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자는 젊은 시절 화끈한 투자로  거액을 모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리를 잘못해서 재산을 조금씩 까먹고 있다. 반면 어느 가난뱅이는 출발이 늦었지만 알차게 푼돈을 모으며 내일을 기약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현재의 위치에서 그들은 과연 어느쪽이 행복할까?

 

이런 상황을 K리그에 대입했을때 전자가 수원이라면, 후자는 부산이다. 전반기를 마감하던 시점에서 수원은 불패행진을 거듭하며 정규리그 부동의 1위, 부산은 극심한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14위, 즉 꼴찌였다. 후반기 개막 이후 9월 현재 수원은 한달여만에 성남에게 선두를 내주고 2위로 내려앉았다. 부산은 지긋지긋한 무승 징크스를 떨쳐내고 광주에게 꼴찌 왕관을 인계하며 13위로 한계단 올라섰다.

 

극와 극을 달리던 양팀의 순위가 한 계단씩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양팀의 격차는 하늘과 땅이다. 그러나 최근의 팀 분위기는 '있는 집' 수원보다, 오히려 '없는 집' 부산 쪽이 더 행복해보인다.

 

 다시 한 번 고비에 직면한 차붐 리더십

 

차범근 감독 차범근 감독

차범근 감독 ⓒ 남궁경상

수원은 현재 정규리그에서 13승 2무 3패(승점 41)로 성남과 승점은 같으나 골득실에 뒤진 2위에 올라있다. 컵대회에서는 5승 3무 1패로 A조 1위를 기록하며 4강 직행을 이미 확정지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여전히 수원은 잘나가는 집이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후반기 경기내용이 너무나 좋지 않다. 전반기 17경기 무패행진을 거듭했던 수원은 후반기들어 정규리그와 컵대회 포함 4승 3무 4패에 그치고 있다.

 

전반기 경기당 2골에 육박하던 평균 득점은 후반기 11경기에서 단 7골에 그치고 있다. 특히 이 기간동안 부산과 정규리그와 컵대회에서 두 번 만나 모두 무승부에 그쳤고, 이중 한번은 거의 패배 일보직전까지 갔다.

 

전반기 막판부터 주전들, 특히 수비진의 줄부상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수원은 막상 후반기들어 부상자들이 복귀하자 이번엔 공격진의 난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반기 막강 화력을 과시했던 에두-신영록-서동현의 3각 편대가 7월 이후 완전히 개점휴업중이다.

 

팀내 득점 1,2위를 차지했던 에두는 9경기째, 서동현은 7경기째 득점포를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신영록은 여름이후 각급 대표팀에 연이어 차출되며 부상과 체력난조가 겹쳐, 오히려 소속팀과 대표팀 양쪽에서 모두 페이스를 잃은 모습이다.

 

여기에 후반기 공격진의 숨통을 터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천수마저 다시 사타구니 부상을 당하며 전력누수가 불가피해졌다. 수원은 최근 스트라이커가 득점을 기록했던 경기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정도다.

 

차범근 감독은 벤치멤버들을 적극 기용하며 전력누수를 최소화하려고 하지만, 조직력의 붕괴는 피할 길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수원이 정규리그와 컵대회에서 모두 주전 위주의 선수기용을 고수하는 것이나, 피지컬와 활동량 위주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차붐축구가 선수들의 부상위험을 과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지난 시즌 초반 과도한 주전 위주의 선수기용으로 후반기 부상병동에 시달렸던 성남과 서울의 시행착오를 수원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

 

경쟁팀들도 이제 수원의 경기 스타일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서 전술적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는 사실도 차범근 감독으로서는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수원의 최근 경기를 보면 미드필드 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한 경기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오히려 약팀을 상대로 스피드 싸움이나 압박에서 밀려 쩔쩔매다가 역습을 허용하는 경우도 잦다.

 

차범근 감독은 최근 경기에서 스리백과 포백, 투톱과 스리톱을 오고가는 다양한 포메이션 변화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확실한 답을 찾지못하고 있다. 팀의 부진이 장기화될 경우, 자칫 그동안 스타군단을 이끌고도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지 못한 차범근 감독의 지도력과 위기관리 능력이 또다시 도마에 오를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황새 축구는 진화하고 있다

 

황선홍 감독  황선홍 감독의 부산 아이파크 감독 취임은 부산의 축구 열기와 K리그 전체를 살리는 촉매제가 될까?

황선홍 감독 ⓒ 부산 아이파크

전반기 '동네북'이던 부산의 변신은 그야말로 극적이다. 올림픽 휴식기 이후, 부산의 성적은 3승 2무 1패. 정규리그 16라운드 광주전(2-0) 승리로 지긋지긋한 14경기 연속 무승 사슬을 끊은데이어 3경기에서 2승 1무의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컵대회에서도 수원에 이어 A조 2위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으며 후반기 상승세를 이어나가게 됐다. 강호 수원을 상대로 비록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두 번 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며 경기내용면에서는 오히려 앞서는 모습으로 자신감을 얻은게 큰 수확이다.

 

황선홍 감독이 추구하던 '공격축구'가 조금씩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수확이다. 개막전 승리 이후, 전반기 거듭되는 무승 행진으로 부산은 날개없는 추락을 거듭했고 선수들은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갔다. 초보 감독인 황선홍으로서도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돌파구를 찾아야할지 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패배주의의 분위기가 짙게 깔리우던 부산에 전환점을 마련해준 것은 올림픽 휴식기 직전, 마지막 경기였던 정규리그 15라운드 대구전 0-4 대패였다. 이전까지 강팀들을 상대로 지더라도 한골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지며 간발의 승부를 펼쳤다는 것을 위안삼았던 부산에, 그것도 안방에서 당한 네 골차 패배는 충격 그 자체였다. 황선홍 감독은 침체된 선수단을 강하게 질타하며 분위기를 되잡았고 3주간의 합숙이 시작됐다.

 

황선홍 감독은 휴식기동안 선수단에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일단 팀 전력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베테랑과 외국인 선수들을 보강했다. 파비오가 가세하면서 엉성하던 포백 수비라인에 안정감이 생겼고, 서동원의 합류로 안정환, 정성훈 등과 함께 후배들을 이끌며 노련한 리더들이 생겼다. 19세의 약관 이범영을 주전 GK로 기용하며 나이와 이름값에 상관없이 현재의 실력으로 선수들을 중용하는 무한 경쟁 체제를 가속화했다.

 

휴식기가 끝난후, 부산은 전반기와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있었다. 패스 타이밍이 한결 빨라졌고, 실수를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플레이가 사라졌다. 경기중에도 선수들이 큰 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동료들의 위치를 조정해주는 등, 팀내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진 모습을 보였다. 선수들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각자 포지션에서 책임감있는 플레이를 펼치며 경기운영에 안정감이 붙었다. 황감독의 선수단 개조 작업이 효과를 보고 있음을 드러낸 장면이었다.

 

올시즌 부산의 현실적인 목표는 컵대회 우승이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아니다. 부산의 선수층을 감안할때 당장의 성적이 다급했다면, 황선홍 감독은 지금보다 더 수비적이고 안정지향적인 축구를 해야옳았다.

 

하지만 황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더라도 공격적인 플레이를 원했고, 롱패스와 킥 앤드 러시의 단순한 전술보다는 미드필드에서 짧고 정교한 패스를 거쳐 골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중시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아직 결과는 초라했지만, 당장의 성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았다. 황선홍 부산은 그속에서 진화하고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감독도 팀도 아직 젊기에, 황선홍 축구의 ‘리빌딩’은 현재보다 미래를 기약하고 있다.

2008.09.19 11:24 ⓒ 2008 OhmyNews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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