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야구팬들이 11일 오후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4-6으로 롯데가 삼성에게 패해 3연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에 좌절되자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고 있다.

롯데 야구팬들이 11일 오후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4-6으로 롯데가 삼성에게 패해 3연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에 좌절되자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고 있다. ⓒ 유성호


1루 쪽 직선타. 롯데 주장 조성환 선수는 9회말 2아웃 롯데의 공격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터 하나를 더 보탰다. 6-4 삼성의 승리. 전광판 뒤쪽에선 미리 설치된 폭죽이 '꽝꽝' 터지기 시작했다. 이걸로 삼성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는 모두 끝났다. 삼성 더그아웃에선 모든 선수들이 모두 뛰쳐나와 서로 부둥켜안고 축제를 즐겼다.

삼성 응원단이 포진된 3루측 관중석에선 사람이 만든 환호의 파도가 힘차게 넘실댔다. 1루 측 관중석에선 물병과 음료수 병, 신문지가 어김없이 날라왔다. 그걸 본 다른 롯데 팬들은 "그만해라, 다 끝났다"를 외치며 만류했다.

롯데 선수들이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퇴장하자 1루 측 관중석에선 "잘했다. 이대호! 강민호! 가르시아!" 등 각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고개 숙인 '거인'을 위로했다.

환희와 탄식, 기쁨과 슬픔이 바쁘게 교차됐다.

부산 갈매기, '가을 잔치' 에서 '울다'

 롯데 야구팬들이 11일 오후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 삼성과의 경기에서 열띤응원을 하고 있다.

롯데 야구팬들이 11일 오후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 삼성과의 경기에서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선수들의 모습이 거의 사라졌을 때쯤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자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롯데가 이기는 경기에서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때마다 나오는 노래 '부산 갈매기'. 이번엔 무참히 패배한 뒤 나온 노래여서 조금은 구슬프게 들렸지만, '전국에서 가장 큰 노래방' 단골손님인 부산팬들은 여전히 그 경쾌한 음을 잘 살렸다.

노래는 필경 가을 야구를 이뤄낸 숨은 주인공인 팬 자신을 위한 것일 게다. 의미하는 메시지는 위로일 것이다. 팬들 중 몇몇은 이미 눈에 이슬도 맺혔다. 

부산갈매기가 끝난 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른다. 다음은 "롯데 롯데 롯데 롯데"를 연속적으로 연호하는 롯데 응원가다. 그렇게 내리 3곡을 힘차게 부른 뒤 1루 측에 있던 관중들은 저마다 아쉬움을 정리했다. 

"내 인생 45년 만에 이번에 '세번째' 눈물을 흘립니더. 아버지, 할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로 처음입니더. 가을 야구에서 롯데가 한번이라도 이겼으면 했습니더."

부산에서 원정 온 롯데 팬 45살 윤이한씨는 선수들이 모두 빠진 텅 빈 그라운드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롯데 팬들은 삼성의 플레이오프 진출 확정으로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

그렇다. 롯데가 8년 만에 초대받은 가을잔치에서 3연패하며 모두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플레이오프 진출도 힘들다는 그간의 통계와 추측들이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8년 만에 준플레이오프 진출해 가을 잔치에 초대된 것만으로도 큰 만족입니더. 이제 매년 4강에 들깁니더."

롯데팬, '계절병' 걱정

 롯데 로이스터 감독이 11일 오후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 삼성과의 경기에서 9회초 김주찬의 타구가 파울로 인정되자 심판에게 항의하고 있다.

롯데 로이스터 감독이 11일 오후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 삼성과의 경기에서 9회초 김주찬의 타구가 파울로 인정되자 심판에게 항의하고 있다. ⓒ 유성호


부산에서 원정 온 롯데팬 이태호(36)씨 역시 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부산의 롯데 팬들은 롯데 경기가 없는 월요일이 되면 '월요병'을 겪는다는데, 이제 한 시즌을 마감했으니 몹쓸 '계절병'을 앓게 되는 건 아닐까 심히 걱정스러웠다.

"아쉬워 죽겠십니더. 이제 본업으로 돌아갈 꺼지만서도, 우리 부산 팬들이 롯데를 사랑하는 마음은 끝까지 갈거라예. 근데 이제 무슨 낙으로 사노!"

여기저기서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미소들이 보였다.

"왜, 우노? 울지 마라!"
"삼성 우승해 뿌라!"

부산 팬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남아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패배를 떨쳐 버리기 위해 내년을 기약하는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가을야구'를 하기 위해 힘들게 여기까지 왔지만, 한번 졌다고 여기서 다 끝나 버린 것은 아닙니더. 내년을 또 기약합시더. 그리고 (준플레이오프) 여기까지 왔다는 증거라도 좀 남기야 될 거 아입니까. 서 보이소!"

여기저기서 대구시민야구장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는 롯데 팬들이 간혹 눈에 띄었다.

삼성 팬들, 대구시민야구장 앞 광장서 "최강 삼성!"

 삼성 야구팬들이 11일 오후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롯데와의 경기에서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삼성 야구팬들이 11일 오후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2008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롯데와의 경기에서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반면, 삼성 팬들은 축제를 그대로 경기장 밖에까지 이어갔다. '사자사랑' 동호회 일원들은 대구시민야구장 앞 광장에서 둥글게 원을 그려 춤을 추며 "최강 삼성"을 외쳤다. 시민들도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였다.

대구에 산다는 K씨는 "오늘 삼성이 이겨서 선수들이 좀 더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다"며 "오늘은 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기니 한잔 안 할 수가 없다"고 기뻐했다.

대구에 산다는 손대호(50·회사원)씨는 롯데의 이번 시즌을 "야구 발전에 기여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고 평가했다.

"사령탑 하나의 변화로 전체적인 야구 열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인구, 손광민을 봐라. 선수 영입이 아니라 숨어 있는 인재를 발굴했다. 롯데는 이번 시즌을 통해 야구 열기에 큰 기여했다. 솔직히 삼성도 롯데의 그런 시도를 배워야 한다."

승자와 패자, '배려와 인정' 필요할 때

삼성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되자 롯데 로이스터 감독은 먼저 삼성 더그아웃을 찾아가 선동열 감독에게 악수를 청했다.

삼성 팬들은 수적으로 적은 롯데 원정 팬들을 존중해 주었다. 롯데가 "마"를 외치면 "와"로 받아치는 광경에선 잘맞는 짝꿍을 만난 듯한 인상도 받았다. 9회에 김주찬 선수가 친 타구가 홈런이 아닌 파울로 선언되자, 일부 롯데 팬들은 오물을 투척했다.

경기 종료 직후에도 1루측 관중석에선 삼성 선수들이 지나가고 있을때 물병 음료수 병 등을 투척했다. 일부 롯데 팬들은 여전히 도가 지나쳤다. 허나 반면에 다수 선량한 팬들은 "삼성 우승해라, 수고했다!"를 외치며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준플레이오프가 열린 지난 시간들. '관중 예의'와 관련하여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제 패자는 승부를 인정하고 승자는 패자를 위로할 시간이 왔다.  

준플레이오프 롯데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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