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은 극진회관에서 떨어져나간 또 다른 가라데 단체인 정도회관에서 그 뿌리가 시작되었다

K-1은 극진회관에서 떨어져나간 또 다른 가라데 단체인 정도회관에서 그 뿌리가 시작되었다 ⓒ 오마이뉴스 김종수


'K-1'은 그다지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많은 명승부와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수많은 팬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최고의 입식격투기 단체다.

그동안 흥행을 이끌었던 슈퍼스타급 베테랑들이 서서히 저물어 가는 가운데 이른바 '슐트 족쇄'가 본의 아니게 발목을 잡고있지만 바다 하리(24·모로코)와 루슬란 카라에프(25·러시아)를 필두로 구칸 사키(24·터키)-에베우톤 테세이라(26·브라질)- 에롤 짐머맨(21·네덜란드) 등 뛰어난 신예들이 수면위로 급부상하며 잠시 어두웠던 미래에 대한 기우도 상당 부분 걷힌 상태다.

K-1은 극진회관에서 떨어져나간 또 다른 가라데 단체인 정도회관에서 그 뿌리가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데를 베이스로 하는 파이터들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적으로도 그다지 풍부한 편은 아니었다.

피터 아츠(38·네덜란드), 어네스트 후스트(43·네덜란드), 마크 헌트(34·뉴질랜드), 레미 본야스키(32·네덜란드) 등 K-1무대를 주름잡았던 챔피언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대부분이 킥복싱이나 무에타이를 베이스로 하는 선수들이다.

물론 무사시(36·일본)를 비롯해 세미 슐트(35·네덜란드) 등 가라데를 베이스로 하는 강자들이 아예 없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무사시는 복싱 등 다양한 종목을 혼합한 플레이를 통해 K-1 무대에서의 '생존'자체를 최우선으로 하고있는 모습인지라 가라데 파이터로 분류하기가 실질적으로 난해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세미 슐트 역시 도복을 입고 등장해 다양한 가라데의 기술을 구사하고있기는 하지만 신체적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이른바 맞춤형 격투기를 펼치는 파이터로, 가라데적인 분위기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 외 카쿠다 노부아키는 전적이 일천할뿐더러 선수보다는 주심으로 더욱 유명하고, 정도회관 에이스출신으로 초창기 일본 파이터를 대표했던 사타케 마사키와 호주가 낳은 '폭주 허리케인' 샘 그레코 같은 경우는 승수에 비해 패가 많다는 점이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다. 잠시 주목을 끌었던 '러시아의 신성' 알렉산더 피츠크노프(29·러시아)는 뭔가를 이뤄내기도 전에 벌써부터 밑천이 드러나 버린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전통적인 가라데의 향기를 물씬 풍기면서 성적까지 좋았던, 혹은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파이터들로는 누가 있을까? 이미 전설이 된 사나이와 전설을 향해 다가가는 사나이들을 돌아보면서 강인하면서도 신비로운 '가라데의 전설'속으로 빠져보도록 하자.

앤디 훅(사진 왼쪽)과 어네스트 후스트 앤디 훅이 젊은나이에 사망하지만 않았다면 후스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되었을 가능성도 적지않다

▲ 앤디 훅(사진 왼쪽)과 어네스트 후스트 앤디 훅이 젊은나이에 사망하지만 않았다면 후스트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되었을 가능성도 적지않다 ⓒ 격투용품 수집가 아이다호(박성수)


영원한 전설 '푸른 눈의 사무라이' 故 앤디 훅

가라데, 킥복싱, 복싱, 태권도 등을 떠나 K-1무대에서 '전설'이라는 두 글자에 가장 근접한 파이터를 묻노라면 단연 故 앤디 훅(스위스)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네덜란드의 벌목꾼' 피터아츠,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 '남아공의 돌주먹' 마이크 베르나르도 등과 함께 이른바 4대천왕을 이루며 초창기 K-1의 흥행을 이끌었던 그는 세상을 떠난지 9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팬들의 눈시울을 적실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비단 고인이어서가 아닌 선수 시절에도 이른바 '감동'이라는 모토에 가장 잘 어울리는 파이터로 평가받던 앤디 훅은 온몸으로 가라데의 '파괴력'과 '정신'을 모두 보여줄 수 있었던 유일한 선수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등 불운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앤디 훅은 10대 초반에 극진 가라데를 접한 후 그 강렬한 매력에 빠져 본격적인 무도인으로서의 수련을 시작하게 된다.

약관의 나이에 이미 자국내 최고의 극진파이터로 거듭난 앤디 훅은 이후 세계대회에 도전을 하지만 제일교포 2세인 문장규(마쓰이 쇼케이)와 프란시스코 필리오 등의 벽에 가로막혀 정상에는 등극하지 못한다.

특히 우승후보를 다투던 필리오와의 대결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고있는데, 당시 경기에서 앤디 훅은 시합종료 선언과 동시에 필리오의 정타를 맞고 패배를 하게된다. 앤디 훅의 세컨에서는 강렬하게 항의했지만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최영의 총재는 '시합도 실전의 일부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방심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대로 경기를 끝내고 만다. 이유여하를 떠나 앤디 훅은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게되고 이 사건 이후 정도회관으로 거처를 옮기고 K-1에 진출하게 된다.

가라데 세계 최강자중의 한 명으로 꼽혔던 앤디 훅이었지만, 그의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았다. 헤비급의 거한들이 판을 치는 K-1무대에서 180㎝가 겨우 넘는 신장에 98Kg의 체중을 가진 앤디 훅은 신체조건에서부터 너무나 불리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듯 초반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이후 복싱테크닉 등을 통해 안면 가드 강화와 펀치 테크닉의 보강을 이루며 본격적으로 전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미 극진회관 시절부터 연습벌레로 소문났던 그는 96년 우승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약점 보안에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수 읽기' 등에도 능한 모습을 보여 그가 만약 사망하지 않았다면 어네스트 후스트의 가장 무서운 라이벌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앤디 훅이 단지 가라데를 베이스로 하는 강한 K-1 파이터에 불과했다면 '전설'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는 붙지 않았을 것이다. 발뒤꿈치로 내리찍는 명품 엑스 킥을 비롯 돌려차기, 앞차기, 훅 토네이도 등 화려하면서도 다양한 발차기 기술을 선보였던 그는 특히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강자들을 상대로 리벤지를 성공시키며 이른바 '시련의 극복'이라는 가라데의 정신을 몸소 실천해 팬들을 열광시켰다.

또한 상대가 신체 중 일부를 다치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대부분의 파이터와 달리 되려 심판에게 상태를 알려주며 회복 및 치료할 시간을 주는 무도인다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실력만큼이나 마음도 거대했던 이 사나이에게 팬들은 온통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푸른 눈의 사무라이'라는 일본인들이 외국인에게 붙여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전설'이라는 이름 아래 팬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덧붙이는 글 다음호 예고: '극진의 괴물' 프란시스코 필리오
고 앤디 훅 가라데의 전설 K-1 스위스 푸른눈의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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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객원기자 / 전) 홀로스 객원기자 / 전) 올레 객원기자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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