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산책, 외롭고 쓸쓸한 이에게

작년 여름, 난 도쿄를 거닐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여행책자에서조차 나오지 않는 마을의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낮이라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그러므로 거리는 한산했다. 세계적으로 깨끗함을 자랑하는 도쿄의 골목은 마음 속의 평온함을 조용히 전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서울보다 몇 배는 인구가 많이 움집해 있을 이 대도시에 이런 작은 골목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때로는 나무로 된 집들이 있었고, 정말 이곳이 장사가 되기는 할까 할 정도의 구멍가게 혹은 라면집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꼭 사지 않더라도 한 번 들어가서 주인장과 말을 걸어보고 싶을 정도로 도쿄에는 아기자기한 곳이 많았다.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쉼'이라는 휴식을 제공할 것만 같은 공간들. 이런 곳은 걷고 또 걸어도 피곤치 않을 것만 같았다. 더불어 그 산책을 함께할 동반자가 있었으면 더할나위없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서로의 결핍을 공유하는 두 사람.

서로의 결핍을 공유하는 두 사람. ⓒ 빈장원

내게 도쿄는 그런 소소한 추억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낭만의 공간이다. 사람들은 도쿄가 시끄럽고 비싸기만한 도시일 뿐이라고 하지만 내게 도쿄는 오히려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안식처였던 것 같다.

 

일본에서 만난 한 일본인 친구는 내게 왜 하필 여행지가 교토가 아닌 도쿄냐고 의아해 했지만 1주일간 도쿄에 있는 동안 난 내게 주어진 이 시간들이 너무나 짧음에 대해서 아쉬워했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쿄를 재방문하게 된다면 아마도 난 며칠은 조용히 산책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갈 수 없다. 시간과 돈과 심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텐텐>은 그런 나에게 작은 선물을 제공하는 영화이다. 영화내내 주인공 후미야와 후쿠하라는 도쿄를 거닐고 그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들을 방문한다. 직접 가볼 수는 없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서 <텐텐>은 휴식같은 작품이다. 주인공들은 내내 걷고 또 움직이지만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그들도 여행을 통해 마음의 정화를 이루겠지만 우리 역시 깨끗해지는 마음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소소한 것들의 위대함

물질적인 관계로 만났지만 후미야와 후쿠하라는 이상하게 어울리는 한쌍이다. 먼저 산책을 제안한 후쿠하라는 단지 후미야가 자신과 함께 도쿄를 거니는 것에 대해서 만족한다. 그가 이렇게 거닐 수 있는 것도 당분간은 마지막이기 때문에 그는 후미야에게 높은 액수의 돈을 지불한다고해도 후회스럽지 않다.
 
반면 후미야에게는 돈이 간절히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후쿠하라의 도쿄산책 제안에 자연스레 응대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면서 기묘하게도 서로가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만났다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결핍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다는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더불어 두발로 먼 거리도 아닌 도쿄 시내를 며칠간 함께 걸으면서 서로에 대해서 몰랐던 것을 하나하나 알게됨으로써 서로가 가진 상처를 회복하여 간다. 그것은 잊고 지냈던 지난 추억에 대한 회고를 동반하는데 지금은 시린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예전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 아픔들을 치유해 나가는 것이다.
 
아내와 함께했던 공간들을 되짚어 보고, 어렸을 적 좋아했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남으로써 둘은 새로운 기쁨을 발견한다. 그것은 아주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그들에게는 위대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런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관계성 회복이 <텐텐>에서는 두드러진다.
 
 잊고 있던 추억을 되돌아보는 주인공들

잊고 있던 추억을 되돌아보는 주인공들 ⓒ 빈장원

목적의 유무

후쿠하라는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다. 산책의 목적말이다. 그는 죄를 지었으며 그 죄값을 응당히 받으려 하고 있다. 단지 그 전에 도쿄를 산책하고 싶어할 뿐이다. 이에 반해 후미야는 별다른 목적의식이 없다. 그의 삶도 그려러니와. 후쿠하라를 만나기전 삼색치약을 바라보며 변화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처음에는 돈을 받기 위해서 시작했던 후쿠하라와의 동행에서도 그는 처음의 목적을 상실해 간다. 이 불분명한 삶은 도쿄에서 기생해 살고 있는 젊은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목적의 유무가 서로 달랐듯 그들의 산책 후의 행보 역시 다르다. 후쿠하라는 원래 그가 있었던 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는 계획대로 경찰서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후미야는 아마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폐인처럼 살았던 지난 자기의 모습이 깨진 거울을 보는 것처럼 부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분명히 그들의 산책이 행복한 추억이었노라고 느낄 것이다. 가끔은 당황스럽고 그만두고 싶은 일들이 많았지만 그것을 이기고 여행의 끝을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성공하였고 더 나아가서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성취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두 글자

산책의 끝에는 정착이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지만 긴 여행 뒤에는 우리를 반겨줄 집이 있다. 가족은 집과 같다. 언제든지 우리를 반겨주기 때문에. 사실 외로운 것은 후미야에는 그런 가족이 없다는 것이다. 후쿠하라 역시 이후에 돌아갈 '집'은 있지만 '가족'이 없다. 산책의 끝무렵 만난 후쿠하라의 애인과 그녀의 조카와 함께 후미야, 후쿠하라가 잠시동안 지내는 모습 속에 후미야는 가족이 얼마나 그에게 절실히 필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만약에 산책후 그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곳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후미야는 앞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지친 어깨를 어루만져줄 사람과 함께 도쿄 골목골목을 함께 거닐며 지난 추억들을 생각할 것이다.
 
은행잎이 한폭이 떨어진 가로수길을 걷는 후미야와 후쿠하라의 뒷모습을 보며 이 가을 나도 간절히 떠나고 싶다. 도쿄, 그리고 후미야, 후쿠하라의 추억이 베여있는 골목을 며칠이 되든 걷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오이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0.10 13:59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네오이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텐텐 오다기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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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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