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기다린 오랜 인고의 세월에 비하면, 정말 짧았던 잔치였다. 롯데가 2000년 삼성과의 준 플레이오프(이하 PO) 이후 정말 모처럼 맞았던 삼성과의 준 PO(5전 3선승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10월 8일부터 부산 사직 구장에서 시작된 2008 삼성 PAVV 포스트 시즌의 첫 관문이었던 정규리그 3위 롯데 자이언츠와 4위 삼성 라이온즈의 준 PO는 삼성의 3연승으로 10월 11일 대구 구장에서의 3차전을 끝으로 싱겁게 끝났다. 박빙 승부 혹은 롯데의 근소한 우세가 될 것이라던 전망을 무색케 할 만큼 일방적으로 끝난 승부였다.

 

특히나 ‘가을에도 야구하자!’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해온 롯데 팬들 입장에서는 8년만의 가을 잔치가 단 세 경기로 끝난 것이 아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08 시즌을 되돌아보면, 마냥 아쉬워하기보다는 새로운 기대를 갖게끔 만든 한 시즌이었다.

 

짧디 짧았던 롯데의 가을 잔치가 결코 슬프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의 잠재력을 그라운드에 내뿜은 선수들

 

“올 시즌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외국인 감독으로 롯데의 지휘봉을 잡은 로이스터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의 가을 잔치행을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줄 것임을 장담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나 심지어 롯데 팬들까지도 롯데의 4강 진출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회의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잠재력은 뛰어난 선수들이었지만, 매 시즌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 역시 연례행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달랐다. 지난 시즌 결정적인 순간마다 롯데를 괴롭혔던 한화와의 개막전 이후 SK에게 까지 내리 4연승을 내달리면서 올 시즌 달라진 모습을 보이더니 시즌 초반에는 SK와 선두 경쟁을 펼칠 만큼 탄탄한 전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올 시즌 초반부터 롯데가 상승세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가능성만 있었던’ 선수들이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얻어진 결과였다.

 

마운드에서는 송승준과 장원준이 손민한과 함께 나란히 12승을 합작, 롯데 선발 마운드에서 큰 힘을 실어줬다. 타격에서는 젊은 좌 타자인 이인구와 손광민을 중심으로 시즌 도중 정수근이 빠진 톱 타자 자리를 완벽하게 메운 김주찬과 군에서 복귀한 직후 공-수에서 맹활약한 '조반장' 조성환의 활약 역시 롯데에게는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물론, 기존의 손민한-이대호-강민호 등 팀 주축 선수들의 활약 역시 새로운 얼굴들의 분전과 어우러저 팀을 더욱더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그야말로 투-타에 걸쳐 모든 선수들이 모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제대로 발산한 결과 롯데 팀 역시 상승세를 내달릴 수 있었던 셈이다.

 

시즌 중반을 넘어서면서 찾아온 위기

 

그러나 인생사도 그렇듯 올 시즌 역시 롯데에게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전반기 막판에 들면서 투-타의 불균형이 심해졌으며 지독하리만큼 '빅 볼'을 고집하던 로이스터 감독의 메이저리그식 자율 야구 역시 상대 팀의 철저한 분석에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나 올 시즌을 앞두고 팀 공격력 강화를 위해 1루에서 3루로 포지션을 전향시킨 이대호의 수비에서의 부진과 우익수-지명타자와 더불어 가장 공격력에서 힘을 실어줘야 할 1루수에 썩 만족스러운 주인이 없었다는 것 역시 롯데에게는 고민거리였다.

 

여기에 임경완-최향남 등 베테랑 투수들이 번갈아가며 맡던 마무리 자리 역시 '돌려 막기'로 공백을 메워보려 했으나 좀처럼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롯데의 상승세가 꺾였던 것은 9월 19일부터 사직에서 있었던 두산과의 3연전이었다. 당시 내심 2위 자리에 대한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롯데였지만, 안방에서 세 경기를 모두 두산에게 헌납하면서 2-3위 자리를 바꾼 것은 물론이었고, 2경기차로 벌어지면서 사실상 2위 싸움은 싱겁게 두산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내심 베이징 올림픽 효과를 노려 후반기 거침없는 상승세를 달려왔던 롯데의 상승세도 이때부터 꺾이기 시작했고, 결국 롯데는 69승57패로 2위 두산(70승56패)에 한 경기차 뒤진 3위로 올 시즌을 마감했다.

 

'8888577(2001년 시즌부터 이어진 롯데의 순위)'라는 숫자로 비아냥 받던 예전의 롯데의 이미지는 탈피했지만, 아쉬움 역시 남았던 2008 정규 시즌이었던 것이다.

 

'AGIAN 1984&1992'를 노렸던 가을 잔치. 그러나...

 

그러나 롯데 팬들은 가을 잔치를 내심 기대했다. 롯데가 두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던 1984년과 1992년처럼 다시 한 번 기적을 연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1992년에는 정규리그 3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해태-빙그레를 나란히 격파하면서 한국 시리즈 우승을 따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올 시즌 역시 그러한 '데자뷰'를 노릴 법도 했다. 그야말로 8년 동안 기다린 가을 잔치에서 16년만의 우승을 노린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우승의 첫 관문이었던 준 PO에서 '라이벌' 삼성에게 단 한 경기도 빼앗지 못하고 3연패로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1차전 3-12로 대패한 것을 제외하면, 2차전 2-4, 3차전 4-6으로 박빙의 승부를 펼쳤지만, 한국 시리즈에서 두 번이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선동결 감독에게 투수 교체 타이밍이나 작전 전술 운용에서 완벽하게 밀렸다. 물론 큰 경기 경험 역시 삼성 선수들보다는 훨씬 더 적었다는 것 역시 롯데에게는 악재였다.

 

내년 시즌이 더 기대되는 롯데 자이언츠

 

비록 가을 잔치에서 좌절을 맛본 롯데였지만, 올 시즌의 아쉬움은 오히려 내년 시즌 더욱더 발전될 롯데를 만들 자양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올 시즌 가능성을 넘어 팀에 주전 타자로 거듭난 김주찬-이인구-손광민에 마운드에서 괄목할 만한 활약을 보인 장원준-강영식-조정훈-송승준 등 젊은 투수들이 보여준 기량과 경험은 내년 시즌 롯데의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현실화 시켜줄 것이다.

 

특히나 롯데에게 내년 시즌에도 변치않을 것은 무려 21번이나 사직 구장을 매진시킨 부산 야구팬들이 '열정'이다.

 

물론, 시즌 막판 순위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열정이 과한 몇몇 팬들의 행동에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롯데 팬들에 야구사랑은 롯데에게는 든든한 '써포터'이었음에 틀림없다.

 

8년을 기다린 것 치고는 가을 잔치는 너무나도 짧았다. 그러나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기에 롯데의 올 시즌은 결코 아쉽지 않을 것이다.

 

가을이 지나면, 추운 겨울이 오지만, 또 그 이후에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는 게 만고의 이치가 아니던가?

2008.10.12 10:44 ⓒ 2008 OhmyNews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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