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생각하는 양미숙

뭔가 생각하는 양미숙 ⓒ 모호필름

 

"이쁜 것들, 다 묻어 버리고 싶다."

 

미쓰 홍당무 양미숙(공효진)의 상황을 압축하는 표현이다. 영화 중에 그런 대사가 있었는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포스터 머리에 죽 쓰여 있다. 양미숙은 아마 그렇게 심각한가 보다.

 

고교동창 중에 "홍익인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도 양미숙 처럼 안면홍조증이 있는 친구였다. 수시로 얼굴이 빨게졌고 친구들의 놀림에 당황할 때도 있었다. 그 친구는 고교시절 내내 아웃사이더 처럼 학급 주류의 외곽을 맴돌았다.

 

여러가지 이유로 친구들은 이 "홍익인간" 친구를 놀리거나 험담을 하였다. 그 친구는 담배도 일찍 배운 듯했고, 여자도 일찍 안 듯했다.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 홍익인간 친구라는 안경을 쓰고서다.

 

얼굴 빨개지도록 웃긴 그녀가 온다!

 

<미쓰 홍당무>는 코미디 영화다. 일부 평론가들에 의하면 한국영화계 올 상반기에 <추격자>가 있었다면, 하반기에는 <미쓰 홍당무>가 있다고 한다. 아주 극찬의 글들이 도처에서 눈에 띈다. 흥행이 그 만큼 될지는 모르지만 봉준호의 <괴물>에 비견되기도 한다.

 

이유는 이 영화의 제작주체와 관련되어 있다. 이 영화는 모호필름의 제작이며, 모호필름은 박찬욱을 비롯한 한국 영화계의 민노당, 진보신당 관계 인사들과 연관이 있는 영화제작소다. 그러나, <미쓰 홍당무>가 <괴물> 혹은 박찬욱의 일련의 영화들 처럼 진보적 색채가 찬란한가는 회의적이다.

 

<미쓰 홍당무>는 소수자들에 대한 은유와 학교로 상징되는 집단에 대한 사유가 주축이 되어서 구성되어 있다. 거기에 감독 이경미가 여성인 점과 영화의 내러티브를 감안하면 드문 페미니즘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미쓰 홍당무>식 세상껴앉기는 사실 진부하며, 상투적이다. 이 말을 꼭 쓰고 싶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적 상투성을 깼다는 것을 자신의 영화의 장점으로 주요하게 거론했다. 그건 디테일에서는 말이 된다. 하지만 전체를 보면 영화는 예의 상업영화적 전개를 답습하고 있다.

 

상업영화가 상업영화의 규칙을 지키는 게 뭐가 문제냐면 할 말이 없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쓰 홍당무>를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게 만드는 조건들은 여러가지며, 그 중의 하나는 관객층의 존재이고 그들의 기대는 좀 더 높게 충족될 수도 있어 보인다.

 

삽질의 여왕, 양미숙의 파란만장

 

양미숙이 병원에서 의사에게 하소연을 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15도 정도 틀어져서 양미숙과 의사 책상의 모습만이 보여진다. 책상에는 몇 권의 책들이 놓여 있고 언뜻 "정신의학"이라고 쓰여있는 책이 눈에 부감된다.

 

이 곳은 정신과? 드디어 양미란이 정신과를 찾아와서 뭔가 하려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금 지나서 보이는 것은 의사의 명찰에 쓰여있는 "피부과"라는 문구다. 안면홍조증은 정신과가 아니라 피부과로 가야한다.

 

이런 식의 비상투성이 <미쓰 홍당무>의 상투성 해체하기다. 그런데, 영화의 전체는 여전히 지배 이데올로기의 건재함만을 보여 주고, 되려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만을 가져온다. 물론, 감독이 지배 이데올로기 해체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이 내용이 지나치게 결과론적일수도 있다.

 

그러나, <미쓰 홍당무>가 비평의 중심과 주변에서 자리매김한 것은 결과론적이더라도 지배 이데올로기의 해체와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별 말 안 해주어도 안다.

 

영화에서 정말 인상적인 부분이 하나 등장하기는 한다. 영화의 뒤에서 두 번째 아주 짧은 시퀸스다. 양미숙과 서종희가 기차에서 서로를 기대고 어디론가 떠나는 대목이다. 아주 전형적이고 진부한 시퀸스다. 별로 의미를 부여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인상적이다.

 

오래 전 <델마와 루이스>에서는 두 여성버디가 벼랑 끝으로 추락하며 결말을 지었다. 남성지배사회와는 타협을 거절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지금 시점 <미쓰 홍당무>에서는 두 여자가 기대어 어디론가 떠난다. 떠남 이후에는 무언가 기다린다는 것을 알리듯.

2008.11.05 19:52 ⓒ 2008 OhmyNews
홍당무 이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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