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개봉하여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아내가 결혼했다>는 2006년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던 동명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지요.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살고 싶다’는 자유주의자 인아(손예진 분)에게 끈질기게 구애하여 덕훈(김주혁 분)은 결혼을 하지요. 결혼 뒤에도 꼭두새벽에 술에 취해 들어오고 자주 전화기가 꺼지는 인아에게 덕훈은 분통을 삼키면서 태연한 척 하지요.

아내의 연애까지는 봐주려는 덕훈에게 인아는 결혼을 하겠다고 해서 속을 뒤집어 놓지요.  ‘남편을 하나 더 갖겠다’는 발칙함에 덕훈은 이혼서류까지 준비하지만 결국 두 집 살림을 받아주지요.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나고 사람들에게 이혼했다는 오해를 빚게 되면서 돌잔치 때 덕훈은 더 이상 참지 못하지요.

결혼을 또 할 수밖에 없는 예쁜 여자?

원작 소설은 축구와 결혼을 비비면서 환상의 투톱체제로 이야기를 진행하지요. 박식한 축구이야기들을 끌어다가 적재적소 알맞게 소개하는 재주는 무릎을 치게 만들지요. 아내가 남편을 두고 결혼을 또 하겠다는 심각한 상황에 축구이야기로 호흡을 고르게 하며 여유를 줬지요.

영화는 축구이야기를 양념으로 쓰는 대신 통통 튀는 캐릭터 설정으로 주제의 무게를 덜어내려 하지요. 영화의 인아는 모든 남자가 선망하는 미모를 지닌 아름다운 인물이지요. 외모가 두드러지게 뛰어난 인아는 알아갈수록 매력이 깊은 소설 속 인아와 다르지요. 일장연설을 하면서 일부일처제를 꼬집었던 소설 속 인아와 다르게 예쁜 인아는 보다 가볍게 대중들에게 다가가지요.

"난 예쁘니까" 똑소리를 내면서 결혼제도의 속내를 들춰내는 소설 속 인아와는 달리 영화 속 인아는 많은 말을 하기보다 눈빛과 애교로 넘어가려 하지요. 이러한 가벼움으로는 두 집 살림에 동감을 하지 못하고 이상한 여자로 취급하게 되지요.

▲ "난 예쁘니까" 똑소리를 내면서 결혼제도의 속내를 들춰내는 소설 속 인아와는 달리 영화 속 인아는 많은 말을 하기보다 눈빛과 애교로 넘어가려 하지요. 이러한 가벼움으로는 두 집 살림에 동감을 하지 못하고 이상한 여자로 취급하게 되지요. ⓒ 주피터 필름


하지만 그 가벼움은 설득력 부족으로 나타났지요. 이지적이며 꼼꼼한 논리를 갖춘 소설 속 인아는 영화에서 연애자유주의자로만 비치게 되지요. 두 남자와 결혼할 수밖에 없는 신념과 이유들이 잘 그려지지 않으면서 인아는 ‘이상하지만 예쁜 여자’가 되어버렸네요. ‘미모의 여성만 가능한’ 일처럼 되면서 관객 공감도 떨어지고 불쾌감까지 낳네요. 인아가 ‘지구별 사람들과는 공감이 안 되는 다른 별 사람’이 되었듯이 영화는 ‘일부일처제가 전복된 특별한 경우’가 되어버리네요.

일부일처제의 허울을 뒤집는 두 집 살림

그럼에도 영화는 일부일처제를 뒤집으며 충분한 즐거움과 생각거리를 안겨주지요. 일부일처제에서도 남성들은 수많은 방종 성생활을 하지만 여성들은 그 허울 아래 갇히기 일쑤였지요. 남자가 두 집 살림을 하면 ‘남편에게 꼬리를 흔든 여자’에게 본처가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장면은  통속연속극에서 여전히 나오지요.

본처들은 ‘그년 머리끄덩이’를 붙잡으며 일부일처제 언저리를 놓지 못하듯 ‘누구 좋으라고’라고 이혼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어머니처럼 덕훈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머무르지요. 차이가 있다면 ‘불륜현장’을 찾아가 ‘남편을 꾄 여시’만을 공략하던 여자들과 달리 덕훈은 남자이기에 재경에게 코피를 나게 하고 인아의 목을 조르며 두 사람 모두를 공격한다는 것이죠.

문제를 일으킨 남편에 대한 비판은 감춘 채 큰집, 작은집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남성에게 적용되어 재경(주상욱 분)은 덕훈에게 꼬박꼬박 ‘형님, 형님’하면서 십년 전 주말드라마의 남성판을 보여주지요. 지금까지 벌어졌던 결혼제도에 매여 마음고생을 하였던 대상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뒤바뀌었네요.

두 집 살림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

두 집 살림하는 남성의 여성들은 자식교육에 몰입을 하여 문제를 잊으려하거나 적당한 선에서 침묵하였지요. 남성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큰소리치면서 당당하게 두 집 살림을 하였지요. 남자는 두 집 가운데 어느 곳을 선택해도 되게 되면서 더욱 여유가 생기지만 여자들은 버려지는 두려움으로 더 남자에게 매달리게 되지요.

이와 반대로 영화에서는 두 집 살림하는 인아는 무척 고생하지요. 애정표현을 더욱 열심히 하면서 사랑을 유지하고 두 집 살림하는 인아에 대한 항의로 덕훈이 집안일에 손을 놓자  도맡아 하지요. 시댁 두 곳을 다 챙기고 돌잔치도 두 번해야 하는 그녀는 사랑과 행복을 지키려는 슈퍼우먼이 되지요. 물론 그걸 이해해주는 남자가 어디냐가 사람들 대부분 반응이지만. 

"나, 상처받았어." 인아가 아무리 자유로워도 결혼을 하면 변할 것이라고 자기 편한대로 생각한 덕훈. 서로 너무나 다르다고 인아가 아무리 고사하여도 결혼만 하면 된다고 믿었던 그는 인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지요.

▲ "나, 상처받았어." 인아가 아무리 자유로워도 결혼을 하면 변할 것이라고 자기 편한대로 생각한 덕훈. 서로 너무나 다르다고 인아가 아무리 고사하여도 결혼만 하면 된다고 믿었던 그는 인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지요. ⓒ 주피터 필름


두 집 살림하는 여성판은 그래도 21세기 흐름을 반영하듯 20세기보다 한 발짝 더 나가지요. 재경의 존재에 대해서 마주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덕훈은 재경과 어울리며 조금씩 이해를 하게 되지요. 인아를 찾아가는 비행기에서 어깨를 빌려주고 이층집에서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할 정도로 인식이 변화하며 새로운 대안가족을 모색하네요. 

제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영화를 만든 정윤수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삶의 찬미다. 행복을 위해 자유롭게 선택하고 용기를 갖자는 것이다. 사회의 근간을 뒤집는 전복적 이야기라기보다 우리가 제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또 다른 대안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영화이다"라고 말을 했지요.

선진국들은 이미 폐지한 간통죄를 신수단지 모시며 살고 있는 한국은 결혼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국가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처벌하고 있지요. 수많은 모텔과 '2차 문화'에서 간통죄가 일어나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요. 조금 더 솔직하게 우리네 사는 풍경을 돌아봐야 하겠네요.    

결혼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니지요. 평생 일부일처제를 하면서 류시화의 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되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요. 죽이 잘 맞아서 행복하지 않고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면 더 이상 참지 않고 이혼하지요. 이혼이라는 딱지를 감수하고라도 개인의 행복을 선택하는 흐름에 주목이 가네요.

이혼이 흔해진 사회는 더 나아가 결혼을 꼭 해야 하냐는 물음까지 나아가지요. 최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14.8%에 불과했지요. 일부일처에 대한 환상을 조금만 덜어낸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겠지요. 현재 결혼제도의 틈들을 메울 대안 제도들을 생각해야겠네요. 사회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하되 독점하지 않는다

결혼은 상대를 ‘내 꺼’로 착각하는데서 비극이 생기지요.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신화지요. 영화에서도 ‘내 꺼’라는 덕훈의 애정표현에 인아가 호응하지 않지요. 사랑하여 서로가 서로의 것이 되어버리면 사랑하는 주체는 사라져버리고 사랑받는 대상만 남게 되지요. 스스로 우뚝 선 사람들끼리 동등하게 만나야 사랑이 아름답지요. 사랑하지만 ‘자기 꺼’는 아니라는 인아의 대답은 여러모로 살펴볼 필요가 있지요. 

사랑은 서로 동등하게 진정한 사랑은 구속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자유롭게 해주는 일이겠지요. 사랑은  상대의 선택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맞지 않더라도 존중해줘야 하지요.

▲ 사랑은 서로 동등하게 진정한 사랑은 구속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자유롭게 해주는 일이겠지요. 사랑은 상대의 선택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맞지 않더라도 존중해줘야 하지요. ⓒ 주피터 필름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 보통 생기는 소유욕과 배타성을 당연하다고 믿고 있지요. 영화관이나 지하철에서 애인 옆에 이성이 앉으면 자리를 바꾸듯이 촌스럽게 독점하려 하지요. 상대방이 만나는 사람을 감시하고 하루 일과를 확인하면서 끊임없이 정상성을 부여잡으려 하지요. 파고들면 들수록 허무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는 걸 알면서도.

정서 공동체가 허물어진 현대 사회에서 퀴퀴한 세상살이를 단번에 해소해줄 구원투수처럼 사랑은 등장하였지요. 그렇지만 사랑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욕심으로 사람들은 더 외로워졌어요. 성욕은 모두에게 있지만 누구나 아름답게 사랑하지는 못하지요. 사랑으로 아름답게 피워내려면 인내와 고민이 필요하니까요.

꽃이 예뻐 손을 뻗는 게 욕망이라면 그 꽃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것이 사랑이지요. 자기  중심 세계에서 벗어나 상대를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겠지요. 두 인격이 서로의 삶을 포개는 시도는 배려와 존중이 마주보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욕망으로만 만나는지 사랑으로 만나는지 영화를 보면서 돌아보게 되네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씨네21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결혼 아내가 결혼했다 일부일처제 대안가족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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