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 선수가 라이벌 첼시FC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번째 골을 터뜨렸어요.

 

21일 저녁(한국시간) 잉글랜드 런던에 위치한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08/09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전에서 박지성은 선발 출장을 했어요. 전반 18분 맨유 공격수 베르바토프의 슈팅이 첼시 골키퍼 체흐의 몸을 맞고 흐르자, 박지성은 놓치지 않고 구석으로 밀어 넣어 선제골을 뽑지요.

 

후반 29분에 존 오셔와 교체되어 나올 때까지 박지성은 공수를 누비며 활약을 했지요. 시즌 1호골 못지않게 더 많이 뛰며 수비도 적극 가담하였지요. 그러나 맨유는 첼시의 공격수 칼루(21)에게 후반 34분에 헤딩슛을 내주며 1-1 무승부를 기록하였지요. 아스날FC가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맨유는 중위권에 머무르고 있어 불안한 출발을 하고 있네요.

 

왜 난 프리미어리그에 집착했을까

 

축구 경기를 오랜만에 생중계로 봤네요. 솔직하게 말하면 맨유와 첼시가 경기하는 줄도 몰랐어요. 집에 들어오니 동생이 보고 있어서 옆에 앉아 덩달아 보게 되었죠. 몇 년 전만 해도 새벽에 일어나서 프리미어리그에 눈을 못 떼던 거와 사뭇 달라졌죠.

 

어릴 때부터 축구를 워낙 좋아했지만 박지성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한 뒤 더 끌렸어요. 프리미어리그 일정과 선수들을 꿰차며 전략 분석과 시시콜콜한 선수 생활까지 관심을 갖고 축구를 봤지요. 국내 축구리그에 대한 관심과 비교를 하면 정말 큰 차이였지요.

 

돌이켜보면 자국리그에 대한 관심보다 프리미어리그에 관심을 쏟은 것은 더 재미있는 경기력도 이유일 수 있겠지만 순전히 박지성 선수 때문이었어요. 박지성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팀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지요.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A, 한국 K리그보다. 

 

박지성 선수가 자랑스러웠거든요. 냉정하게 말하면 성실하고 뛰어난 그의 실력보다 세계무대에서 '성공하였다는 결과'에 열광하였지요. 일제침략, 한국전쟁, 군부독재를 거치며 사회에 뿌리박혀있는 ‘약소국가 한국’에 대한 열등감이 제게도 있었나 봐요. ‘축구종주국’에서 활약하는 박지성 선수를 보며 쾌감 비슷한 느낌을 얻었지요. 마치 MLB에서 활약했던 박찬호, 김병현 선수를 볼 때와 비슷한.

 

국가주의와 가족주의를 넘어서야

 

제가 이 글 처음에 ‘첼시 전’이라고 썼는데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어색하지 않으셨는지요. 왜 축구가 싸움이여야 하고 ‘중원사령관, 지단’처럼 왜 아무렇지도 않게 군사용어들을 사용할까요.

 

오늘날, 축구는 단순하게 선수들이 어우러져 잔디밭에서 공을 차는 스포츠가 아니지요. 축구는 스포츠 한 종목이 아니라 나라의 종합실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되었지요. K리그나 축구 자체에 흥미를 못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에는 흥분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월드컵은 자신이 포함된 나라의 등급을 매기는 시험이거든요. 그 결과가 자신의 가치를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사람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지요.

 

한국 축구 경기중계와 언론에서 쓴 기사들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우리 한국 팀’, ‘허정무 호’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단지 축구공을 갖고 경기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우리 한국의 자존심’이 걸린 시합인양 좌불안석하지요. ‘태극 전사’, ‘한일’ 같은 군사용어가 자연스럽게 도입될 정도로 '국가대결'로 분위기를 몰아가며 승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이지요.

 

축구 결과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은 세상

 

프로축구경기의 가치는 부풀려져 있지요. 당당하게 축구실력을 겨루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보이는 스포츠로써 의미는 잊은 채 돈이 들쑤시는 요란한 행사로 변한지 꽤 되었어요. 축구의 쓰임새가 바뀐 만큼 제가 마음 쏟는 것들도 달라졌죠. 축구경기 보는 것보다 이웃들과 축구 한 경기 하는 것이 더 소중하고 몇 유명선수 몇 백억 몸값을 부럽게 쳐다보는 것보다 몇 백원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죠.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박태환으로 이어지는 4박의 성공을 끝으로 ‘열등인종 콤플렉스’는 넘어서야지요. 가난하고 투자가 없어서 못했을 뿐이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결코 못나지 않았다는 걸 인식하였으면 된 것이죠. 그리고 박지성과 내가 다르듯이 세계에서 성공한 4박이 나를 대표하지는 않지요. 자신은 스스로 일으켜 세워야 하지요. 그들의 성공에 응원을 보내고 관심을 갖지만 심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에 올라갔어요. 전 세계 축구 4위,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였지요. 그러나 월드컵 4강이 ‘살기 좋은 사회 4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요.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수에는 그렇게 예민한 사람들이 부패지수, 복지지수에는 왜 이렇게 둔감할까요. 박지성 선수가 활약한 생중계를 오랜만에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드는 깊은 밤입니다.

2008.09.22 08:34 ⓒ 2008 OhmyNews
박지성 열등인종콤플렉스 월드컵 맨유 첫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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