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동국의 2008 시즌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동국의 현 소속팀 성남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플레이오프에서 하위시드팀에게 무너지며 2년 연속 무관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동국은 정작 가장 중요한 6강 PO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으로 그라운드에 서보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관중석을 떠나야했다.

 

이동국은 올 7월 여름, 상처만 남겼던 지난 1년 반동안의 프리미어리그 생활을 정리하고 K리그로 귀환했다. 비록 미들즈브러에서 '골 못 넣는 공격수'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며 방출되었으나 타 유럽리그나 J리그 진출설이 거론되던 이동국이었기에 갑작스러운 K리그 귀환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비슷한 시기에 역시 K리그로 복귀한 또다른 해외파 스타 이천수(수원)와 더불어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였던 이동국의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고개숙인 라이언킹의 '현재 그리고 미래'

 

 미들즈브러 시절의 이동국

미들즈브러 시절의 이동국 ⓒ 미들즈브러

그러나 이동국은 K리그로 복귀하며 친정팀 포항이 아닌, 성남의 유니폼을 선택해 또한번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천수 역시 친정팀 울산 대신 수원의 유니폼을 선택했다.

 

직업 프로선수로서 직장 선택이야 본인의 자유라지만, 프로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팀의 역사를 함께 해왔고 해외진출을 할 때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친정팀을 마다하고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경쟁팀에 입단한 것은,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그들을 기억하고 있던 홈팬들을 섭섭하게 했다.

 

일부 축구팬들은 해외에서 초라하게 돌아온 선수가 국내 무대에서 스타 대접을 받으며 복귀한 것을 빗대어 'K리그가 실패한 해외파 선수들의 봉인가' '이동국이나 이천수에게 투자할 돈으로 유망주를 키우는게 낫다'라며 비판했다.

 

성남으로서도 이동국의 영입은 사실상 실수에 가까웠다. 모따·두두·최성국·김동현·조동건·아르체 등 넘쳐나는 공격자원에 비해 수비진의 노쇠화로 어려움을 겪던 성남에 이동국은 전술 구성상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고, 우승을 노리는 팀 사정상 즉시전력감으로 평가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전성기 시절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특급 골게터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의 위용은 간 데없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돌아온 이동국은 오히려 특징없는 평범한 선수로 전락해 있었다. 눈에 띄게 떨어진 경기감각과 체력은 자신감 위축으로 나타났고, 성남 스타일의 4·3·3 전술에서 두두·모따와 손발이 맞지않아서 위력이 반감되는 양상을 드러냈다.

 

시즌 후반 13경기에 나선 이동국은 2골 2도움에 그쳤다. 그 중 한 골은 동료들의 도움으로 얻은 PK골이었다. 공교롭게도 팀은 이동국을 영입한 7월 이후 오히려 팀 전력이 하강곡선을 그리며 결국 서울·수원과의 정규리그 1위 경쟁에서 밀려 3위로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팀의 부진이 이동국의 잘못만은 아니었지만,  팀이 필요할 때 이동국이 기대치에 걸맞은 활약을 못해준 것도 사실이다.

 

김학범 감독은 이동국에게만큼은 충분한 기회를 줬다. 작년 수원 시절의 안정환이 초반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차범근 감독은 과감하게 영건들을 중용하고 안정환을 벤치로 내렸다. 그러나 김학범 감독은 '편애'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계속되는 부진에도 이동국을 꾸준히 선발로 믿고 기용했다.

 

한번 신뢰를 보여준 선수는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김학범 감독의 '뚝심'과 한국축구 간판 스트라이커에 대한 '배려'도 반영된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 김학범 감독의 목표는 이동국의 경기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올해의 승부처인 플레이오프에서 히든 카드로 써먹기 위함이었다. 지난해부터 단기전에서 번번이 골결정력 부재로 곤욕을 치렀던 성남으로서는, 큰 경기에서 강한 이동국의 한 방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동국에게도 플레이오프는 올 시즌 마지막 기회였다. 성남은 컵대회와 FA컵에서 잇달아 포항에 덜미를 잡히며 무관에 그쳤고, 정규리그를 3위로 마감해 AFC 챔피언스리그 직행권마저 놓친 상황에서 6강 플레이오프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이동국은 전북과의 6강 플레이오프전을 앞두고 팀훈련 도중 불의의 허벅지 부상으로 출전은 고사하고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팀은 두두의 선제골을 지키기 못하고 전북에 연장 접전 끝에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후반 중반 이후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 성남은, 전북에 주도권을 내주면서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한방을 갖춘 카드가 없었다. 관중석에 쓸쓸하게 이를 지켜보던 이동국이나, 거액의 몸값을 주고 이때를 위하여 그를 영입했던 성남 구단으로서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계속되는 불운, 그리고 이동국의 선택

 

귀환지로 성남을 선택했던 이동국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좋지 못했다. 지난해 수원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안정환처럼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셈이었다. 최근 몇 년간 이동국은 본인의 잘못도 있겠지만, 다양한 변수와 악재까지 겹쳐 그야말로 계속 불운을 겪고 있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지  찾기 힘들 정도로 이동국은 항상 먼 길을 돌아와야했다.

 

이동국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최연소인 19세의 풋풋한 영건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0-5로 참패했던 네덜란드전에서 한국축구의 유일한 희망으로 강렬한 첫 인상을 남겼다. 이후 아시아청소년 선수권과 세계 U-20월드컵, 시드니올림픽, 아시안컵을 거치며 한국축구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섭렵했고, 황선홍과 최용수의 뒤를 잇는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각급 대표팀 차출과 프로 일정을 소화하며 반복된 혹사는 일찍부터 이동국을 잦은 부상의 위험에 노출시켰다. 2000년 아시안컵에서 부상으로 정상이 아닌 몸상태로도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의 대회 3위를 이끌었지만 이때부터 이동국의 성장은 사실상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몸상태로 도전했던 2001년 독일 베르더 브레멘에서의 적응 실패, 2002년 한일월드컵 대표팀 최종엔트리 탈락은 이동국의 축구인생에 있어서 목표의식의 상실과 함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4강 이란전 승부차기 패배로 이듬해 상무 입대, 2006년 3월 독일월드컵 최종 명단 발표를 코앞에 두고 불의의 십자인대 부상으로 대표팀에 탈락하기까지, 이후로도 이동국의 불운은 계속됐다.

 

2006년에는 국내 선수로는 최초로 K리그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직접 진출하는 기록을 세우며 축구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듯했으나, 미들즈브러에서 2년간 통산 29경기에 나서 2골을 뽑아내는데 그쳐 방출됐다. 그나마 프리미어리그 23경기에서는 골맛을 보지 못했고 칼링컵과 FA컵서 1골씩 기록했을 뿐이다.

 

십자인대 부상이나 골대 불운처럼 사람의 힘으로서는 어쩔 수없는 천재(天災)도 있었고, 혹사와 자기관리 실패, 잘못된 선택 등으로 인한 인재(人災)도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운명이 이동국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금만 운이 더 따랐더라도 이동국의 축구인생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낫게 기억될 수도 있었다.

 

어느덧 이동국도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서른 하나가 된다. 순탄한 선수생활을 해왔다면 경력에 정점을 찍어야할 시기지만, 현재 이동국의 미래는 한없이 불안한 상황이다. 오히려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후 자신만의 장점과 특색을 잃어버린 채 이도저도 아닌 공격수가 된 현재의 기량이나, 성남 이적의 실패로 '프랜차이즈 스타'로서의 마케팅 가치도 잃어버린 지금의 이동국으로서는, 다시 해외진출은 몰론이고 대표팀 복귀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동국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올해 안정환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동국이 지금으로서는 성남에 남게될지, 아니면 새로운 둥지를 찾게될지 알수 없지만 선택은 빠를수록 좋다. 친정팀에 돌아가는 것도 좋고, 아니면 J리그 진출같은 제3의 길을 모색하든지 간에 변화를 찾아야 한다. 출전시간이 보장되어 있고, 성적에 대한 부담없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팀에서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만이 이동국이 살 길이다.

2008.11.25 08:56 ⓒ 2008 OhmyNews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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