 번 죽고, 감금실(소록도에서 관리자의 말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가두어 두던 곳, 보통 이곳에 갇혔다 나올 때는 자식을 낳지 못하도록 하는 단종수술을 강제로 시켰다고 한다.)에서 또 한 번 죽고, 마지막으로 화장장에서 죽는다고 한다.     

일제시대의 한센인 강제 격리와 강제 노동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소록도에도 많았다는데, 할머니는 그 모진 세월 살아내셨다. 그 살아냄 자체가 위대함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죽는 것만 못한 인생이라 여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까, 그래도 할머니는 살아내셨다. 여기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며 어떤 설명이 붙겠는가.

영화 <동백 아가씨>의 주인공 '이행심' 할머니 새벽 5시면 일어나 기도하시는 '이행심' 할머니

▲ 영화 <동백 아가씨>의 주인공 '이행심' 할머니 새벽 5시면 일어나 기도하시는 '이행심' 할머니 ⓒ 다큐희망


새벽 5시면 일어나 '고이즈미의 마음을 흔들어 주셔서 한센인 보상 소송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셨던가. 2006년 할머니를 포함해 모두 62명에게 보상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살아서 천대받고 무시당하고 존재 자체를 외면당하던 한센인들은 죽음 또한 그럴 수 없이 쓸쓸하게 '처리'되고 있었다. 화장해 유골을 수습해 나무함에 넣어 수습하는 과정은 사람의 한 평생이 이렇게 마무리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무미건조하며 삭막하다.

한센인들을 위한 보상 청구 소송에 나선 일본 변호인단 대표들이 소록도를 찾아와 어르신들께 반갑게 인사하며 끌어안고 손을 잡을 때, 텅 빈 영화관 객석 한가운데에 홀로 앉아 영화를 보던 나는 끝내 울고 말았다.

알지도 못하는 세상, 보려고 해본 적도 없는 세상, 나와는 아무 상관 없다고 여겨온 세상, 책 한 권 혹은 몇 줄의 신문기사로만 만나본 세상, 이제 비로소 영화 속 '이행심' 할머니를 통해 마주보게 된 세상이 너무 아프고 미안해 울었다.

77년을 병에 시달리며 차별에 치이며 살아온 할머니의 그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과 수굿함이, 악에 받친 그 어떤 큰 목소리나 사나움보다 강해 자리에서 쉽게 일어설 수 없었다.

역시 삶은 그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 그 힘은 눈에 보이는 강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밟히고 밟혀 일어설 것 같지 않은 연한 풀이 다시 살아나는 힘 같은 것. 동백 아가씨 '이행심' 할머니는 오늘 그렇게 나를 깨우쳐 주셨다. 정말 한 번도 큰소리 치지 않으시면서 말이다.

내레이션을 맡은 박정숙 감독 역시 목소리 한 번 높이는 일 없이 아름다운 소록도의 풍광과 할머니의 삶을 풀어놓고 있었고,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덧붙이는 글 영화 <동백 아가씨 Lady Camellia, 한국 2006>(감독 박정숙 / 출연 이행심)
동백 아가씨 다큐멘터리 한센병 이행심 박정숙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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