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하는 현정과 상훈

식사하는 현정과 상훈 ⓒ 청어람

"See the Unseen", 요즘 방송되는 어느 광고의 카피문구다. 본질적인 이해에 도달하려면 보이지 않지만 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까 공상을 해 본다. 영화읽기에서 주변에 등장하는 영상이 때론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사과>는 마치 진공 속에 놓여 있는 것처럼 인물들과 사건들을 배열한다. 그런 진공감은 많은 영화에서 느겨지는 감각이기도 하다. 영화가 속해 있는 역사와 사회라는 시공간적 감각은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사과>의 인물들은 소소한 일상의 일들과 관계들에서 상처받고 힘들어 한다. 그런데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진짜 원인은 그게 아니였다는 생각이 든다. '네 탓이 아니였어, 내가 잘못한게 아니였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랑이란 마주보며 딴 생각 하는 것!

 

현정(문소리 분)은 민석(이선균 분)과 연애를 하지만 결혼은 상훈(김태우 분)과 한다. 현정을 짝사랑한 상훈의 구애가 현정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마침 민석과의 결별로 상심에 빠져있던 현정의 상태도 중요했다.

 

<사과>는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상 받은 영화가 으레 그렇듯이, 참 재미없고 밍밍한 영화다. 별다른 기복도 없고 영화내내 현정의 심리선을 쫓아서 진행되는 것이 전부다, 줄거리도 극도로 단순하다. 연애하고 사랑하는 일들의 의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런 점이 이 영화에서 진공감을 느끼게 만드는 이유다. 할리우드 영화의 액션과 자극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영화상영시간이 괴로울 수도 있다. 우리들의 평범한 삶을 재현해 놓은 듯한 영화는 영화적 판타지에 길든 사람에겐 괴로운 시간이 될 수 있다. 

 

<사과>가 보여주는 일상의 장치들은 결국 남녀관계로 함몰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준다. 영화의 사이사이에는 사랑과 결혼의 공식이 비껴갈 수 없는 현실적인 사건들이 간간이 삽입되지만 영화의 큰 맥락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컷으로 지나친다. 일종의 영화적 주변이 등장하는 것이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솔직한 리얼 토크

 

영화의 제목이 '사과'다. 이 제목은 먹는 사과일까?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사과일까? 아니면 양쪽 다 일까? 영화에서 '먹는' 사과는 임신한 현정이 민석에게 사주는 것으로 딱 한 번 등장한다. 사람간의 사과를 분명하게 하는 것은 현정의 대사로 "미안해 미안해"가 한 번 등장한다.

 

영화의 제목이 영화의 내용을 함축하는 것이 맞다면 이건 사과(謝過)라고 생각해야 될 것 같다. 헤어졌던 민석은 현정을 찾아와 사과를 표시하고, 이혼을 말했던 현정은 상훈을 감싸 안으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영화홍보에 의하면 이 영화는 "2008년 연애와 결혼에 대한 가장 솔직한 리얼 토크"이기도 하다. 밍밍한 내러티브에 참 많은 것을 담은 영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영화의 담은 많은 것들에도 불구하고 오직 사회에 대한 발언만 주변으로 밀려난 것 같다.

 

<사과>에는 다른 동시대의 영화들 처럼 사회에 대한 발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간접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들에 묻혀 버리고 마는 것이 문제다. '리얼 토크'라고 내세우는 것 처럼 상업적 고려를 한다면 동시대에 관심을 더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08.10.21 10:08 ⓒ 2008 OhmyNews
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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